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딩턴 (Paddington , 2014)
마멀레이드를 사랑하는 말하는 곰, 동화 같은 나라 영국, <해리포터> 시리즈 제작진. 이런 조합이 어찌 재미없을 수 있을까? 영국 작가 마이클 본드가 써낸 '내 이름은 패딩턴'(1958)은 지금까지 4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3,500만 부 이상이 팔린 최고의 베스트셀러다. 그리고 <해리포터> 시리즈와 <그래비티>를 제작한 데이비드 헤이먼이 제작을 맡아 최대한 애정을 담아 영화화했다. <향수>의 주인공 벤 휘쇼가 귀여운 곰 패딩턴의 목소리를 맡았고, 휴 보네빌, 샐리 호킨스, 피터 카팔디는 물론 니콜 키드먼까지 총출동하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원래 콜린 퍼스에게 패딩턴 역이 들어갔다고 하는데 중저음의 울림통이라 고사했다.) 익숙한 페루를 떠나 낯선 영국에서 좌충우돌 사고를 치는 패딩턴의 이야기는 따스함을 원하는 겨울에 딱 알맞은 영화다.
말썽꾸러기 패딩턴(벤 휘쇼)은 삼촌, 숙모와 함께 야생에서 마멀레이드를 만들어 먹는 귀여운 아기곰이다. 하지만 평화로운 페루의 일상은 대지진으로 무너진다. 결국 오래전 찾아온 탐험가의 약속을 기억하고 패딩턴은 무작정 런던으로 떠난다. "이 곰을 돌봐주세요, 감사합니다." 푯말 하나면 보금자리를 얻을 줄 알았지만, 낯선 영국은 그리 따뜻한 곳이 아니었다. 다행히 패딩턴 역에서 애처롭게 서성이다 브라운 씨 가족을 만난다. 위험관리자란 직업답게 패딩턴의 위험 요소를 간파한 아빠 헨리 브라운(휴 보네빌), 처음 패딩턴에게 말을 걸어주고 이름까지 지어준 따뜻한 마음씨의 엄마 매리 브라운(샐리 호킨스), 중2병 소녀 딸 주디 브라운(매들린 해리스), 호기심 가득한 과학 영재 아들 조나단 브라운(사무엘 조슬린), 그리고 군인 정신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버드 할머니(줄리 월터스)까지. 어느덧 가족과 가까워진 패딩턴을 구하기 위해 브라운 가족은 박제 전문가 밀리센트(니콜 키드먼)와 맞서 싸운다.
패딩턴의 일거수일투족은 사건과 사고로 이어진다. 선한 의도로 한 일은 불운으로 이어지고, 별생각 없이 한 일은 행운으로 돌아온다. 패딩턴이 펼치는 한 편의 슬랩스틱 코미디는 주변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유쾌한 웃음을 선물한다. 억지웃음이나 불편한 웃음이 아닌 말 그대로 가족영화 특유의 따뜻한 웃음이다.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패딩턴의 매력 덕분인지 식상하기보단 귀여울 뿐이더라. 영국식 예의범절을 몸소 실천하는 서방예의지'곰' 패딩턴은 사실 깨알 같은 재미로 가득하다. 곰 언어로 이야기하는 딸에게 발음이 좋다는 장면, 'Stnad on right' 표지판을 보고 한 발로 서는 패딩턴, 밀리센트를 보자마자 흘러나오는 루더 밴드로스의 'Hello', 휴 보네빌의 은근히 잘 어울리는(?) 여장, 버킹엄 궁전 근위병 모자의 비밀 등등. 수없이 놓칠 수 없는 명장면들이 많죠.
개인적으로 패딩턴이 편지로 브라운 가족을 소개하는 장면이 무척 아름답고 기억에 남더라. 인형의 집처럼 예쁘게 단장한 각 방에 가족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이루고 있다. 단순히 어떤 인물은 어떤 성격이라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단숨에 가족의 사랑스러운 매력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영화 속 캐릭터 중 어느 하나 버릴 게 없이 다들 각자의 개성과 매력 포인트도 다르다. 그리고 홍차를 대접하기 위해 미니 기차가 컨베이어 벨트가 척척 돌아가듯 움직이는 모습도 사랑스럽다. 가족 영화로 당연히 강력하게 추천하는 영화다. 유쾌한 어드벤처와 매력적인 캐릭터가 살아 숨쉬기에 가족과 함께 봐도 좋은 건 물론이고 연인이 봐도 대만족이다. 반전이나 충격적인 결말이 없는 권선징악이라고 해서 시시한 영화는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은 딱 두 가지였다. "패딩턴 인형 사고 싶다.", 그리고 "영국 가보고 싶다." 포토티켓은 물론 팝콘 콤보까지, 팔릴 만한 캐릭터라면 부지런히 움직이는 영화관의 상술이 반가운 건 또 오랜만이다. 모자를 벗어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말하는 곰이라니! 더불어 배가 볼록해질 때까지 맛있게 먹는 마멀레이드의 맛도 궁금하더라. (니콜 키드먼이 '마멀레이드'란 말에 유독 발끈하는 건 <물랑루즈> 시절 Lady Marmalade 때문일까?) 그나저나 영화에 몰입해서 그런지 패딩턴이 CG라는 사실도 까맣게 잊었다. '작은 곰'이란 인상착의에 그 정도 정보로는 찾을 수 없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경찰처럼, 나 또한 패딩턴의 세계에 이미 동화된 것 같다.
버킹엄 궁전, 빅벤, 타워브리지, 자연사 박물관. 빨간 모자와 단정한 파란색 더플코트를 입은 패딩턴은 전혀 위화감 없이 영국을 돌아다닌다. 런던의 명소를 소재로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를 녹여낸 영화는 시종일관 보는 재미로 가득하다. 특히 책 속에서나 보던 심플한 런던의 주택 디자인은 상상 이상으로 사랑스러웠다. 누군가는 패딩턴을 보며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영국의 현실을 반영했다고도 한다. 실제 영화는 영국 전통의 역사와 현대 영국의 복합적인 이미지가 그럴듯하게 이어져 있다. 그나저나 패딩턴과 가족의 첫 만남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LOST&FOUND 간판에서 서로 만나는 순간 꺼져있던 FOUND에 불빛이 짠 하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패딩턴에게 따뜻한 가족이 필요한 만큼 브라운 가족에게도 패딩턴이 소중한 존재로 자리매김할 거란 복선이었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그런 소중한 존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