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3개월 28일 전 - 유산

by 퇴사마

둘째 아이를 가질 계획이 딱히 있지는 않았다. 그냥 아이를 다시 낳고 기르는 것에 대한 내 단순한 의사를 묻는다면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였다.


다만 남편이 바라는 일이고 첫 아이에게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또 한 번 일을 쉬고 퇴사의 고민을 보류할 수 있는 기회였다.


결정을 미룰 수 있는,


언제고 나는 선택지를 고를 수 없는 상황에선 그 선택을 미루는 걸 좋아했다. 물건을 고르는 일부터 어느 회사를 다닐지까지.



상담사가 내게 언제고


“휴직을 하려고 애를 가진다고요?”


라고 반문한 적이 있다. 상담사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가치 판단을 드러내지 않아야 할 텐데


아무래도 내 말이 그녀가 듣기에도 이상했나 보다 싶었다



갑작스레 생긴 아이였지만 당장 몇 달 뒤부터 퇴사도 근무도 아닌 휴직의 기회가 생긴 것도 좋았고, 새 생명을 키우는 것에도 설렘이 일었다.



하지만 내 뜻과 달리 아이를 잃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유산은 유산대로 슬펐다.


그리고 진짜 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잃은 시점에 퇴사를 한다고 하면 분명 동료들이 내게 물을 것이었다.


회사 때문에 아이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고,


아니다.


회사 때문에 유산이 된 것이 아니다.


회사 때문에 임신을 한 것이다.


그게 문제다.


어쨌든 내가 지금껏 둘째 임신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지 않은 이유는, 내게는 휴직이라는 탈출구가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와 임신과 유산을 거치고 나니,


내가 이 회사와의 끈을 놓지 않으려 무슨 일을 벌인 걸까?


싶다.


그토록 대단하고 좋은 직장인가?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첫째 아이도 비슷한 마음으로 임신을 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휴직하고 복직할 때 되면 퇴사할지 말지 결정해야지라고 보류했었다.


하지만 복직 시점이 되나 집에서 2년을 쉰 내게 새로운 기회나 직장은 있을 수 없었고 그저 나를 복직시켜 주는 지금의 회사가 고맙기까지 했다.


다시 또 5년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려는 이때,


브레이크가 걸렸다.



내가 또 퇴사를 피하려고 어떤 기회들은 놓치고 어떤 일은 또 벌이고 있구나.



다음 주 소파술 후 퇴사를 진짜 해야겠다.



그리고 바로 이전부터 눈여겨 오던 다른 직종의 회사 채용공고를 보고 충동적으로 이력서를 넣었다.


이제 갓 유산하고 다음 주 수술을 앞둔 이 상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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