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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바리 Oct 13. 2019

일직선으로 줄곧 달리는 한국식 좀비물의 시작

[영화] 부산행 (TRAIN TO BUSAN , 2016)

한국 영화로 좀비물은 낯선 장르다. 분노 바이러스를 그려낸 <28일 후>, <28주 후>, 브래드 피트의 걸작 <월드워 Z>, 좀비를 토대로 코믹을 완성한 <새벽의 황당한 저주> 등 이미 서양에서는 좀비물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매니아와 대중 모두에게 신선하면서 색다른 재미를 주는 좀비물이 우리나라에서도 매력적으로 등장했다.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두 편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우중충하고 잔인한 인간 내면을 그려낸 연상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전작들이 워낙 스토리가 탄탄하고 시사하는 바가 커서 실사 영화도 기대가 컸는데, <부산행>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했다. 여름철 1,000만 관객을 노리는 영화답게 보는 재미가 쏠쏠한 재난 블록버스터다. (최종 11,566,862명이 관람하면 천만 영화 대열에 올랐다.) <타워>, <연가시>, <감기> 등 일을 벌여놓고 디테일이 부족해 한계를 드러낸 다른 재난 영화와는 분명 다른 차별화가 있는 영화더라.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 석우(공유)는 딸 수안(김수안)에게는 0점짜리 아빠다. 회사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학예회를 가기는커녕, 지난 어린이날에 줬던 선물을 또 들고 나타난다. 부산에 별거 중인 엄마를 보는 게 유일한 소원인 수안을 위해 석우는 마지못해 부산행 KTX에 올라탄다. 조용한 열차와는 달리 여기저기서 시위대의 폭동 소식이 들려오지만 이들에게는 와 닿지 않는다. 정체 모를 감염자가 기차 안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여승무원을 무는 순간 본격적으로 열차 안은 좀비가 넘쳐나며 아비규환이 된다. 딸을 잃어버린 석우는 물론 열차 안에는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간절한 사람들이 많다. 임산부 성경(정유미)을 구하기 위한 상화(마동석), 짝사랑하는 진희(안소희)를 만나야 하는 영국(최우식),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뛰기 시작하는 고속버스 상무 용석(김의성)이나 노숙자(최귀화)까지. 대전역에서 이들을 보호해주기로 했던 군대마저 좀비에게 습격당한 상태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다. 안전지대라고 믿고 싶은 부산역으로 돌진하는 것뿐이다.



<부산행>은 기차란 배경답게 일직선으로 줄곧 달리는 영화다. 흔히 재난영화에서 초반부를 지루하게 장식하는 공식도 피해 가더라. 어색한 부녀 사이를 조명하기보다는 초반부터 빠르게 좀비를 등장시켜 100분가량을 가득 채운다.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부부, 썸 타는 고교생 등 여러 인간 군상이 나오지만 그들에 다양한 사연을 담기보다는 좀비가 판치는 열차에 곧장 뒤섞어버리며 '생존'에만 주목한다. 죽을 위기에 닥치면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고 진정한 가족애를 느낀다는 뻔한 설정도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15세 관람가에 천만 관객을 노리는 대중적인 상업 영화에서 그런 설정이야 바꿀 여력이 없다. 한편 매력적인 좀비물 <부산행>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를 <쏘우>, <컨저링>, <아쿠아맨>으로 유명한 제임스 완 감독이 맡는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게다가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 이후의 이야기인 <반도>에는 강동원, 이정현 등이 출연할 예정이라 더욱 기대된다.


"제한된 공간인 기차에서 좀비와 맞닥뜨린다." 설정 자체가 신선하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액션도 훌륭하다. 도망칠 공간 자체가 없는 막힌 상태에서 물밀듯이 쏟아지는 좀비 떼를 정면 돌파하는 건 꽤나 쫄깃하다. 마치 퀘스트를 하나씩 깨나 가는 게임처럼 구해야 할 가족이 있는 열차칸으로 하나씩 전진하는 스토리는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어두워지면 상대를 인지하지 못하는 좀비의 특성을 활용한 잠입 역시 인상적이다. 무조건 밀려오는 좀비를 비현실적으로 때려 부수는 건 마블 히어로 무비나 다름없는데, <부산행>은 제법 현실적이다. 한편 주인공보다 더 인기가 많은 마동석은 좀비를 시원하게 부셔버리는 선 굵은 액션, 유머의 80% 이상을 담당한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지만, 내 여자에겐 만은 한없이 따뜻한 캐릭터로 등장해 매력적인 모습을 선보인다. 반면, 시사회에서까지 욕을 먹었다는 김의성은 끝까지 비열하고 이기적인 모습이라 다른 의미로 인상적이다.



"아빠 어디 가?"를 외치는 아이를 외침이 다소 신파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애를 강조하는 재난 영화에서 이 정도 신파도 없는 건 사실 힘들다. 극적인 탈출과 아름다운 재회를 위해서는 다소 억지스럽더라도 소중한 이들의 이별과 재회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부산행>의 마무리는 항상 한국 영화의 한계로 지적받는 과도한 눈물 쥐어짜기용 신파까진 아니었다. 물론 갑자기 플래시백으로 딸의 아기 시절을 등장시킨 부분은 영 생뚱맞았지만. (뜬금없이 공유가 분유 PPL 광고 모델로 등장한 느낌이었다.) 한편 <부산행>은 여러모로 <월드워 Z>가 겹쳐진다. 조용히 숨어있다가 캔을 밟는 순간 좀비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몰리는 장면. 느리고 멍청한 게 아니라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좀비들의 스피드. 마치 파도처럼 밀려들어와 성벽을 뚫고 넘어오는 인산인해 시퀀스는 익숙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흥미를 줬다.


첫 실사영화지만 그래도 연상호 감독은 '현실 반영'이란 자신의 장점을 버리지 않았다. <부산행>을 보다 보면 여러모로 한국과 닮아 있는 부분이 많다. 전국적으로 퍼지는 바이러스를 성난 시위대의 폭동이라고 규정짓고 끝까지 숨기는 정부. 국민을 지켜주는 역할에서 오히려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변한 군인들. 첫 감염자가 발생한 칸에 타있는 앳된 고등학생들. 민주화운동, 세월호 등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지닌 한국인들에겐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극한의 상태에서 이성이 마비된 채 본능적으로 이기적으로 변하는 사람들. 슬프지만 개연성이 높은 현실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는 마동석이 비현실적인 히어로의 전형이었다. 한편, 다양한 방식으로 좀비를 등장시키지만 아이 좀비만은 없었던 점을 바라보면 그들이 보호해야 할 대상이란 걸 환기시켜주는 게 아닐까 싶다.




<부산행>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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