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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연 Aug 16. 2023

40대 임산부가 이렇게 많다니

41세 딩크족에게 아기가 굴러 떨어지다.

지난 이야기: 고령산모이므로 염색체 수적이상이 우려됩니다.




임신을 하고 나서 달라지는 것 중 하나는 인터넷 커뮤니티 글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무자비하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20 대건 40 대건 다 똑같다.


그도 그럴 것이 대체 내 몸에서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의사에게 일일이 물어볼 수가 없기 때문에 경험자(선배)들의 질문과 답변을 보며 힌트를 얻는 것이다.



14주인데 배가 아프고 하혈을 해요.
벌써 7주인데 아기집이 안 보여요.
21주인데 몸에 여드름이 너무 나요.

... 거기 누구 없나요?
저랑 비슷한 사람 있나요?
 정상인가요?



인터넷의 글을 읽으며 불안도를 낮추면 참 좋겠지만 대개는 불안을 가중시킨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저 안전해요>보다 <문제가 있어요>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후닥닥 찾아 뒤진다. 안 보면 불안하고 답답하니까. 생판 모르는 누군가가 단편적으로 적어놓은 짧은 글을 가지고 나의 증상과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7주에 봄의 심장이 느리게 뛴다는 소견을 듣고 인터넷 게시물을 모두 뒤진 바, 10개 중 9개가 그대로 유산되었다는 글을 읽고 내내 불안했었다. 결과는? 봄은 다른 병원에서 우렁찬 심장 소리를 들려주었다. 단지 의사의 소견 차이였다.  (속이 밴댕이보다 좁은 나는 단단히 삐져서 이전 병원에 발길을 끊어버리는 것으로 복수했다. 하하)


때문에 대다수의 의사는 임산부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인터넷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띠용-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해서 손가락이 꼬물거리는걸 뭐. 이게 초산이면 더하다. 그간 40대의 연륜을 자랑했는데 이 방면엔 무지몽매하기 이를 데 없다.


가장 좋은 태교가 안정된 임산부의 마음이라는데 나는 지금도 2차 정밀기형아검사 결과를 상상하며 초조해하고 있으니 말 다했다.






인터넷의 세계에서 헤엄치다 보면 종종 이런 게시물을 볼 수 있다.


2023 토끼띠 맘 단톡방입니다~
서울, 경기지역 토끼띠 맘들 정보 공유 방
토끼띠 용띠맘들의 활발한 단톡방



보시다시피 아무리 봐도 40대 임산부가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젊고 인터넷에 능한 (나도 능하지만) 젊은 인싸 엄마들의 공간인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다지 활발하지도 않고 밝은 여성들의 기(?)에 자주 눌리는 나는 차마 입장 버튼을 누를 수 없다. 그것이 다가 아니다. 100명이 넘는 임산부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내가 40대임을 밝힌다는 건 더 어렵다. 같은 처지의 동지들에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난데없이 공경을 받을 수는 없다. 그러니 나는 내 스타일로?


나는 즉각 행동에 옮긴다.

그까짓 거 40대 단톡방을 만들면 되지!


                                                                                                          

게시물을 올리자 얼마 안 가 30명 정원을 가득 채웠다. 40대 임산부 단톡방이 없어서 아쉬웠다며 감사의 인사까지 받았다.


이렇게 40대 임산부가 많다니! 나만 늙다리로 외로운 줄 알았는데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어주었다. 몇 달째 아무도 나가지 않으므로 인원 충원은 꿈도 꿀 수 없다.



나이가 있다 보니 멤버의 구성이 다양하다. 넷째를 품고 있는 아이 셋의 엄마, 시험관을 10번 이상 하고 드디어 아이 만날 준비가 다 된 엄마, 첫째가 아른거려 일주일 만에 조리원에서 탈출한 엄마....


도중에 안타까운 사건을 경험하기도 한다. 아기가 자라지 못하고 결국 심장이 멎은 일, 기형아 검사를 결국 통과하지 못한 일도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진심을 다해 위로했고 다시 올 아기를 기다리는 동안 모두 힘이 되어주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나이가 많아서 조심스럽고 결이 비슷한 느낌이 좋다. 들어온 사람은 있어도 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정원 30명이 가득 찬 상태로 오래도록 보내고 있었는데


아직도 대기자가 속출하고 있다.




꽉 차버려서 더 이상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40대 방. 이곳에서 노산모 들은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는다. 40대라 다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느낌으로 돈이 많이 드는 검사도 척척 한다.  


정원을 늘려볼까 했지만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그대로 두고 있다. 인연을 만드는 일은 매우 조심스러운데 30명도 큰 숫자이기 때문이다.


40대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이곳에서 나는 오늘도 위로를 받는다. 실명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래도 나는 지금의 소중한 만남을 잘 유지해보고 싶다.





40대가 이렇게 많다니


그러니 40대 임산부 여러분,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랍니다.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40대들이 아이를 품고 있으니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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