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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연 Aug 08. 2023

딩크 때처럼 데이트하기

41세 딩크족에게 아기가 굴러 떨어지다.

이전 이야기: 네, 제가 잠시 무식해서 용감했습니다. 그렇죠?




일요일 9시 고요한 여름밤, 침실의 창문을 활짝 여니 풀벌레 소리가 찌륵대고 있었다. 하! 40대 딩크족 부부가 오롯이 보내는 소중한 일요일 밤이로구나!  


그날 남편과 나는 아무렇게나 드러누워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태교 여행을 빙자(?)한 딩크족의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실히 정보를 입수하는 중이었다.


성격 좋아 보이는 여행 유튜버가 현지의 맛집을 소개하는데 문득...


우리 나갈까?
뭐든 먹자!
24시간 하는 음식점도 많잖아!


내 제안을 듣고 남편은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이렇게 재빠르게 기상하다니 노는 게 제일 좋은 사람


"나가자 나가자!

5개월 남은 딩크의 삶을 즐기자!"


우리는 정말이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뛰쳐나가 집 근처 남편이 좋아하던 냉삼집에 갔다. 임신 전 자주 가던 곳이다.


임신 전의 우리는 항상 냉삼 2인분과 비빔라면(볶음밥), 한라산 소주와 맥주를 시켜서 먹고 마셨었다. 그리고는 2차를 갔었지...


그러나 이제는 한라산 소주나 맥주는 마실 수 없다.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 집의 특징은 델몬트 병에 보리차를 준다. 나는 보리차를 원샷했다


캬!!!! 죽인다!!!!!



나는 점점 임산부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




남편과 나는 애주가 부부이다.

과하게 마시지는 않지만 음식에 어울리는 술을 반드시 곁들인다.


임신을 알고 난 뒤로

남편은 술을 일절 마시지 않는다.


아이는 여자 배 속에서 키우지만

임신은 남녀 모두의 것이기 때문에

남자도 술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함께 하는 것이다.


회사 워크숍에서도 맥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탄한다.


이 남자, 아버지 자격이 있다!


남편으로써의 자격은?
진작에 1급으로 취득 완료했다.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도

술을 마시고 늦게 집에 오거나

담배를 끊지 못하거나 한다면

나는 존경하기 어려울 것 같다.

 

출근하며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해 버리고

퇴근 후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자기 전 아내의 다리를 마사지해 주는  

내 남편은 정말 멋진 사람이다.





구닥다리 표현이지만 냉삼집에 부부의 추억을 하나 더 얹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주변을 손잡고 걸었다. 2차는 갈 수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괜찮았다.


우리 여기도 갔었는데

저기도 갔었는데

한껏 추억을 되살려 보았다.

... 죄다 술집이다.


언제쯤 우리는 또다시 요리에 반주를 곁들이며 둘이서 오롯이 데이트할 수 있을까? 아무 걱정도 근심도 없이 두 사람의 취향에 집중하며 몇 시간이고 보낼 수 있을까?


... 엄마랑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강하게 결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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