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유감을 표한다. 유감으로 생각한다. 유감스럽다’는 표현을 뉴스를 진행하며 자주 접한다. 사과가 나와줘야 할 타이밍에 빈번하게 대신 쓰는 이 말을 볼 때마다 한탄스럽다.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해도 실제로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거면서 그 말이 그렇게 어렵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말도 ‘함부로 죄송하다고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를 잘 지키라는 걱정 섞인 그 말의 선의를 알기에 불만을 품은 적은 없지만 그게 너무나 유용한 팁이 되는 세상은 서글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길래 이게 삶의 지혜가 된 걸까.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 주인공 중 하나인 알랭은 길에서 어떤 사람과 부딪친 후 친구 샤를에게 전화를 걸어 화를 쏟아낸다. 사실 둘 다 서로에게 ‘부딪힌’ 사람인데 즉각 미안감을 느끼고 사과해버린 자신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알랭은 샤를에게 묻는다. 자기가 ‘부딪쳤다’고 자기 잘못이라며 사과하는 사람과 자기는 ‘부딪힌’ 거라며 상대를 비난하는 사람 중 너는 어느 쪽이냐고. 이쯤에서 나는 샤를과 같이 사과하는 사람 편에 섰다가 알랭에게 비난을 듣는다.
“아이고, 이 친구야. 너도 사과쟁이 부대에 속한다는 거네. 사과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사과를 한다는 것은 자기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며 모두가 나를 비난하고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거라는 알랭의 말에 동의한다. 자칫 남이 먹을 욕까지 내가 먹게 될지 모르는 위험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도통 사과쟁이를 찾기 힘든 이 세상에서 나는 샤를의 다음 말을 자주 끌어다 쓰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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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109022047005#csidx9bfdbcfc43124508ec383325fa10b9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