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 <국경시장>
김성중 작가의 <국경시장>은 만월에만 열리는 신비로운 시장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기억을 팔아 일종의 화폐인 ‘비늘’을 사고, 그 비늘로 갖고 싶은 물건과 바꾼다. 나쁜 기억을 없애고 평생을 찾아 헤맨 귀한 것도 손에 쥘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고 생각하며 쉽게 기억을 팔아넘긴다. 그러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마저 잊게 되고 빈껍데기의 육신으로만 남아 시장을 부유한다.
꽉 찬 달과 그 아래 화려하고 이국적인 국경시장 풍경을 상상한다. 그 안으로 걸어가며 나도 내 기억 몇 가지를 정리해 봤다. 버려도 되는 것과 버릴 수 없는 것들로. 소설 속 인물들은 흐릿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시작해 나쁜 기억을 하나둘 팔고 나중에는 좋은 기억까지 다 팔아버렸지만, 나는 슬픔 몇 개만 딱 버리고 오고 싶었다.
이를테면 처음 마주해 본 친구의 적대적인 표정, 처음 느꼈던 소외감, 돈 때문에 느꼈던 패배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때는 미안한 일인지 몰라서 사과하지 못한 철없는 말실수들도 마음 편하게 지우고 싶었다. 내 잘못, 네 잘못 할 것 없이 모두 팔아버리고 나면 ‘사람이 다 그렇지’ 따위의 회의적인 생각도 같이 버릴 수 있을 텐데. 살아갈 남은 날 동안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언제든 또 나를 덮칠 것이고 많은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사소한 아픔까지 굳이 안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러다 한편 이런 생각도 한다. 내가 그나마 세상에 착하게 굴 수 있는 것은 다쳐 본 덕이라고. 상처 한 번 안 받아보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헤아릴 수는 없다. 그러니 나쁜 기억도 쉽게 버릴 수 없다. 악해지는 건 죽기보다 싫으니 차라리 지난날의 수치를 쭉 메고 걸어가기로 한다. 그러면 도중에 길을 잃지 않고, 최초의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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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109012104025#csidx03445d70d5e2ea98ad9cd59f210fa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