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3개월 8일 전-면접

by 퇴사마

유산 후 수술을 하고 그다음 날 면접을 봤다.


다행히 면접은 줌으로 이루어졌다. 컨디션도 좋았다.


30대 후반인 내가 이 나이에 이직을 시도한다는 것은 당연히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봉하락, 직위하락 등 각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면접을 통해 현실을 접하니 그 각오가 어디론가 금세 사라져 버렸다.


현재의 60% 수준으로 낮아지는 연봉, 그 분야 초임으로써 해야 하는 직무와 잡다구레한 일,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나에 대한 대접, 어린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에 대한 상사의 우려 등.


모든 것이 녹록지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망설이게 만든 건 면접관들의 같잖은 태도였다. 내가 만약 20대라면 그들이 스스로 내세우는 그들 회사의 존재가치, 어려운 여건으로 인한 낮은 연봉책정, 워킹맘에 대한 우려 등을 함께 통감하며 무한 동의를 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생활 15년 차에 접어든 내게는 오히려 그들의 태도와 면접자를 대하는 방식이 눈에 거슬리기까지 했다.


면접관들이 그 회사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면접관들이 그 회사의 분위기를 대표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과 달리 면접에서는 무조건 다 수용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고 육아도 전혀 직장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야심 차게 공수표를 날렸다.


막상 면접이 끝나고 나니 허탈감이 몰려왔다.


어느 회사든 쉬운 곳이 없다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내가 기대했던 새로운 회사에 대한 이미지와 너무 맞지 않는 것을 깨닫고 나니 다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굳이 이직을 해야 할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새로운 분야에서 경력을 쌓는 게 1순위라 생각했고 그러려면 연봉하락도 막내노릇도 뭐든 감수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맛보기도 안 되는 면접에서 확실한 결론을 지었다.


나는 이미 꼰대다. 어디 가서 막내노릇은 못 하겠네…


이직을 시도했던 그 회사가 반드시 이상한 곳은 않을 것이다. 그 면접관들도 그러할 테고.


하지만 내 눈에 이상하고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하게 비쳤다.

왜냐면 현재 나에게 정상적이며 합리적인 시스템은 모두 현직장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나는 그만큼 여기에 길들여졌다.



면접 이후 몇 시간 만에 결론을 내렸다. 가지 말아야지. 어떻게 안 간다고 말을 해야 할까. 뭐든 다 할 것처럼 면접 때 이야기했는데.


그날 밤새 잠을 설치며 했던 고민이 무색하게 그들은 내게 합격도 불합격도 결과 발표조차 해주지 않았다.



불합격인 것이다.



그들도 아마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겠지.



‘쟤가 이 연봉받으면서 막내노릇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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