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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칫국

순남씨의 부뚜막에서 내가 컷다

김칫국에 밥을 말면 안된다. 김칫국의 핵심은 국물에 있다.국물은 염분이 많아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지만 김칫국의 칼칼하고 시원함은 그냥 마셔두기로 하자.      


우리 집은 김장김치가 슬슬 새콤해져가고 칼바람이 거세지는 한 겨울부터 으슬으슬한 바람이 여전히 서성거리는 초봄까지 김칫국이 자주 밥상에 올라왔다. 방문만 열면 바로 마당이었으므로 지금보다는 겨울을 훨씬 직접적으로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스댕’ 국그릇에 담긴 뜨끈한 김칫국에서 올라오는 뭉글뭉글한 증기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마당 뒤쪽에 묻혀있는 김장독을 열고, 서걱거리는 배추김치 반포기를 꺼내 오는 것부터 요리는 시작됐다. 배추김치 반포기면 열사람이 너끈히 먹고도 남을 김칫국이 만들어졌다. 우리 집 김장김치에는 젓갈이 적은 양으로 사용되었다. 어느 해에는 멸치젓이 슬쩍 들어가기도 했고 어느 해에는 아예 젓국 없이 김장을 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우리 집 김치는 깊은 맛 보다는 엄청 시원했다.      


언젠가 막내삼촌이 젓갈 안 들어간 우리 집 김치가 정말 맛있다고 했다. 어린 나는 남의 집 김치를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막내삼촌의 말이 인상깊었었나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을 하는걸 보니. 여하튼 김칫국은 살짝 신 김치이어야 제 맛이 난다. 시어 꼬부라진 김치는 볶음이나 찜용이다.    

  

할머니는 두께 1cm 미만으로 쫑쫑 썬 김치를 참기름을 미리 둘러 조금 달궈진 솥에 달달 볶은 후 찬물을 부어 국물 양을 잡으셨다. 달궈진 기름과 김치가 만날 때 ‘촤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수증기가 뭉게뭉게 솥 밖으로 넘쳐났다. 찬물로 국물 양을 잡은 후 멸치를 넣는다. 멸치는 은빛의 구멍이 송송 뚤린 넓적한 손바닥만한 원통 모양의 알루미늄 통에 이미 들어가 있는 상태다. 알루미늄 멸치통 투하! 이제 김치가 푹 익을 때 까지 끓여주면 된다.      


할머니가 김칫국의 간을 무엇으로 맞추셨는지 지금의 나는 알 길이  없다. 그 정도까지 내가 세심히 관찰한 것은 아니다. 아마도 조선간장이였겠지? 그런데 김칫국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두부다. 할머니는 김칫국에 두부를 꼭 넣으셨다. 두부를 체 썰듯이 가로세로 1cm 정도 두께로 길게 썰어 넣으셨다. 아마 김치의 길이와 폭에 맞춰 두부의 크기도 정하신 같다. 내가 김칫국을 언제부터 알아서 만들어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도 김칫국을 끓일 때는 두부를 꼭 넣는다. 집에 두부가 없다면 김칫국을 끓일까 하다가도 그만둔다. 그만큼 나에게 김칫국 속 두부는 필수 아이템이다. 이틀쯤 지난 김칫국 속 두부는 간이 베에서 적절히 짜면서도 시원하다.      

지금도 날이 으스스할 때면 김칫국 생각이 난다. 나는 김칫국을 끓일 때 참기름에 김치를 볶지 않는다. 멸치를 넣는 알루미늄 통도 없다. 사먹는 배추김치에는 젓갈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내 입맛에 시원하지 않다. 재료도 방법도 모두 다르지만 어설프게 끓인 김칫국을 먹으면 여전히 그 때 그 시원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나는 기억을 먹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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