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의 살 던 고향집은

부강면지 2015 37쪽에서 발견한 사진 한 장 


한눈에 알아보았다.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었을까? 세종시로 편입된 우리 동네의 역사를 정리한 온라인 자료였다. 우리 집이 사진 중앙에  떠억 하니 자리 잡고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우리 집 본체의 옆 모습 main house side view 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까지 살았던 우리 집에는 포토 스팟 photo spot이 몇 군데 있었다. 대문앞, 대문 옆 꽃밭, 초등학교 4학년 때 쯤 큰 광을 헐고 지은 집 앞 같은 곳이다. 내가 주인공인 사진 속 우리 집은 집의 아주 일부였을 뿐이다. 이렇게 우리 집을 통째로  볼 수 있는 사진을 보게 되다니. 반갑고 먹먹했다. ‘새마을 하수구작업 (부강리 1971)’ 이라는 사진 설명으로 미뤄보면 나는 사진 속 우리 집에서 아기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우리 집은 ‘또랑’이라고 부르는 작은 개울이 경계로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창문아닌 창문 같은 작은 문이 두 개 있었다. (이 문 밖은 바로 또랑으로 떨어지는 2미터 정도의 낭떠러지다. 어느 해 인가 나는 이 문에 앉아 또랑 옆 자투리땅에 심은 마늘을 캐고 계신 할머니화 할아버지를 바라봤었다. ) 건물의 맨 왼쪽부터 부엌  그 다음 방이 3개 연달아 붙어 있었다. 가장 오른쪽 방에는 작은 광이 딸려 있었다. 왼쪽 2개의 방은 부엌에서 불을 지폈고, 맨 오른쪽 방은 별도의 아궁이가 있었다. 맨 오른쪽 방이 안방의 역할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나는 이 방에서 생활했고 식구들이 모여 밥을 먹는 장소도 주로 이 방이었다. 안방과 부엌 사이, 첫 번째 방과 두 번째 방 앞에는 툇마루 보다 넓은 나무마루가 있었다.      


사진에서 보이듯 지붕은 2단으로 되어 있었다. 본채의 지붕 끝에서  개울 담장까지 또 다른 지붕(요즘의 캐노피)을 이어 놓았기 때문에 안방부터 부엌까지 비가 와도 비를 맞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다. 이 공간이 꽤 넓어서 단무지를 만드는 큰 항아리도 묻을 수 있었고, 제사나 명절이면 마루가 부엌의 아일랜드 역할도 했다. 내 생일 파티 장소이기도 했다.      


본채 뒤에 보이는 높은 박공지붕의 목조건물은 광이다. 어린 내 눈에는 아주 아주 큰 광이였다. 창고였는데 일제강점기 때부터 있었던 건물이라고 했다. 광에는 포도주를 담가 놓는  큰항아리가 몇 개 땅에 묻혀 있던 기억이 난다. 광의 문 위쪽부터 마당을 가로 질러 빨래 줄이 있었고  문 옆에 강아지 집도 있었다.      


지금은 복개가 되어 없어졌지만 개울을 건너는 다리가 있었다. 신작로에서 또랑을 따라 조금 들어와야 우리 집이 있었는데, 다리와 우리집 사이에는 면장댁이 있었다. 할머니는 우리 앞집을 면장댁이라고 불렀는데 언제 면장을 하셨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냥 면장댁이었다. 면장댁에는 큰 감나무가 있었고 누에를 키우셨다. 사진에서 우리 집 왼쪽에 있는 집이 면장댁이고 보이는 나무가 감나무 같다. 와우!     


사진 속 왼쪽에 보이는 논이 갈아엎어져 있는 것을 보니 봄인 것 같다. 공사도 땅이 좀 녹아 땅파기가 수월할 것이 아닌가? 봄에 찍은 사진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보니 카메라 렌즈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바람에 얼굴이 찍힌 아저씨의 눈이 살짝 찌그러져 보인다. 봄 햇살이 제법 따가웠나 보다. 사진이 1971년 봄에 찍힌 것이라면 나는 돌이 지나지 않은 아기이므로 기어다니고 있지 않았을까?      


면장댁 넘어 사진 왼쪽 상단에 있는 커다란 건물이 기차역이다. 역은 언덕에 있었기 때문에 역 앞 광장은 비탈진 경사면이어서 가고 오는데 조심해야 했다. 코레일 앱으로 검색해 보니  무궁화호가 하루에 하행 5번, 상행 6번 선다. 내가 살던 때라고 기차가 자주 서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통근열차로 사람들이 이용했었다. 새벽 차로 삼촌이 서울을 가기도 했고 저녁 때 쯤 이모가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동네에는 목욕탕이 없었기 때문에 목욕을 하러 조치원이나 대전으로 갈 때도 기차를 탔고 방학이면 나는 기차로 이모네를 가기도 했다. 모두 비둘기호였겠다.      


어쩌다가 2022년 무궁화호선을 다 타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었다. 서대전에서 목포가는 무궁화호를 처음 탄 후부터 였다. 군산서 시작하는 장항선, 청량리에서 제천, 영주를 거쳐 부산의 부전역을 가는 중앙성, 목포에서 광주, 순천, 하동, 다시 부전역으로 가는 경전선, 대전, 청주, 제천의 충북선, 제천에서 태백, 동해로 가는 태백선 등 동해산타열차를 제외한 모든 무궁화 열차를 탔었다. 그런데도 아직 부강역에는 내리지 못했다. 올해는 부강역까지 타봐야 겠다. 역에 내려 옛 우리 집까지 걸어가 봐야겠다. 생각만으로도 콧등이 시리다.

                     

작가의 이전글 달걀말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