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양파채 볶음

순남씨의 부엌에서 내가 컸다


볶은 양파채를 뜨거운 밥 위에 덮밥처럼 수북이 쌓았다. 친구가 준 볶음고추장을 한 숟가락 투하! 하고자 했으나 진득한 고추장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골고루 섞이도록 오래도록 비볐다. 기름에 볶인 양파는 ‘미끌미끌’거리기 때문에 고추장과 잘 섞이지 않는다. 그래서 천천히 살살 섞어줘야 한다.      


비벼진 밥을 입에 넣는 순간? 감격이다. 기억 속의 그 맛이다. 따뜻한 맛. 달콤하면서도 고소하고 매콤한 맛. 혀에 착착 감긴다.

       

내가 만든 ‘양파채 볶음’은 양파채 썰기부터 벌써 할머니 것이 아니다. 더 얇게 썰었어야 했다. 양파채의 두께가 약 5밀리미터 정도이어야 하는데 나는 1센티미터 정도로 두껍게 썰어버렸다. 양파를 볶는 것도 더 볶아서 ‘흐믈흐믈’하게 만들었어야 했다. 성질 급한 자는 양파가 온전히 푹 익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볶아지고 있는 양파채에게 간장을 부어버렸다. 그런데도 이런 맛이 난단 말인가. 내 미각이 고장 나 버렸는가.      


양파채 볶음은 우리집 여름 반찬이었다. 정말 자주 먹었다. 이제야 안 거지만 양파에도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이 있단다. 내가 아는 양파는 껍질이 노란 오렌지빛이었다. 만생종 같다. 할머니는 양파절임은 안 하셨다. 양파는 무조건 채를 쳐서 볶아주셨다. 근데 그게 맛있었다. 고추장 안 넣고 그냥 비벼 먹어도 맛있었다.     


요즘 나는 기름요리를 잘 하지 않는다. 계란 후라이나 계란말이도 잘 안한다. 아파트에서 기름요리를 하면 환기하는 것이 귀찮고, 렌지에 기름 튄 것을 청소하기는 더 귀찮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 양파채 볶음을 한 건 정말 큰 맘 먹고 해 본 거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에 성공하다니! 기쁘도다. 


이 기분을 살려 가지볶음도 해볼까? 가지볶음에 양파가 들어갔던 것 같기도 한데...... 가지와 양파를 동시에 넣고 볶아야 하나? 각각 볶아서 섞어야 하나? 흠.      


내만나먹 어깨너머 레시피 : 양파채 볶음

① 양파를 곱게 채 썬다. 어느 방향이든 상관 없지만 결과 같은 방향으로 써는 것을 추천.

② 식용유가 적당히 달궈지면 카멜라이제이션 되기 직전 까지 볶아준다. 센불에서는 양파가 익지 않고 타버리므로 주의!

③ 양파가 투명해지고 약간 질척해지면 다 익은 것이다. 여기에 간장으로 간을 하면 끝.   양파도 뜨겁고 팬도 뜨겁기 때문에 간장을 넣자마자 김이 무럭무럭 날 것이다. 얼른 섞어주면서 불을 끄자. 


※주의 : 볶음용 기름은 일반 식용유 사용하기. 향이 강한 참기름, 들기름. 올리브기름은 비 추천.      

작가의 이전글 경계경보를 대하는 할머니의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