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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바리 Oct 02. 2019

미친 세상에서 미친듯이 질주하는 미친 실제상황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MadMax:FuryRoad, 2015)


○ 30년만에 돌아온 액션의 정석. 이후 30년을 책임지다.


<꼬마돼지 베이브> <해피피트>. 따뜻한 가족 영화를 주로 연출했던 조지 밀러가 30년 만에 제대로 작정하고 돌아왔다. 도저히 같은 감독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할 매력적인 디스토피아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멜 깁슨이 등장하는 <매드맥스> 트릴로지를 직접 보지 못한 우리 세대는 '조지 밀러'가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정도더라. 사실 깊은 스토리가 숨겨진 게 아니라, 전편을 보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매드 맥스 : 분노의 질주>를 보고 즐길 수 있다. 1980년부터 나온 세 편의 이야기가 독립적이고 캐릭터 하나하나가 엄청난 연결고리가 이어지는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3편 중 하나를 봐야 한다면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의 최고봉, 정석이라 불리는 <매드맥스2 : 로드 워리어>를 추천하더라. 멜 깁슨이 연기한 주인공은 거친 매력의 톰 하디가 새롭게 캐스팅됐고, 샤를리즈 테론, 니콜라스 홀트 등 유명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도망가고, 다시 돌아가고. 직선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가볍지 않다. 비하인드 스토리나 주인공들의 갈등은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이야기가 흘러가게만 최소한으로 구성했다. 핵전쟁 이후 멸망한 세계를 지배하는 자는 물과 기름을 독점한 임모탄(휴 키스 번)이다. 백혈병으로 추정되는 워보이들은 맹목적으로 임모탄을 추앙하며, 이 세계의 지배/피지배 구조는 더욱 돈독하게 흘러간다. 그러던 중 아내와 자식을 잃고 방랑하는 맥스(톰 하디)는 이들에게 잡혀 수혈을 위한 피 주머니 신세가 된다. 한편 사령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는 폭정에 반발하며 임모탄이 아끼는 여자들을 몰래 숨겨서 달아난다. 임모탄과 워보이의 끈질긴 추격은 광활한 사막을 넘나들며 계속되고, 워보이 눅스(니콜라스 홀트)는 맥스를 차에 매달고 퓨리오사를 잡기 위해 분노의 도로를 질주한다.



○ 오로지 추격으로 가득 채운 순도 100% 극단적 액션!


가짜로 찍으면 관객의 눈이 그걸 알아채기 마련이다.


70세를 맞이한 노익장의 '액션'에 대한 철학은 확고했다. CG는 최소화하고 대부분의 액션 장면을 직접 찍었다. 예를 들면 퓨리오사의 손을 지운다든가, 사막의 모습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그리고 액션 장비들을 지우는 수준의 CG만 썼다. 불타오르는 자동차들이 사막을 질주하고, 장대에 매달린 워보이들이 곡예를 하듯 차를 오가는 모습까지. 심지어 70대 노장 여배우들도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대신 150여 대의 자동차 곳곳에 초소형 디지털카메라를 설치해 정교하고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인(실제 현장이니 당연히 사실적일 수밖에!) 명장면을 그려냈다. 실제 '태양의 서커스' 곡예사를 섭외했다는 자동차 장대 액션은 추격과 동시에 가장 효과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결투를 빚어냈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속도 전쟁에서도 영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액션의 최대치를 담아냈더라. 작품 내에서 약 114명이 죽고, 파괴된 차량이 36대에 달할 정도로 <매드맥스>는 극한의 파괴 본능을 뽐낸다.


워보이들이 추앙하는 8기통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가장 큰 무기는 '자동차'다. 터질듯한 배기음과 폭발하는 화염을 뚫는 과정에서도 자동차는 특히 돋보인다. 그리고 부족별로 각자 특색에 맞게 개성 넘치는 이동 수단을 선보이며, 색다른 묘미를 선물했다. 예를 들면 좁은 협곡을 누비기에 적합한 오토바이나 충돌에 특화된 큰 크기의 트럭이 인상적이다. 최근 액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화려한 근접 격투씬이 많지 않다. 대신 차끼리 부딪치고, 총으로 쏘아대며 달라붙는 적들을 그대로 날려버리는 단순하지만 화끈한 구조다. '추격' 이란 대전제 아래 순도 100%로 가득 채운 극단적인 액션은 그 자체로도 어마어마한 재미를 느낄 수 있더라. 특히 이러한 박진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는 음악도 한 몫 한다. 대부분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를 주인공도 아닌 빨간 옷을 입은 '기타맨'으로 꼽는 이유가 따로 있다.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며 전투 상황에서 불음 뿜는 일렉기타를 들고 워보이들의 아드레날린을 북돋워 준다. 물론 그걸 지켜보는 관객의 심장도 뛰게 하면서.



○ 대사가 없어도 통하는 진심.


영화 제목은 <매드 맥스>지만 '맥스'란 이름은 손꼽을 정도로 조금 나온다. 게다가 톰 하디는 대사조차 거의 없고 오로지 몸으로 움직인다. 남성적이면서 카리스마 넘치지만 한편으론 불안한 에너지가 있는 '맥스'를 무난하게 잘 표현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은 역시 퓨리오사다. 단순한 탈출기의 이면에는 사막의 독재자에게 학대 받으며 아이를 낳고 기르는 기계적인 역할만을 강요받는 여성들을 해방시키는 줄거리가 숨어있다. 밀러 감독은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극작가 이브 엔슬러에게 조언을 구하며 학대 받는 여성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도를 했다. 그걸 볼 수 있는 건 막판에 제몫을 톡톡히 해내는 신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여전히 많은 영화에서 항상 걸림돌 역할을 하는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적들에게 맞서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달리는 장면은 상당히 신선하다. 게다가 그 중심에는 '걸크러쉬'의 끝판왕 퓨리오사가 반짝반짝 돋보인다.


<매드맥스>는 스트레스 해소용 킬링타임 영화로만 봐도 충분하다. "희망없는 세상, 미친놈만 살아남는다"란 메인 카피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명작이다. 특히 영화가 제시하는 세계관은 상상 이상으로 참혹하면서도 현실감이 넘친다. (게임으로 나와도 충분히 흥미로울 것 같다.) <매드 맥스>가 30년 전 액션 영화의 신기원을 세웠다면, 앞으로 나올 30년 후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의 정석이자 참고 자료로 자리매김 했다. 파괴력 넘치는 쿵쾅거리는 음악은 물론 시선을 사로잡는 그로테스크한 종말 이후의 모습은 두고두고 회자될 게 분명하다. 3D, 4D로 <매드맥스>를 2~3번 더 보는 사람들은 이러한 영화의 진수를 마음껏 느끼고 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시원한 콜라를 무조건 한 캔 들고 보는 걸 추천한다. 거친 사막을 누비는 주인공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목이 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액션이 쉬는 시간이 5분도 채 되지 않기에 마음껏 마실 시간은 없지만.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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