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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바리 Dec 11. 2019

멜로 빼고, 감동 빼고.  두 배우만 믿고 끝까지 간다

[영화] 끝까지 간다 (A Hard Day, 2014)


나쁜 놈 이선균 대 더 나쁜 놈 조진웅. 시작부터 끝까지 몰아치는 긴장감


히어로 무비의 틈바구니에서 <끝까지 간다>는 약 340만 명 관객을 기록하며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지켰다. 공격적인 마케팅은 없었지만 서서히 입소문을 탔고,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관을 찾는 관객을 노린 결과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인간중독>, <우는 남자>처럼 한류 스타(송승헌, 장동건)가 등장하거나, 다른 할리우드 영화처럼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영화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선균과 조진웅, 연기력이 탄탄한 두 배우를 영리하게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큰 기대 없이 선택한 영화가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며 쏠쏠한 재미를 선사하니 무척 만족스러웠다.  


영화의 주인공은 나쁜 놈 고건수(이선균) 형사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갑작스러운 내사 소식을 접하고 뒷수습을 위해 긴박하게 경찰서로 돌아간다. 하지만 교통사고까지 내고,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려는 건수는 시체를 어머니의 관 속에 겨우 숨기고 한숨 돌린다. 하지만 사건을 모두 알고 있는 듯한 목격자 박창민(조진웅)이 등장하며 다짜고짜 건수에게 시체를 찾아오라고 협박한다. 게다가 건수는 자신이 빼돌린 시체가 사실 살인 사건 용의자인 걸 눈치챘고, 점점 좁혀오는 포위망에서 혼란스러워한다. 결국 건수는 모든 걸 걸고 냉혈한 형사 박창민과 담판을 지으러 간다.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대결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액션 사이사이에 절묘하게 녹아든 조미료 같은 유머


여러모로 2013년 큰 인기를 끌었던 <더 테러 라이브>가 겹쳐 보였다. 질질 끌지 않고 곧바로 갈등부터 시작되고,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주인공을 극한으로 끌고 가는 설정도 비슷하다. <더 테러 라이브>에 하정우가 있었다면 <끝까지 간다>에는 이선균과 조진웅이 합을 맞추며 긴장감을 이끌어 갔다. 특히 조진웅은 1시간이 넘어선 후반부터 등장하는데도, 영화 막판까지 압도적인 위압감, 엄청난 존재감을 뽐냈다. 당하는 입장의 이선균 역시 빼어났다. 개인적으로 이선균은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나오는 감미로운 캐릭터보다는 찌질함과 짜증이 최고조에 달하는 <우리 선희>, <화차> 같은 영화의 캐릭터가 더욱 빛난다고 느낀다. <끝까지 간다>에서도 시종일관 박창민에게 끌려다니고, 일이 꼬이고 꼬이는 와중에 자기만의 짜증 명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거듭된 추격과 액션에도 영화는 늘어지거나 질리지 않는다. 형사물, 추리 장르는 화끈한 액션, 박진감 넘치는 추격, 억 소리 나는 반전에 목매다가 도리어 도리어 피곤하게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하지만 <끝까지 간다>는 절묘하게 캐릭터들이 빠른 호흡 속에도 쉬어가는 미덕을 잘 선보인다. 곳곳에 유머를 가미한 사건과 캐릭터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최형사(정만식)나 반장(신정근)처럼 진지한 순간에도 어김없이 피식 웃음이 유발하는 이들도 제법 많다. 심지어 가장 잔혹하고 무서운 캐릭터인 조진웅도 제스처나 대사 하나로 웃음 코드를 놓지 않는다. 버릴 건 과감히 버리고, 빠르게 정면 돌파하는 뚝심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쓸데없는 억지 감동 코드나 로맨스가 빠진 것도 신의 한 수였다.



포스터와 제목이 편견을 빚어낸 영화.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지인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분명 <끝까지 간다>를 선뜻 보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봐도 촌스럽고 재미없는 포스터. 영화 내용은 논외로 하더라도 올해 최악의 포스터 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노랗고 무조건 큰 글씨체로 제목은 크게! 형사인지 조폭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불만 가득한 이선균의 표정! 환상의 콜라보에 <끝까지 간다>라는 무미건조한 제목까지. 촌스러움의 앙상블은 정말 이 영화를 보고 싶은 의욕을 꺾었다. (원제는 <무덤까지 간다>였는데 세월호 관련해서 사회 분위기에 맞춰서 바꿨다고 합니다.) 칸 영화제 버전 포스터(저수지 대치 장면)가 훨씬 많은 의미를 담고 있고, 깔끔해 보였다. 하지만 결국 이런 포스터가 최종 선택이 됐다는 것은 아쉽지만, 이런 뻔한 스타일이 그만큼 잘 팔린다는 증거겠지?


물론 <끝까지 간다>가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결말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다 보니 당위성이 떨어지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도 있다. 예를 들면, 전화기로 상대방의 심리를 좌지우지 마음대로 조종하는 박창민이 정작 쉬운 단서를 놓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조진웅의 한판승으로 끝낼 수 없고,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서라지만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일대일 격투도 사족 같았다. 차라리 말끔하게 저수지 장면에서 끝이 났다면 개운했을 텐데. 억지로 <추격자>의 거친 액션을 표방하듯 마지막 전투에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간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스트레스 해소에 안성맞춤인 영화인 게 충분하다. 한국 영화의 빠질 수 없는 캐릭터 '비리 경찰'이 식상할 지경이지만, 이 정도 스릴과 재미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왼쪽 공식 포스터만 보고 영화를 보러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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