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회의적이었던 내가 결혼해 잘 살자 사람들이 물었다. 그토록 결혼 안 한다더니 어떤 계기로 결혼을 결정하였냐고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정한게 맞나 하는 의문도 든다. "결혼을 해서 아내가 되야겠어!" 하는 결심을 하고 결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결혼으로 이끌었을까? 가늠컨데 내 안에 있는 DNA (평범한 삶에 대한 욕망)가 정한 게 아닐까싶다.
33살이 넘어가던 어느 순간 갑자기 '슬슬 결혼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자 난데없이 초조해졌고 서두르게 되었다. 마치 당장 결혼 안 하면 큰일 날 것만 같았다. (실제론 결혼 안 해도 큰일은 나지 않는다.)
괜찮은 남자들은 이미 다 짝이 있다. 여자 나이 서른 후반이 넘어가면 아무도 결혼하려 하지 않는다.라는 괴담들이 귓가에 머물렀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강한 수컷을 만나 짝을 지어라!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도킨슨 주장처럼 짝을 이루고 싶은 욕망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강한 수컷을 만나서 짝을 이루어 번성하여 잘 살았습니다~ 하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간은 아닌 듯하다. 제 팔자 제가 꼬는 스타일이라 잘 나가다가도 난데없이 "어? 이건 아니지!"하고 이상한 타이밍에 정신을 차린다. 강한 수컷이라는 조건을 붙여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만나고 파혼을 하고 결혼을 엎고.....
....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나의 결혼 적령기다.
결국은 (다행히) 정말 대단히 훌륭한 짝을 만났지만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기가 짝을 찾는데 미쳤던 바로 그 시기이다.
나 20대 때만 하더라도 누군가가 "나이 들면 결혼해야지!" 하면 "어머, 웬일이니? 결혼은 선택인 시대 아닌가요?"하고 되받아쳤는데 30대가 넘어가면서부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그려요. 결혼 그까이 꺼, 원하는 대로 사세요."
그런데,
결혼해 보니까 알겠다. 왜 다들 결혼을 하는지.
나란 인간 자체는 결혼 전과 후가 90% 비슷하다. 그러나 같은 인간인데도 단지 결혼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
* 그러나 반드시 좋은 남자와 해야 합니다. 좋은 남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냐고? 그 이야기는 차차 다뤄보겠습니다.
어쨌든! 나는 결혼을 해서 만족하고 있는 아주미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물으면 강력히 답한다.
"결혼 진짜 좋아. 결혼은 꼭 하세요!"
그러면 상대는 묻는다.
"아이는 요?"
아이가 없는 40대 아주미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다. 게다가 나 자신의 삶도 자기 맘대로 하는 중이다. 대체 결혼한 40대 여자가 무자녀라니?
"아기는 낳기 싫으면 낳지 마요. 근데 결혼은 꼭 해!"
아는 것이라곤 신혼 생활뿐이고 실제로 좋기 때문에 하라고 강력하게 권하고 있지만 아이가 있는 결혼 생활은 모르므로 아무 대답도해 줄 수 없다.
그러던 내가 임신 중에 있다. DNA도 어쩌지 못했던 나의 비출산 욕구를 운명이 뒤바꾼 것이다. 그러나 19주가 되어가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혼자(남편이랑만)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기대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
자 이제 4달이 지나면 아기가 뿅 나온다. 유전자가 정해 놓은 길 중에서 죽음 빼놓고 다 이뤘다. 내 입장에서는 뭐 대단히 홀가분하지 않지만 우리 부모님만 해도 나의 임신 소식에 굉장히 홀가분해하셨다. 본인들(유전자)의 할 일을 다 끝마쳤다는 무의식의 소리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런 걸 생각하면 가슴 밑바닥부터 답답해진다. 내 삶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