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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연 Aug 31. 2023

남편과 행복한 전생 즐기기

41세 딩크족에게 아기가 굴러 떨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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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 시끌벅적한 아침 새소리에도 결코 물러섬 없이, 눈도 뜨지 않고 게으름을 피워본다. 이윽고 한 주간 저장 된 잠의 욕구가 완벽히 소진되고 그제야 슬며시 눈을 뜬다. 


남편은 진작 일어나 핸드폰을 하고 있다. 일찍 일어날 이유가 없으니 그저 누워서 마음껏 휴일을 즐기는 모양이다. 슬며시 인기척을 내본다. 남편의 눈이 동그래지며 "어구, 일어났어?" 하는 것이 좋다. 어디 갈까? 뭐 먹고 싶어? 오로지 아내의 선호에 집중된 주말 동선을 계획한다. Happy wife is happy Life니까!   


이것이 바로 딩크족 아내의 아침!

그러나
이렇게 철저히 게으르며
자신의 욕망만 채우면 되는 아침이
앞으로 며칠이나 남았을까?

... 4개월 남았다. 


봄이의 예정 일인 1월 1일까지 약 4개월 남았다. 그 후 나는 어떻게 될까?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게 된다. 원초적인 욕구에 매달리는 삶. 폭탄 맞은 것처럼 벌떡 일어나는 삶. 나의 욕망보다 아기의 욕구가 우선시되는 삶. 



봄이 예정일 1월 1일 



아기 낳기 전의 삶이
마치 전생처럼 느껴질 거야. 




친구가 그랬다. 지금 전생을 즐기라며. 나와 남편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최선을 다해 전생을 만끽하고 있다.  




전생을 즐기려면 몇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정보를 미리 입수해 두어야 시간을 더욱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1. 평소 핫플을 찾게 되면 지체 없이 저장해 둔다.

2. 주말 오전, 그동안 제비처럼 열심히 모아두었던 리스트를 죽 살펴보고 

3. 원하는 곳이 있다면 즉시 출발! 


미적대면 곤란하다. 세수만 하고 튀어 나가야 완벽하다. 


어제는 웬일인지 바닷가에 가고 싶었다. 저장해 둔 리스트에서 해수욕장을 찾아냈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우리 부부에게도 생소한 이름의 해수욕장이었다. 그곳은 바로! 당진에 있는 왜목해수욕장, 작은 항구가 딸려있는 아늑하고 조용한 곳이다. 


도착하자마자 항구의 정박해 있는 작은 배에서 신선한 우럭회를 먹었다. 이토록 신선한 회라니 임산부도 참을 수 없다. 쫄깃하고 고소한, 갓 잡은 생선을 날로 먹는 호사를 누리고는 항구를 지나 해변을 걸었다. 


하와이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색적인 분위기의 커피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임산부도 하루 한잔의 커피는 무해하다) 그리고 아무 방해 없이 어른들의 대화를 했다. 어른들이 만날 때 아이가 껴있으면 아이에게 주의를 기울이다 보니 진지한 대화가 어렵다. 차라리 어른의 욕구를 포기하고 아이와 실컷 놀아주는 편이 낫다는 결론이다. 그러다 보면 어른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오늘 무슨 이야기를 했지?"


남편과 둘만의 시간에 곧 아이가 끼어들게 된다. 그는 우리 두 사람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우리의 대부분의 시간은 그의 필요를 채워주는데 소비될 것이다. 그 시간을 보내고 나면 기진맥진해서 각자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가게 될 테지.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도 우리 두 사람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져서 그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내 눈에는 남편도 아기 같다. 애기가 태어나면 남편의 얼굴이 아저씨로 보이게 되는 걸까? 




아이가 없는 부부는 한자리에 세 시간씩 있어도 좋다. 커피를 홀랑 마시고는 그 자리에서 해물라면 2인분을 시켰다. 칭얼거리는 아기가 없으니 어른 두 사람은 자기 맘대로 시간을 보낸다. 


달라진 점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아기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다. 


"어머 저기 봐 기저귀 찬 아기 너무 귀엽다.", 

"어머 재 신발에 모래 터는 것 봐, 저렇게 쪼그만데 말귀를 알아듣나 봐~."


지극히 자기밖에 모르던 딩크족 아내는 마음이 서서히 변화해서 이렇게 말한다. 


나중에 봄이랑 다시 와도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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