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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바리 Oct 14. 2019

조금 미쳐도 괜찮아. 영원히 기억할게.

[영화] 코코 (Coco, 2017)


가족, 기억, 사랑, 이해. 대표 공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19번째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는 역시나 훌륭하다. 믿고 볼 수 있는 브랜드 픽사의 기술력과 스토리텔링, 그리고 멕시코 이국적인 전통문화가 더해지며 감동적인 작품이 탄생했다. 기타 선율과 함께 펼쳐지는 멕시코의 흥은 이국적인 문화를 대하는 가장 올바른 접근 방식을 선보인다. 제75회 골든글로브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의 주인공 <코코>는 한국에서도 350만 관객을 모으며 성공했다. 아이 때문에 갔다가 부모가 더 몰입하는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돌풍만큼 입소문으로 빠르게 흥행한 영화다. <토이스토리> 시리즈의 리 언크리치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몬스터 주식회사> 제작진이 대거 참여한 <코코>는 픽사의 명작 반영에 조심스레 올릴 수 있을 정도다.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참신한 발상으로 펼쳐내니 실패할 수 없다.


멕시코의 전통 명절 '죽은 자의 날'에 소년 미구엘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광장 축제에 나가려 한다. 5대째 구두를 만드는 집안에서 '음악'이란 저주로 여겨지는데, 이는 가족을 버리고 음악을 택한 외고조부 때문이다. 결국 가족에게 들켜 아끼는 기타마저 부서져버린 미구엘은 잔뜩 화를 내며 집을 뛰쳐나간다. 그리고 존경하는 레전드 뮤지션 델라 쿠르즈의 사당에 들어가 기타를 잡는 순간, 죽은 자들이 보이며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마리골드 꽃길을 넘어가는 모험을 시작한다. 저승에서 만난 무명 뮤지션 헥터는 이승에서 완전히 잊히는 '마지막 죽음'을 피하기 위해 미구엘을 돕고, 미구엘은 롤모델이자 외고조부라 여겨지는 델라 쿠르즈를 만나기 위해 헥터와 함께 한다. 숨겨진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고 미구엘은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지막 도전을 펼친다. '구두'와 '음악'으로 대비되는 부계, 모계의 갈등이 봉합되기엔 쉽지 않지만 그들은 결국 가족애를 재확인하며 역경을 이겨낸다.



20분이나 되는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가 상영되고 본격적으로 <코코>가 시작되면 눈이 즐겁다. 이국적인 멕시코 문화가 생생하게 담겨있고, 따뜻한 색감의 멕시코 마을이 무척 인상적이더라.  북유럽 눈의 나라, 폴리네시아, 스코틀랜드 등 전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진 픽사 이야기. 이번에는 열정적인 나라 멕시코에서 펼쳐지고, 그 방식은 완벽에 가깝다. '마리아치'(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쓴 전통 악사), '알레브레헤'(망자의 영혼을 인도해주는 영물) 등 명칭은 물론 'Hola', 'Gracias' 등 원어 그대로를 대사에 넣은 것도 매력적이었다. 대가족 문화, 가족 간의 유대, 조상을 모시는 제사 등 한국 전통문화와도 닮은 부분이 많더라. 멕시코엔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1년에 한 번 가족을 만나러 망자가 이승으로 돌아오는 날이 존재한다. 아울러 저승은 징벌의 공간이 아닌 기쁜 축제의 무대라는 점도 독특했다. 특히 부푼 기대를 안고 망자가 넘어오는 다리의 성스럽고 평화로운 느낌이다. 게다가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감이 황홀한 저승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지옥 불구덩이가 펼쳐지고, 저승사자가 검은 갓을 쓰고 데려가는 게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저승의 모습인데 <코코>의 저승은 정반대였다. 에르네스토의 초호화 파티를 보면 실컷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말 그대로 흥이 넘치고 모두가 바라는 새로운 세상이더라. 그저 다들 해골이라는 점만 빼면 이승과 쏙 빼닮았다. 무겁다고만 생각했던 소재인 죽음, 이별이 이토록 유쾌하고 재밌게 그려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단테를 비롯해 망자를 인도하는 영물들의 모습도 제각각 신비롭고 눈길이 가더라. 사후세계에서 이승으로 여행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단 위에 망자의 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설정도 매우 독특하고 재미난 상상력이다. 먼저 떠난 이를 기억해주는 이가 없다면 완전히 소멸해버리는 두 번째 죽음은 슬프고 안타깝다. 진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관 뚜껑을 덮을 때가 아니다. 진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은 모두의 마음속에서 잊히는 때란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코코>의 중요한 매개체인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갈등의 시작이자 해결해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인 음악은 이번 영화의 큰 장점이다. 영유아 아이들 불후의 명곡 <겨울왕국>의 'Let it go'를 작곡한 로페즈 부부가 만든 'Remember Me'는 다양한 변주로 영화에 등장한다. (이변 없이 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을 받았다.) 무대 위에서 흥을 돋우며 경쾌한 리듬으로 영화를 채울 때, 차분하고 잔잔하게 외증조모 마마 코코와 듀엣으로 부를 때가 완전히 느낌이 다르다.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화려한 무대 위 공연도 일품이었지만, 여러 무대적 장치를 제외하고 오직 진심을 담아 미구엘과 코코가 함께 부른 이 장면은 오랜 시간 여운이 남더라. 억울한 죽음을 맞이해 가족과 이별한 헥터와 오해를 안고 살아온 이멜다와 다시 만날 수 있게 한 것도, 미구엘의 오랫동안 키워온 꿈이자 그만큼 소중한 가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것도, 마마 코코가 죽기 전 '빠빠'를 기억해낼 수 있는 것도. 결국 음악의 힘이었다. 진심이 담겨 있다면 본질만으로도 충분히 빛날 수 있는 게 바로 음악이었다.


가장 뻔하고 흔한 주제로 매력적이고 독창적으로 재창조해내는 게 픽사의 힘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잊고 지내기 쉬운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각색하고, 결국엔 그 소중함과 중요함을 가슴 깊이 새기는 건 대체 불가능한 힘이다. <코코> 역시 '가족애'라는 코드를 선택해 영리하고 매력적으로 풀어냈다. 음악을 택하고 가족을 떠난 헥터와 미구엘. 그들은 무엇보다 중요한 꿈을 위해 가족이란 중요 요소는 잠시 제쳐두고 포기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진리를 떠올리면서. 하지만 그들의 목표를 향한 원동력은 역설적으로 '가족'의 존재였고,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도 결국 '가족'이었다. '음악'이란 훌륭한 매개체를 통해서 그 고마움을 표현하면서. 이멜다는 악착같이 가문을 일으키고, 기타는 보이는 대로 때려 부셨지만 결국에는 함께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른다. 눈치를 주고 혼내기만 했던 미구엘의 노래 역시 이제는 가족 잔치의 빠질 수 없는 흥겨운 배경 음악으로 거듭난다. 어찌 보면 구두와 기타, 예술과 생업은 양립 가능한, 나아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인지도 모른다. <코코>는 'Un Poco Loco'처럼 약간 미쳐 있더라도, 'Remember me'처럼 오랫동안 기억될 따뜻한 영화다.




Un Poco Loco (출처 : DisneyMusicVEVO)


Remember me (출처 : DisneyMusicVE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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