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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연 Jul 31. 2023

알고는 못하는 게 임신이라던데

41세 딩크족에게 아기가 굴러 떨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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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처럼 부지런하지는 않아도

대책 없는 베짱이는 아니었는데

임신 이후 게으름뱅이로 살고 있다.


임신 초기에는 지옥의 입덧, 12주 절박유산 진단, 13주에는 조산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도 조심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기겁했다.


안 돼요!
 전 뭔가 해야 해요.
가만히 누워서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고요 흑흑


일벌레 임산부 심정이 그렇거나 말거나 운명은 아기(봄)의 편인 듯하다. 강의 일정이 취소되거나 착착 변경되고 있기 때문이다.


절박유산을 진단받은 다음날 제천에서 강의가 있었다. 무려 왕복 6시간이다. 그 강의가 전날 취소가 되었다. 강사 인생 처음 겪는 일이어서 무척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다음날 유산 방지 주사를 맞게 된 것이다.


만약 취소가 되지 않았다면? 고객사에 전화해서 사정을 하거나 불안함을 안고 6시간의 운전을 해서 제천에 다녀왔을 테다.


약속한 강의를 하루 전날 못 가겠다고 하는 강사라고? 절대 안 되지. 그렇다고 살려달라는 뱃속의 태아를 어르고 달래서 제천까지? 어이고야.


이렇게 다행일 수가! 쫄깃하지 않습니까?  






1) 배통증

임신하면 생리를 안 해서 좋지만 매일 배가 아프다. 배가 콕콕 쑤시기도 하고 생리통처럼 싸하게 아프기도 하고 배를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묵직하게 아프기도 하다.


2) 빈뇨

자궁이 커져서 방광을 누르므로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간다.  


3) 수면장애

배속에 사람이 있다 보니 밤에 잠을 깊게 못 잔다. 악몽에 시달린다.


4) 기분장애

눈물이 난다.


5) 입덧

그중에 가장 괴로운 것은 바로 지옥의 입덧!




임신의 소식을 알리는 골든벨

아름다운 구역질 입덧.


티브이 속의 여주인공이 '우엑'하면 가족들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어머나! 혹시...?'

모두 행복해하며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러나 여주가 변기로 뜀박질해서 허연 위액을 게워내는 것까지 보여주진 않는다. 나쁜 놈들 속았다.


지금 입덧쟁이로 살아가는 나는

누구보다 꾀죄죄한 얼굴,

거렁뱅이보다 못한 몰골로

침대에 대자로 뻗어있다.


입가에 과자 부스러기를 묻혔지만

닦을 힘도 없이 널브러져 있다가

남편이 집에 오면 그제야 기신기신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41세 노산모의 입덧의 현장.



소름이 끼친다.
나... 5개월 후에는 이런 모습이 된다는 거야?



옷이고 어디고 밥풀을 덕지덕지 묻힌 채로 희멀건 웃음 짓는 엄마 좀비.... 틈이 나면 물에 밥을 말아 허겁지겁 들이키는 생존형 여자 사람으로.... 오 안돼   

... 하는 망상에 잠시 빠졌다가 입덧약에 취해 잠을 자다가 악몽에 놀라 깨고 있다.


그 와중에 아기는 벌써 레몬크기만큼 자라났다.


이 녀석.

나오기만 해 봐라 아주 그냥

볼에 침을 덕지덕지 묻히며 뽀뽀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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