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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바리 Sep 24. 2019

보라 강동원 미모를,  보라 박소담 연기를.

[영화] 검은 사제들(The Priests , 2015)


<엑소시스트>(1973)를 보진 않았지만 언제나 그 잔상은 뇌리에 강렬히 남아있다. 12세 소녀가 흉측하게 목을 꺾고 계단을 내려오는 명장면은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장면이다. 최고의 공포 영화로 손꼽히는 <엑소시스트>는 물론 <오멘>(1976), <악마의 씨>(1968) 등 오컬트 영화는 항상 서양의 전유물이다. (오컬트 영화 :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악령, 악마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일종의 심령, 공포, SF 영화) 이탈리아 로마 북서부에 있는 신비로운 바티칸 교황청, 뭔가 모를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사제. 라틴어를 내뱉으며 악마와 싸우는 그들의 모습은 정형화된 하나의 공식이었다. 하지만 장재현 감독은 한국이란 익숙한 배경에 생소한 소재인 '엑소시즘'을 멋지고 유연하게 풀어냈다. <전우치> 이후 6년 만에 뭉친 김윤석, 강동원은 각각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2015년 부지런히 일하며 이름을 알린 신인 배우 박소담은 어마어마한 연기력을 뽐냈다. <사도>, <베테랑>과는 달리 주연으로 거듭난 <검은 사제들>에서는 후반 30분가량을 혼자 이끌어갔다.  


'검은 사제들'은 장재현 감독의 25분짜리 단편 영화 '12번째 보조 사제'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교통사고 이후 원인 불명의 고통을 받는 여고생 영신(박소담)은 악령이 들린 자, 즉 '구마자'란 의심을 받는다. 가장 강력해서 본토 장미 십자회에서도 쫓고 있는 12 악령 중 하나가 몸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를 구하기 위해 김베드로 신부(김윤석)는 구마 의식을 준비하지만 교단에서도 이미 포기한 상태다. 이성이 지배하는 21세기에 구마 의식이란 구시대적 유물을 운운하기 때문이다. 결국 김신부는 보조 사제를 구하지 못해 신학교에서도 꼴찌를 달리는 최부제(강동원)와 울며 겨자 먹기로 함께한다. 어린 시절 어린 동생이 개에게 물리는 사고에서 도망친 트라우마가 있는 최부제는 구마 의식이 다가올수록 악몽에 시달린다. 학장 신부(김의성)를 비롯해 모든 교단에서도 쉬쉬하며 구마 의식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게다가 영신을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김신부는 영신의 가족에게까지 미움을 받는다. 하지만 오로지 고통받는 어린 영신을 구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에 차근차근 의식을 준비하고 결전의 날을 맞이한다.




돼지가 어려 무서우면 덜덜 떨었다. 발이 1cm만 떨어져도 돼지 멱따는 소리를 냈다. 연출부도 해결 못해 한 번 줘보라고 해서 돼지를 몸에 딱 붙였다. 그러니까 안 울더라. 원래 들고 다니는 게 아니었는데 결국 들고 다니게 됐다.


그렇다. 강동원은 모든 생명체를 온순하게 만드는 기적을 행한다. 비가 퍼붓는 날 그는 덩그러니 우산을 들고 전임 보조 사제를 만나러 간다. 무려 11년 전 영화 <늑대의 유혹>에서 우산을 들고 등장하던 장면이 겹쳐 보인다. 영화관에서 육성으로 "헉~!" 소리가 날 정도로 충격적인 등장은 2015년에도 여전하다. 최근 신부님들 사이에서는 "신부님은 왜 그렇게 생겼어요?"란 말은 그 어떤 고해성사보다 무서워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이해가 간다. 사제 역할에 120% 최적화된 강동원은 대배우 김윤석과의 기싸움에서도 크게 눌리지 않죠. <군도>, <형사>, <M>, <두근두근 내 인생>, <의형제>, <전우치> 등 부지런히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이어가는 경험에서 그 힘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작품보다 오히려 CF를 더 많이 찍으며 신비주의 속에서 사는 미남 배우들과는 다른 행보가 그의 연기폭에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니가 다 했다.


눈물을 흘리는 김신부의 대사는 악령을 끝까지 붙잡고 있던 영신이에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후반부를 책임진 폭발적인 어린 배우 박소담을 향한 칭찬이다. 극과 극을 달리는 김윤석과 강동원의 시너지 효과도 인상적이었지만, 막판 하이라이트 40분의 주인공은 분명 박소담이다. 한국어, 라틴어, 중국어, 독일어. 신들린 목소리로 자유자재로 대사를 내뱉는데 정말 소름이 끼쳤다. 악령이 들린 여고생. 자칫 과하거나 어색하면 공포보다는 웃음이 나올 법도 한데, 구마 의식 내내 긴장감을 놓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다. 엔딩 크레딧에 외국어 담당 이름이 올라가길래 당연히 더빙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직접 4개 국어를 억양, 음색을 달리하며 연기했더라. 속삭이고, 소리치고, 울부짖고, 경멸하고. 다양한 감정의 선을 폭발적으로 뿜어내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아픔을 안고 있는 신부와 첫 발을 내딛는 어린 사제, 순수한 얼굴로 사악한 악령의 목소리를 내는 소녀. 너무나도 뻔한 구조의 오컬트 영화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해낸 데는 배우들의 몫이 컸다.



보는 내내 엑소시즘을 다룬 <더 라이트 : 악마는 있다>가 떠올랐다. 캐릭터, 배경, 스토리, 하이라이트인 엑소시즘.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비슷하기 때문이다. 장르적 특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닮은 두 영화. 하지만 <검은 사제들>은 훌륭하게 한국적 오컬트 영화로 재탄생했다. 조연으로 등장한 여러 아재 느낌(혹은 꼰대 느낌)의 신부님들도 매우 적절한 몫을 해줬다. 토속적인 굿판 역시 묘하게 어우러지며 매끄럽게 녹아들더라. 매우 유명한 소재지만 한국 영화판에서만큼은 낯설고 성공하기 힘든 부분을 자신 있게 풀어낸 도전 자체가 인상적이다. 영화 막판에 고민을 끝내고 본격적인 악령 퇴치 사제로 거듭난 강동원을 보면 속편에 대한 가능성도 커진다. 중요 소재가 12 악령이니, 악령을 퇴치하며 유명세를 떨친 한국 신부가 다른 악령을 잡으러 본토로 향한다는 식의 설정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편의 버디물, 형사물 같은 스타일의 영화인 <검은 사제들>이 속편이 나온다면 마치 <맨 인 블랙>과 비슷한 느낌을 줄 것도 같다.


'신부'는 단순히 직업으로 분류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길이다. 물론 다양한 직업군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위대한 법이다. 하지만 성직자란 다소 특별한 선택을 한 이들은 정말 자신을 '바친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하다. 신학교를 다니며 신부 수업을 받은 친구의 이야기만 들어보아도 알 수 있었다. 사제는 속세와 차단된 생활을 하며 묵언수행을 하거나, 어려운 외국어 공부를 하고, 방학이면 틈틈이 가장 낮은 곳에서 봉사를 한다. 그리고 신부가 된 이후에도 오직 신을 위해 다른 모든 선택(예를 들면 결혼 같은)을 제쳐놓는 모습은 경이로울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무교이지만, 교황의 포용력 있는 모습이나 아무나 쉽게 될 수 없는 험난한 길을 걷는 신부는 존경스럽더라. 한편 <검은 사제들>을 보면 사제서품을 마친 친구가 떠오른다. 공교롭게도 비 오는 밤, <더 라이트:악마는 있다>를 같이 영화관에서 본 친구라 더더욱. 부디 의지를 잃지 말고, 항상 따뜻한 신부님으로 건강하게 지내길 바란다.


+ 아, 물어보니 장미 십자회는 허구지만 후광이 빛나는 강동원 같은 사제 역시 허구에 가깝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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