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설렘에는 앞날에 대한 기대가 들어있다. 설레며 고백하는 사람은 앞에 앉은 사람과 겪게 될 수많은 경험을 짐작하고 떠올리며 미리 행복해한다. 막연한 기대는 꿈꾸는 사람의 특권이다. 다가올 시간을 가늠해보는 일, 행복이라는 덩어리의 무게를 미리 재어보는 일, 그게 사랑의 시작일 것이다. 내가 만들었던 4년 일기 어플리케이션 역시 사랑하려는 사람들, 꿈 꾸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만든 어플리케이션의 '편리'가 누군가에게는 '사랑'일 수도 있을 이제는 알게 됐다. 그녀를 만난 다음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가지기 시작했다. - <보트가 가는 곳> 中
김중혁의 작가의 첫 번째 연애 소설. 야심 찬 홍보 문구만큼이나 말랑말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8편이 실려있었다. 언제나 이야기를 쫄깃하게 끌고 가는 재담꾼 김중혁의 <가짜 팔로 하는 포옹>에는 다양한 사람, 사랑이 등장한다. 포르노 제작자, 지진 피해자, 보험사기단, 독립 시계 제작자, 알코올 중독자. 쉽게 접할 수 없는 직업군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빠지다 보니 '연애 소설'이란 부연 설명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정체모를 비행물체에 이끌려 종말로 빠져든 <보트가 가는 곳>은 SF영화의 한 장면이 그려졌고,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을 읽다 보면 옆자리 테이블의 만취한 남녀의 고성이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연애라는 허울보다 김중혁 작가의 장점인 유쾌한 만담이 진한 재미를 선물했다. 그저 사랑을 시작하는 혹은 사랑이 끝난 또는 사랑이 일방적인, 다양한 인간 군상에서 빚어지는 에피소드를 나열한 느낌이었다.
그중에서도 이효석문학상을 받은 <요요>는 확실히 연애소설이었다. 시계를 만드는 직업처럼 '시간'에 대해 항상 생각하는 차선재, 그런 그에게 갑작스레 다가와 첫 만남만큼이나 홀연히 떠나간 장수영.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가까워지는지, 아니면 멀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시간은 직선적으로 느릿느릿하거나 쏜쌀같이 흘러가간다. 하지만 두 남녀가 만나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 '시간'은 그리 단순하게 설명 가능한 대상이 아니다. 읽지 못한 편지를 소중히 아끼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가지만 마냥 멀어지는 건 아니었다.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 뒷모습을 지켜보는 동안에는 시간은 멈춰있었다. 예전 풋풋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아쉬워하는 동안에도 그들의 시간은 쌓여갔다. 아니면 멀어지는 듯 가까워지는 시계 속 시침과 분침과 초침처럼 계속 반복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가올 시간을 가늠해보는 일. 그게 사랑의 시작일 것이다.
확실한 건 사랑을 시작하면 '시간'이란 절대적이지 않는 존재란 걸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끝이 행복이든, 불행이든 사랑은 한 사람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게 분명하다. 다가올 시간을 가늠해보고, 지나간 시간을 곱씹어보고,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함께 있는 시간 붙잡기 위해 두 손을 맞잡는 건 모두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 시간이 흐르고 반복된다면 방향 따위야 어디가 되어도 좋지 않겠는가.
편지라는 게 사람의 마음을 전달하기에 얼마나 불완전한 형식인지 새삼 깨달았다. 똑같은 글인데도 어떤 날은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처럼 읽혔고, 어떤 날은 더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읽혔고, 어떤 날은 사랑한 적이 없다는 말처럼 읽혔다. 그건 어쩌면 편지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다. 편지를 쓴 장수영의 마음이 그렇게 어지러웠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 <요요> 中
“파트너스 활동을 통해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