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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연 Feb 18. 2020

도대체 내 삶은 왜 이렇게 무거울까?

이번 여행을 위해 당신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나요?

질문 1) 여행을 위해 당신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나요?


A sound mind dwells in a sound body.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신체에 깃든다.



유난히 더웠던 2013년 여름, 목의 통증이 심해져 압구정동의 어느 정형외과를 찾았다. 내 목뼈가 찍힌 엑스레이 사진을 마치 닭 날개 뼈를 바르듯 신중히 살펴보던 의사가 드디어 입을 뗐다.


“흠. 목 디스크가 의심되네요.”


이대로 목 디스크에 걸릴 수는 없었던 터라, 의사의 제안의 받아들여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주사를 맞기로 했다. 몇 분 후, 나는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시술실로 들어갔다. 그리곤 침대에 납작이 엎드려진 채 뒷목을 길게 드러내고 있는 중이었다.


이윽고 의사가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주사기를 한 손에 집어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내 목을 요리조리 만지기 시작했다. ‘푹’하는 얻어맞는 소리와 함께 두꺼운 바늘이 목 근육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고, 침대 아래로 굵은 피가 뚝뚝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치료실에는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의사는 내 목을 마치 오래된 야채 같은 것을 찌르듯 아무렇지 않게 푹푹 찌르며 클래식 멜로디를 콧노래로 따라 불렀다. 굵은 피와 클래식 음악, 그리고 중년 남성의 콧노래가 혼재하는 괴기한 공간에서 나는 인생 처음으로 중대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나처럼 아픈 것이 아니라는 사실!
...


충격이었다.

대체 그게 뭐 그렇게 충격이었냐고 묻으신다면 나도 당당히 할 말이 있다. 나는 기억하는 모든 순간에 목이 아팠기 때문에….


어느 날 홀로 길을 걷다가 문득 사람들이 가엽다고 생각했다.

‘아! 사람들은 이토록 목이 아프면서도 열심히 살아가는구나…. 모두 힘내라!’

 


혼자만의 착각



걷다가 떠올리기에 조금 난데없는 생각이지만 진심으로 혼자서 묵묵히 그들을 응원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내 목을 찌르던 정형외과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보통의 사람들은 당신처럼 목이 아프지 않습니다."






그 이후에도 내 건강 상태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신체에서 나온다는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의 명언처럼 나는 허약한 신체만큼 정신도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불안감과 우울증은 늘 나를 새끼 오리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비로소 허약한 몸으로 인생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산티아고로 출발하기 약 3주 전이었다.


그날 나는 배낭을 사러 갔었다. 배낭을 사는 일은 인생 처음이었기 때문에 내 배낭이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기쁨을 넘어 비장하기 까지 했다.


배낭을 파는 곳은 도처에 널려있었지만, 가능하면 전문가용 배낭을 구경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다 종로에 유명한 배낭 가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방문하게 된 것이다.


역시 그곳에는 훌륭한 배낭이 잔뜩 있었다. ‘드디어 내가 이렇게 전문가의 길로 들어서는구나.’ 하고 착각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전문가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곳이었다. 그럴듯한 배낭을 어깨에 둘러메니 마치 프로 산악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내가 배낭을 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배낭 가게 주인이 대뜸, "당신은 기본이 안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별안간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기본이 안 되어 있다니.


주인은 머쓱하게 서 있는 나를 보고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배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허약한 사람은 배낭을 멜 때부터 티가 납니다. 배낭을 잘 메려면 무엇보다 몸이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해요."


"또 한 가지, 가벼운 배낭이라고 그저 좋은 것이 아니에요. 다소 무겁더라도 튼튼한 가방이 무게를 잘 견디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가볍게 느껴질 겁니다."

 

주인은 실제 짐을 넣어 메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며 배낭의 입을 열어 무게 추를 몇 개 넣고는 내게 다시 메 보게 했다. 아까와 달리 묵직한 배낭을 메 보니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마치 몸과 배낭이 따로 노는 기분이었다.


“배낭의 어깨 끈과 등판이 몸에 잘 감겨 있지 않으면 걷다가 불편해져요.” 


주인은 배낭의 뒤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조정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인터넷에서 배낭을 잘못 멘 채로 오랜 시간 걸었다가 어깨가 뒤틀려버린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나고 말았다.


맞다. 나는 배낭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배낭을 멜 준비도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 달 내내 그걸 짊어지고 다닐 생각을 했다니, 배낭 주인의 말처럼 나는 기본이 안 되어 있었다. 그것도 전혀! (어쩐지 그런 모욕적인 말에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더라니…)



배낭을 메고 걷는 데 있어 기본이란 무엇일까?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데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1. 배낭에 대한 지식과 경험

2. 내 몸에 대한 지식과 경험


좋든 싫든 끊임없이 걸어야 하는 나의 인생길.



여행 가는데 배낭이 튼튼해야 한다는 것은 몹시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배낭을 메고 걸을 내 몸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딱 잘라 말하면 내 몸은 마치 허약한 배낭과 같았다. 잘 정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구도가 좋지 않았고 잘 먹지 않아 잘 망가졌다. 운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탄성이 낮았고 하중 또한 좋지 않았다. 그 덕에 자기 몸무게를 실제보다 무겁게 느끼며 살아왔다. 걸음걸이도 느렸다.


그뿐 아니다. 걱정이 많은 탓에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살았다. 버려야 할 것도 버리지 못하고 모두 짊어진 채. 그 덕에 스무 살 중반부터 우울증, 무기력증, 탈진까지 자주 겪었다. 허약한 탓에 스트레스 저항력이 떨어져서 공황장애까지 겪곤 했다.



여행을 위해 당신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나요?



여행을 위해 배낭을 고르다 보면 인간의 몸도 배낭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낭이 튼튼하면 많은 것들을 넣을 수 있고 오래 쓸 수 있고, 어디든 가지고 갈 수 있다. 만일 허약한 배낭 속에 많은 물건을 넣고 다니면 곧 망가지고 만다.


배낭은 튼튼해야 배낭의 도리를 잘할 수 있다. 배낭에 대해서는 매우 당연하게 들리는 이야기지만 이를 신체에 직접 적용해보면 조금 곤란해진다.


배낭이 튼튼하지 않으면,
1. 많은 것들을 넣을 수 없다. 2. 금방 망가진다. 3. 무겁게 느껴진다.

몸이 튼튼하지 않으면,
1. 많은 일을 할 수 없다. 2. 쉽게 지친다. 3. 무겁게 느껴진다.



배낭도, 몸도 튼튼하지 않으면 실제의 무게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내 삶은 왜 이렇게 무거울까?”



나는 그 답을 여행 질문서에서 찾았다.    


여행 질문서 첫 번째 질문,

 

“여행을 위해 당신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나요?”

 : “만일 가장 좋은 상태가 10점이라면 지금 제 상태는 아마 3점 정도 될 듯합니다.”


3점을 준 이유는,

1. 10kg가 넘는 배낭을 메고 걸을 만큼의 충분한 근육이 없다.

2. 배낭을 메고 걸어 본 경험, 곧 지식과 기술이 없다.

3. 오랫동안 걷는데 필요한 체력이 부족하다.


한마디로 나는 역량이 부족했다. 배낭이 어떻게 무게를 스스로 지탱하는지, 어떻게 메야 잘 멘 것인지 등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경험도 없었다. 또한 근육이 없으니 자기 몸무게도 실제보다 무겁게 느끼곤 했다. 때론 걷는 것조차 버거웠었다. 그러니 배낭도 실제 무게보다 더 무겁게 느낄 것이 분명했다.


너무 무거워서 포기하고 싶었던 내 인생처럼, 이 여행도 지쳐 포기하고 싶어 지는 게 아닐까?




여행 질문서 추가 질문


“그렇다면 당신이 원하는 점수는 몇 점인가요?”

: 제가 원하는 점수는 8점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8점은 스스로 튼튼하다고 자신하는 수준이다.

튼튼하다고 자신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해야 한다. 신체뿐 아니라 정신도 포함해서 말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무엇이 튼튼한 배낭 같은 몸인지 그 느낄 수 있었다. 평소 피곤함을 자주 느꼈던 이유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8점에 대해 몰랐다면 난 평생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나려면 배낭이 튼튼해야 한다.

인생을 잘 살려면 몸도 정신도 튼튼해야 한다.


살다 보면 때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할 때가 있다. 절대로 도망칠 수 없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때를 위해 반드시 튼튼한 배낭처럼 튼튼한 몸을 준비하자. 더불어, 배우고 경험을 쌓자. 그래야 진짜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


그것이 여행이던, 인생이든 간에.  




여행 질문서

 
여행 질문서 첫 번째 질문

“여행을 위해 당신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나요?”

 

여행 질문서 추가 질문

“그렇다면 당신이 원하는 점수는 몇 점인가요?”


송수연 코치는 10년간의 직장생활을 때려치우고 현재는 '어떻게 잘 살아야 할까?'라는 주제로 강연과 코칭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잘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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