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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상

순남씨의 부엌에서 내가 컸다

요즘도 하는지 모르겠다. 나 어릴 적에는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에 아이들에게 옷이나 신발을 새로 장만해 주는 것을 ‘추석빔’, ‘설빔’이라고 했다. 우리 집은 추석이나 설이라고 해서 옷가지를 사 주신 적은 없었다. 양말 한 짝도 새로 생긴 적은 없다. 그렇다고 내가 헐벗고 살았다는 소리는 아니다. 

    

추석빔 설빔은 못 받았지만, 나는 매년 꼬박꼬박 생일상을 받았다. 그것도 과하게 받았다. 내 생일은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친구들을 초대했고 사진도 찍었다. 매년 이렇게 생일 이벤트를 한다는 것은 시골 동네에서 흔한 일은 아니었다.     


내 생일은 우리 집의 중요한 날이었다. 내 생일에는 시집간 이모도 왔었고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타지에 나가 있던 삼촌도 왔다. 내 생일상은 오롯이 나를 위한 잔칫상이었다.      


할머니는 생일파티를 왜 해주시는지는 말씀하신 적인 없었다. 그냥 내 생일이 되면 당연하게도 나는 친구들에게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놀자고 했고 맛있는 것을 먹고 사진 찍고 놀았다.      


할머니표 생일상은 내가 고2때까지 받았다. 대학교 다닐 떄는 기숙사에 있는 나를 불러 막내이모가 미역국을 끓여줬다. 마흔 넘어 몇 년간은 둘쨰 이모가 생일날이면 내게 전화를 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생일은 나에게 중요한 날이었다. 할머니가 버릇을 그렇게 들인 것이다. 생일은 특별한 날이라고. 이 세상에 태어난 일은 좋은 일이라고.     


나는 할머니의 생신날을 모른다. 모른다는 것도 몰랐다고 해야 하나. 할머니도 분명 당신의 생일날 미역국을 끓이셨을텐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할아버지 환갑잔치는 기억이 나는데 할머니 환갑잔치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막내이모부님 말씀으로는 할머니 환갑잔지에 할머니는 손님을 대접하시느라 바쁘셨다고 한다.      

생일을 오십법쯤 찾아먹고서야 할머니의 생일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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