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만월에 날 만나러 와줘

[도서] 국경시장, 김성중

by 샘바리
<국경시장>, 김성중


화폐로 바꿀 수 있는 기억이 있다면 지울 수 있을까? 내가 작곡한 불멸의 명곡이 다른 누군가도 함께 만들었다면? 생명을 갉아먹지만, 천재적인 작품을 쏟아낼 수 있다면? 어느덧 내 육체는 사라지고 관념만이 잼통 안에 담겨 있다면? 독특한 상상력을 자신만의 세계에 담아낸 김성중 작가의 <국경시장>은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국경'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몽환적인 느낌으로 담아낸 그녀만의 이야기판이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욕망'이란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항상 누군가를 부러워했고, 얻지 못한 것을 경멸하며 동시에 동경했다.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날려버리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탐욕스러운 시기와 질투에 빠져 상대를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나아가 자신의 육체마저 사라지고 관념만이 덩그러니 남아버린다. 소설이란 장르에서만 가능한 유쾌하며 재기 발랄한 상상력의 연속이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풍경이 새삼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곧 떠날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행지가 가장 좋아지는 순간은 그곳을 떠나기 직전이다.
이별이 가시화된 순간에야 사랑을 확인하는 연인처럼.


개인적으로 단편마다 선호도의 편차가 조금 있었다. <국경시장>과 <쿠문>의 강렬한 무대와 흥미로운 문제의식에 사로잡혀 초반부가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면, <나무 힘줄 피아노>나 <필멸>을 보면서는 약간 지루한 감도 있었다. 킹코브라의 삶을 그린 <동족>은 머릿속에 하나의 다큐멘터리 속 숨은 이야기가 그려졌지만, <에바와 아그네스>는 통 집중하기 어려웠다. 물론 자전적인 <한 방울의 죄>에서 이야기꾼이란 숙명을 타고난 작가의 인생을 엿볼 수 있어서 개운하게 마무리했지만 말이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국경시장>은 책 제목이 될 자격이 충분했다. 물고기 비늘이 화폐이고, 기억을 팔 수 있는 시장이라니! 비록 마지막이 예상대로 비극적으로 끝나버렸지만, 그 환상적인 공간을 사실적으로 꾸며낸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했다.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해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일 것 같았다. (<국경시장>은 연극으로도 재탄생했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재능이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를 파괴시키는 것을 방관한다. 그러나 쿠문 사망자들은 한결같이 미소를 짓고 있어 그들이 만족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쿠문은 인류에게 축복일까, 저주일까? 만약 당신에게 쿠문에 걸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짧고 고통스러운 천재의 삶과 이전의 삶 중에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책을 덮고 나는 <쿠문>에 기꺼이 짧은 삶을 던질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천재적 재능을 얻는 대신 짧은 인생을 고통스럽게 마감해야만 하는 운명이라. 항상 글을 쓰든 운동을 하든 나는 천재형이라기 보단 노력형에 가까웠다. 남들보다 빠르게 뭔가를 배우고 따라 했지만, 어느 경지 이상에서는 정체하곤 했다. 즉 빨리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만 그 벽을 깨기가 쉽지 않았다. 그럴 때면 그 현실에 안주하거나, (이 정도면 충분하지. 못하는 건 아니니깐.) 또다시 새롭게 배움의 재미를 느끼는 것으로 갈아타곤 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재능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이들을 보면 샘을 내곤 했다. 같은 노력을, 아니 적어도 나보다 덜 노력했는데도 더욱 훌륭한 성과물을 토해내는 게 처음엔 질투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수준이 지나면 동경의 단계에 접어들고, 그 샘을 원동력 삼아 나도 열심히 노력하는 게 맞다고 깨달았다. 가늘고 길게 살자가 모토지만, 가끔은 한번 사는 인생.. 천재처럼 화려하게 불타오르고 멋지게 퇴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단 생각도 든다. 그나저나 내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면..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보나 마나 아내에게 일단 물어봤을 것 같다.


(출처 : 문학동네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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