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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바리 Oct 24. 2019

"절대 현혹되지 마라".  그럴 수 있다면.

[영화] 곡성(THE WAILING , 2016)


"뭐시 중헌지도 모르고!" 한국형 오컬트의 정석


소문만 무성한 채 6년이 걸린 영화 <곡성>. 악독한 감독의 무시무시한 촬영 분위기에 스태프들이 애초에 나가떨어졌다는 둥,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충무로 감독들이 혀를 내둘렀다는 둥, <황해>(2010) 이후 감독이 영화판에 신물이 난 감독이 떠났다는 둥. 실체를 알 수 없던 미스터리 한 <곡성>은 개봉과 동시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시나리오 작업, 취재, 후반 작업 등 6년이 걸린 이 지독한 영화는 한국적 오컬트의 정석을 그려내며 관객과 평단의 호평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몹시 어둡고 기이한 장르 영화임에도 687만 명이 관람했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의 맛을 느끼기 위해 재관람하는 관객도 많았다. 게다가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공식 섹션 비경쟁부문에 초청되며 툭하니 던진 미끼가 전세계적으로 제법 큰 파급력을 펼쳤다.


영화의 줄거리를 끝을 알 수 없이 흐릿하게 뒤엉켜있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가장 중구(곽도원)가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온 뒤 이어지는 의문의 연쇄살인으로부터 딸 효진이(김환희)를 지키는 이야기다. 경찰은 조용한 마을 곡성에서 일어나 기이한 살인 사건을 독버섯 중독 때문에 생긴 환각의 영향이라고 결론짓는다. 겁이 많은 소심한 중구는 무명(천우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흉흉한 소문을 애써 흘려듣는다. 하지만 자신의 딸 효진이가 갑자기 아프고 이상 증세를 보이자, 이를 막기 위해 무속인 일광(황정민)까지 마을로 불러들인다. 미스터리 한 외지인과의 다툼이 깊어질수록 사태는 심각해지고, 중구는 누구도 믿을 수 없어 혼란스러워한다. 혼돈에 빠진 중구, 심각한 상처를 입은 외지인, 여전히 멀리서 지켜보는 무명, 누구의 편인지 알 수 없는 일광. 여러 주인공은 곡성이란 기묘한 공간에서 뒤엉켜 파국으로 치닫는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 그럴  있다면.


나홍진 감독은 <곡성>을 찍으며 전력을 다해 미장센(무대 위의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배열하는 작업)에 엄청난 신경을 썼다. 함양, 철원, 곡성, 구례, 순천, 장성, 해남, 화순, 고창, 장수, 진안 등을 전국을 누볐다. 한국적인 장소 섭외에 엄청난 노력을 들인 스태프들의 공을 결국 156분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실제 흐리거나 비 오는 날씨를 기다려서 촬영을 할 정도로 사실적이며 완벽한 판을 짜는데 몰두했고, 그 결과물은 다행히도 아름답게 뽑혔다. 스릴러의 정석 <추격자>, 극사실주의 액션을 창시한 <황해>에 이어 나 감독의 세 번째 작품 역시 세심하면서도 폭발력이 있다. 다만 미친 듯이 질주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앞선 두 작품에 비해 <곡성>은 모호한 안갯속에서 서서히 무시무시한 실체에 다가가는 느낌이다. 시한폭탄을 안은 듯 위태로우며 손에 땀을 쥐는 이야기의 흐름은 같지만, 그를 표출하는 결이 살짝 다르다. "현혹되지 말라"는 포스터 속 문구를 곱씹더라도, 영화에 몰입한 관객은 이미 현혹된 채 감독의 손바닥 안에서 함께 혼란스러워하기 마련이다. 특히 일광이 살을 날리는 굿을 하면서 펼쳐지는 교차편집은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명장면이다.


중간중간 유머가 섞여있지만, 후반부는 완벽한 한국식 오컬트 무비다. <검은 사제들>이 외국 오컬트를 그저 한국 무대로 옮겨놓은 수준이라면 <곡성>은 조금 다르다. '굿'이라는 지독히 한국적인 소재를 가지고 천주교, 무속 신앙 등을 한데 버무려 새로운 장르로 탄생시켰다. 물론 완벽히 설계된 판에서 자신의 최대치를 뽐내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롱테이크로 이어진 황정민의 굿판은 실제 무당들도 놀랄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국제시장>, <히말라야> 등 천만 배우의 뻔한 캐릭터보다 아무래도 날것 그대로의 느낌이 훨씬 황정민에게 어울린다.) 놀라 자빠지는 소심한 경찰에서 딸을 지키기 위해 '부성애'로 무장한 아빠로 거듭난 곽도원 역시 영화 내내 무게 중심을 잡았다. 아울러 자기 나이에 너무나 충격적인 수준의 연기를 120% 소화해낸 아역 김환희는 경이로울 정도더라. "뭐시 중헌지도 모르고!" 소리치며 욕을 내뱉는 걸 보고 있자니, 혹여나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남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미끼를 물었다.", 아니  수밖에 없었다


'곡성 결말 완벽 해석(스포 주의)', '현직 무당이 본 <곡성>', '곡성 총정리, 숨은 의미 해설'. 인터넷 상에서는 <곡성>을 보고, 혹은 보고 나서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다양한 떡밥들과 복선들에 대한 토론의 장이 펼쳐졌다. 나홍진 감독은 <곡성> 해석을 보고 "쇼킹하고 대단했다"라고 평하며 관객들의 다양한 반응에 예상대 로란 반응을 보였다. 단순히 2시간을 즐기고 날아가버리는 가벼운 영화의 홍수 속에서, (그런데 심지어 재미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곡성>은 훌륭한 대화 소재를 제공했다. 꿈/현실, 무속신앙/기독교, 동양/서양, 선/악. 대립하는 다양한 요소가 확실한 실체를 감춘 채 영화는 달려간다. 이들이 뒤섞여 만들어 내는 여러 가지 결말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완벽한 정답은 없기에, 자신만의 관점에서 <곡성>을 되짚어가는 것도 신선하고 색다른 감상 방법이다. 감독이 흘린 미끼를 물 것인지, 혹은 씹고 뱉을지는 온전히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종구의 안타까운 마지막 목소리로 맺는 마지막은 다소 의아할 수도 있다. 명쾌한 결말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사건의 종지부는 찍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감독의 수싸움에는 그런 과정은 생략되었다. 결국 결말은 관객이 판단하기 나름이다. (개인적으로는 비극적인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2시간 30분 가까이 관객의 멱살을 잡고 끌어간 영화는 꼭 해피엔딩이 아니어도 의미 있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으로부터 나름대로 중구는 최선을 다했고 그 자체로 좋은 아빠였다. 왜 하필 곡성인가? 왜 굳이 중구네 가족이었을까? 그들이 잘못한 것도 없고, 고쳐야 할 것도 없었다. 악마는 별다른 의미를 두고 악을 행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야 한다면 인간의 호기심, 의문이 원인이었다. 나 감독은 결국 기독교, 서양 의학, 한방, 가족애나 부성애, 혹은 심지어 신마저도 해답을 내려줄 수 없다고 차갑게 풀어냈다. 어찌 보면 그러니 믿기지 않는 다양한 불행의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릴 필요가 없다고 위로를 건네는 것 같다.



<곡성>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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