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1 20R
강등권 위기에 빠진 수원은 결국 원 클럽 레전드 박건하를 급하게 호출했다. 1996년 창단 멤버이자 은퇴 전까지 오직 수원에서만 뛴 박건하는 333경기 54골 34도움, 16회 우승을 경험한 레전드였다. 올림픽대표/국가대표팀 코치, 서울 이랜드 감독, 중국 상하이 선화 코치 등을 거친 지도자 경력을 봐도 현실적으로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선수 시절과 달리 축구수도 수원의 2020년 현실은 그리 장밋빛이 아니었다. 이임생 감독 사퇴 이후 2개월간 주승진 감독대행이 팀을 이끌었지만 최근 1승 1무 4패로 리그 11위로 추락했다. 3골을 넣으면 4골을 넣던 공격축구는 사라진 지 오래고, 답답한 경기력에 전역 후 합류한 한석종만 고군분투하는 모양새였다. 위기의 순간 맞대결 상대는 라이벌 서울이었다. 하지만 라이벌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최근 상대전적(8무 9패)이었고, 서울은 기성용, 박주영 등 베테랑을 모두 투입했다. 한승규의 결승골로 결국 또 발목 잡힌 수원은 이제 최하위 인천과 승점 2점 차, 한 경기 결과로 순위가 뒤바뀔 상황에 처했다. 과연 레전드 박건하는 감독으로 부진에 빠진 수원을 구해내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
1위 울산과 2위 전북은 나란히 무승부로 팽팽한 승점차를 유지했다. 세징야의 컨디션이 최고조인 대구를 상대로 울산은 조현우의 선방에 힘입어 겨우 승점 1점을 따냈다. 최근 부진이 이어지는 전북 역시 시원한 난타전 끝에 광주와 3대 3으로 비기며 무승부를 거뒀다. 다음 라운드 울산과 전북의 맞대결에서 사실상 우승의 향방이 가려질 예정이다. 한편 또 다른 명가 부산 역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0위 부산, 최하위 인천의 피 튀기는 혈투는 무승부로 끝났다. 경고가 7장이 나왔고, 퇴장이 나란히 나와 10명 대 10명으로 싸운 승부는 허탈한 무득점이었다. 한 계단이라도 올라가기 위해선 승점 3점이 절박했지만 결국 빛난 건 부산의 레트로 유니폼뿐이었다. 2020 K리그1 승격과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 제작된 'The Classic' 방패 유니폼은 매력적이었다. 수원과 부산 모두 25주년(수원), 20주년 기념 유니폼(부산)에 어울리는 성적을 거두고 옛날의 화려한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상주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상주를 떠나 연고지를 김천으로 옮긴다. 상주는 이별이 무척 아쉬운 듯 소중한 상주 홈경기에서 극강의 경기력을 뽐내고 있다. 홈경기 8승 2패로 압도적인 승점을 따냈고, 상주보다 높은 순위에 있는 울산, 전북보다도 강력한 모습이다. 스플릿 라운드 이전 마지막 홈경기에서 상주는 여유롭게 새로운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다. 5경기 2골 3도움으로 'K리그 8월의 선수'에 선정된 문선민, 한층 성장한 중원 장악력이 돋보이는 박용우를 벤치에 뒀다. 대신 연이어 활약을 펼친 오세훈, 오현규와 다른 유형의 스트라이커 이근호를 선발로 내세웠고, 정원진-이동수-김선우로 중원을 꾸렸다. 지난 대어 전북을 상대로 홈경기 첫 승을 따낸 성남은 오랜만에 토미를 선발로 내세웠다. 올해 영입된 토미는 양동현, 김현성에 밀려 주로 조커 역할로 후반에 투입되었지만 상주전엔 김현성 출장정지에 힘입어 선발 출전했다. 유인수, 김동현, 박태준 등 전북을 잡을 때 맹활약했던 선수들 역시 그대로 연속 선발 출전했다.
전반 초반 박태준이 과감한 정면 중거리 슈팅으로 경기의 포문을 열었다. 뒤이어 토미 역시 최전방에서 수비수 경합을 이겨내고 날카로운 왼발 슈팅을 시도했다. 이에 맞서 상주는 14기 신병 정원진의 중거리 슈팅으로 응수했다. 전반 20분 먼 거리의 프리킥 슈팅을 시작으로 정원진은 전반 31분 흘러나온 공을 강력하게 때렸지만 아깝게 골문을 벗어났다. 결정적인 마무리가 나오지 않는 가운데 양 팀은 강하게 부딪히며 선제골을 노렸다. 최전방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토미는 골 찬스를 노렸고, 상주는 차분하게 점유율을 높이며 밀집 수비를 뚫기 위해 중거리 슈팅도 아끼지 않았다. 0대 0으로 전반이 끝나고 양 팀 감독은 나란히 게임의 흐를 바꿀 선수를 투입했다. 후반 12분 상주는 송승민을 대신해 발 빠른 문선민을, 성남은 많이 뛰어준 토미를 한방이 있는 베테랑 양동현으로 바꿨다.
교체 투입 이후 기회는 성남에게 먼저 찾아왔다. 후반 24분 양동현이 측면을 파고들어 컷백을 내줬고, 나상호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오른발 슈팅을 시도했지만 골키퍼가 막아냈다. 성남이 최근 쏠쏠한 재미를 본 빠른 측면 역습과 컷백, 그리고 간결한 마무리가 다시 나올뻔했지만 아쉽게도 슈팅 방향이 골키퍼 정면이었다. 상주 김태완 감독은 후반 25분 우주성, 후반 34분 문창진을 투입하며 결승골을 노렸지만 성남의 밀집 수비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구 경기는 그대로 0대 0으로 끝났고, 승점 1점을 나눠가졌다. 이미 지난 19라운드 수원전에 승리하며 스플릿 A 잔류가 확정된 상주보다는 잔류를 위해 승리가 간절한 성남에게 다소 아쉬운 결과였다. 강등이 확정된 시즌에 역설적으로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상주의 '행복 축구'는 계속된다. 최고의 폼으로 전역해 곧바로 소속팀에 보탬이 된 강상우, 한석종의 후발주자를 기대하고 있다. 이미 측면에서 정교함을 더한 김보섭, 프로 데뷔골을 터뜨린 오현규 등 차세대 스타들의 성장세를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전북이 강원, 성남에 내리 패하는 동안 1위 울산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울산 역시 지난 라운드에 광주와 비기며 승점 차를 더욱 벌리지 못해 반쪽짜리 기쁨이었다. 지난해 최종전에서 통한의 준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생생한 만큼 경쟁자가 부진할 때 최대한 달아나야만 한다. 부진에 빠진 대구를 상대하는 김도훈 감독은 본인의 리그 200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기 위해 주니오-원두재-정승현으로 이어지는 필승 척추 라인을 선발로 내세웠다. 지난 경기에서도 친정팀을 상대로 맹활약한 조현우 역시 골문을 지켰다. 게다가 울산은 대구를 상대로 최근 10경기에서 7승 3무로 압도적인 천적 관계를 이어왔기에 자신감은 높았다. 반면 K리그 통산 200승을 코앞에 두고 5번이나 승리를 거두지 못한 대구는 위태로웠다. 에이스 세징야가 꾸준히 골을 넣고 있지만, 수비 불안과 주변 공격수들의 침묵이 아쉬웠다. 대구는 데얀의 결정력, 세징야의 폭발력이 시너지가 나길 바라며 투톱으로 내세웠고, 츠바사에게 공수 조율을 맡겼다.
전반전은 조현우와 구성윤, 국가대표 골키퍼들의 안정적인 선방이 빛났다. 강력한 울산의 공격에 맞서 대구는 자신의 장기인 선수비 후역습을 택했다. 대구는 점유율을 빼앗기 위해 적극적으로 압박을 가하진 않았지만, 위험 지역에서 촘촘히 수비라인을 세웠다. 경기를 주도하고도 위협적인 장면이 없던 울산은 전반 28분 이청용이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지만 골문을 벗어났다. 오히려 전반 35분 세징야가 빠르게 시작한 역습을 데얀이 정확한 슈팅까지 연결했지만 조현우의 선방에 막혔다. 팽팽한 전반이 무득점으로 끝났고, 후반 초반 행운의 여신이 울산의 편을 들었다. 후반 1분 역습 상황에서 박정인이 주니오를 향해 크로스를 올렸고, 공은 김재우를 맞고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조진우를 대신해 오랜만에 선발로 나선 김재우가 안정적인 수비를 펼치다 한 번의 실수가 그대로 골로 연결됐다. 실점 허용 이후 공격 숫자를 늘리고 라인을 올린 대구는 조현우의 야속한 선방에 동점골 기회를 여러 차례 놓쳤다.
탄탄한 울산 수비에 균열을 일으킨 건 올 시즌 첫 출전한 박한빈이었다. FC 슬로반 리베레츠로 임대를 떠났다가 다시 여름에 대구로 복귀한 박한빈은 시종일관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결국 후반 13분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는 박한빈이 뒤에서 저지하려던 원두재에게 PK를 얻어냈고, 세징야가 침착하게 동점을 만들었다. 조현우는 방향을 읽었지만 워낙 세징야의 슈팅이 강력해서 PK까지 막아내진 못했다. 기세가 오른 대구는 김대원, 에드가, 황태현을 연이어 투입하며 역전을 노렸다. 교체 투입된 에드가는 곧바로 위협적인 슈팅을 시도했지만 가슴 트래핑 이후 빗겨 맞으며 골문을 벗어났다. 반면 울산은 후반 34분 고명진을 대신해 들어간 비욘존슨이 골망을 흔들었지만 아쉽게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양 팀 모두 결승골에 가까운 장면이 있었지만, 골키퍼들의 선방에 결국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 대구는 또 200승 달성엔 실패했지만, 리그 1위 울산을 압도하는 슈팅(대구 18개 VS 울산 7개)을 선보이며 경기력 회복에 웃었다. 반면 울산은 조현우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질뻔할 경기에서 승점을 쌓은 건 만족스럽지만, 전북의 부진에 같이 승리를 챙기지 못한 건 아쉽다.
시즌 초반만 해도 K리그2 강등 후보로 손꼽히던 광주가 여름이 다가오자 완벽하게 달라졌다. K리그1 무대 압박에 적응한 펠리페는 본격적으로 득점포를 가동했고, 엄원상 역시 독보적인 스피드, 체력에 마무리 능력까지 장착하며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8월에는 2승 3무를 거뒀고, 지난 울산적에도 인상적인 경기력으로 무승부를 거뒀다. 우승 후보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있는 광주의 다음 제물은 전북이었다. 광주 박진섭 감독은 리그 10골을 넣은 주전 펠리페에게 휴식을 주고, 두현석-김주공-엄원상으로 공격진을 준비했다. 그리고 임민혁이 공격적인 롤을 수행하고, 박정수-여름이 포백 라인 보호를 맡았다. 반면 2017년 5월 이후 처음으로 2연패를 당한 전북의 흐름은 좋지 않았다. 1위 울산이 주춤하는 사이 승점차를 좁히지 못하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형국이다. 사실상 결승전인 다음 경기 울산전에 경고 누적으로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손준호를 대신해 신형민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구스타보가 최전방으로 나섰고, U22 자원 조규성은 윙어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광주가 엄원상의 스피드로 리드를 잡았다. 전반 3분 아슐마토프가 길게 찬 공이 전북 수비 진영에 떨어졌고, 순식간에 엄원상이 파고들어 깔끔한 로빙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최보경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낙하지점을 잘못 파악하자 곧바로 엄원상이 실수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전북의 공격력은 만만치 않았고, 빠르게 승부를 뒤집었다. 전반 10분 측면에서 조규성이 내준 공을 김보경이 오른발로 때렸고, 크로스바를 맞고 나오자 한교원이 침착하게 머리로 밀어 넣으며 동점에 성공했다. 뒤이어 전반 25분 이용의 낮고 빠른 크로스가 이승기를 지나 여름의 다리를 맞고 그대로 자책골로 마무리됐다. 단숨에 2골을 허용했지만, 최근 광주의 공격력은 충분히 따라잡을 폭발력이 있었다. 전반 44분 임민혁이 올려준 프리킥을 홍준호가 달려들며 동점골로 연결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다시 한번 전북의 수비 위치 선정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후반전 역시 엄원상이 경기를 뒤흔드는 빠른 돌파를 보여줬다. 엄원상은 후반 초반부터 날카로운 침투와 침착한 돌파로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만들었지만 슈팅은 골문을 벗어났다. 이후 후반 13분 임민혁의 스루 패스를 이어받은 엄원상은 침착한 왼발 슈팅으로 3번째 골을 터뜨렸다. 위태로운 수비력에 비해 그나마 건재한 전북의 공격력은 꾸역꾸역 동점을 만들었다. 후반 18분 최전방 구스타보가 상대 수비수 견제를 이겨내고 터닝 슈팅으로 골을 넣었다. 이후 양 팀 모두 펠리페, 마르코, 이동국, 쿠니모토 등 승부를 결정 지을 선수들을 넣었지만 팽팽한 승부는 무승부로 끝났다. 오히려 아쉬운 쪽은 광주였다. 김주공, 김효기의 슈팅이 아쉽게 막혔고, 종료 직전 펠리페의 헤더는 골대를 맞고 나왔기 때문이다. 울산-전북으로 이어지는 지옥의 일정에서 광주는 오히려 폭발적인 득점력을 뽐내며 경쟁력을 재확인했다. 무려 7경기 연속 무패다. 반면 전북은 김진수의 이적 이후 불안함이 더해진 수비라인을 안고 다음 울산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지휘봉을 잡게 돼 책임이 막중하다. 우선은 팀이 위기를 벗어나는 데 온 힘을 쏟겠다." 수원 레전드 박건하가 감독으로 강등권으로 추락한 팀을 구해내기 위해 지휘봉을 잡았다. 박건하는 1996년 수원 창단 멤버로 16번이나 우승을 경험한 원 클럽 레전드지만, 팀 분위기는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팀 스쿼드는 유스 선수에 기댈 수밖에 없고, 여전히 노장 염기훈이 풀타임을 소화하고 있다. 게다가 데뷔전은 가장 부담스럽고 중요한 서울과의 슈퍼매치였다. 자신의 전술을 입힐 시간적 여유가 없기에 기존 3-4-3 포메이션에 염기훈, 김민우와 함께 중원에서 큰 힘이 되고 있는 한석종을 선발 투입했다. 반면 2015년 4월 이후 9승 8무로 한 번도 수원에 지지 않았던 서울은 홈에서 보다 여유로웠다. 기성용, 박주영을 벤치 명단에 올렸고, 2선 한승규가 공격에 전념할 수 있도록 오스마르-정현철을 뒤에 세웠다.
최하위 인천에게 쫓기는 수원은 경기 시작과 동시에 강하게 서울을 압박했다. 타가트를 대신해 최전방에 나선 크르피치, 왕성한 활동량이 장점인 김태환부터 상대를 괴롭혔지만, 의외의 실수에 어이없이 리드를 내줬다. 전반 6분 정현철의 패스를 따낸 조영욱이 낮고 빠르게 크로스를 시도했는데, 뛰어들던 조성진이 수원 골문 안으로 공을 걷어냈다. 치명적인 자책골 이후 수원은 빠르게 분위기를 수습하고 승부를 원점으로 만들었다. 전반 17분 롱스로인 상황에서 재치 있게 김태환이 PK를 얻어냈고, 염기훈을 깔끔히 골을 성공했다. 골키퍼의 움직임을 노련하게 읽고 빈 곳으로 차 넣는 염기훈의 PK는 언제나 믿을만했다. 염기훈이 수원 소속으로 70골-70도움(358경기) 대기록을 세운 순간이었다. 동점 이후에도 염기훈, 김태환이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서울을 공략했지만, 중원에 고립된 크르피치는 침묵했다. 게다가 조성진이 부상으로 경기장을 떠나 임시방편으로 측면 수비 자리에 이상민을 급하게 투입했다.
김호영 감독대행은 기성용, 박주영을 나란히 후반 시작과 동시에 투입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기성용 투입과 동시에 4-3-3으로 대형을 바꿨고, 안정적으로 패스로 압박을 풀어나갔다. 기성용의 정확한 패스와 공격 전개로 점유율을 높이던 서울은 후반 15분 득점에 성공했다. 한승규가 수원 수비진 틈 사이에서 기습적으로 슈팅했고, 수비수를 맞고 굴절된 공은 양형모의 손끝을 넘어 그대로 결승골로 연결됐다. 다급해진 수원은 마지막 교체 카드로 한석희까지 투입했지만, 그렇다 할 찬스를 만들지 못했다. 중원에서 한석종이 고군분투했지만 수비적으로 내려앉은 서울을 뚫기에는 수원의 세밀함이 부족했다. 결국 서울은 수원 상대 무패 기록을 18경기로 이어갔고, 기성용의 경기 시간도 차근차근 늘려갔다. 반면 수원은 결정적 순간에 새로운 감독 선임 효과를 기대했지만, '서울 징크스'를 이겨내지 못하며 또다시 패했다. 박건하 감독은 2부 강등은 상상해본 적 없다고 말했지만, 이제 인천과의 승점차는 단 2점이다. 왕년의 승리 DNA를 하루빨리 주입해 팀을 추슬러야만 하는 상황에서, 레전드가 부담감을 이겨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파이널 라운드까지 3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강원과 포항의 목표는 뚜렷했다. 강원은 파이널A 잔류를 확정 지어 강등 위기를 피하는 게 우선이었고, 상위권의 포항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티켓 확보가 목표였다. 강호 전북을 잡아놓고 최하위 인천에 3골을 내주며 패배한 강원의 오락가락 행보는 불안했다. 김병수 감독은 강릉에서 만난 포항을 상대로 포백을 택했다. 공격진은 포항 출신 김승대, 고무열을 나란히 투입했고, 지난 경기 골맛을 본 김지현도 선발로 내세웠다. 반면 이미 승점 31점으로 남은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파이널A 진출을 확정 지은 포항은 여유로웠다. 중원 최영준의 짝으로 베테랑 오범석이 오랜만에 경기에 나섰고, 이승모를 조금 더 전진 배치하며 공격적인 임무를 부여했다. 강상우의 전역 이후 더욱 강력해진 왼쪽 측면에는 물오른 송민규가 선발 출전했다. 그리고 포항 특유의 패스 플레이를 막기에는 강원도, 상처투성이인 잔디도 역부족이란 걸 시작과 동시에 알 수 있었다.
킥오프 휘슬리 울리고 33초 만에 골문이 열렸다. 송민규가 강상우의 패스를 이어받아 순식간에 측면을 파고들어 크로스를 올렸고, 일류첸코의 헤더가 골대를 맞고 나오자 팔라시오스가 가볍게 밀어 넣었다. 올 시즌 K리그 최단시간 골이자, 포항의 팀컬러가 돋보이는 연계 과정이었다. 순식간에 실점을 내준 강원은 연이어 송민규에게 실점을 허용했다. 전반 25분 강상우의 코너킥을 송민규가 헤더로 마무리 지으며 2골 차로 만들었다. 강상우의 날카로운 코너킥 궤적도 일품이었고, 수비 집중력이 떨어진 틈을 타서 빈 공간으로 파고든 송민규의 움직임도 훌륭했다. 만회골을 노리는 강원은 적극적으로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지만, 강현무의 벽을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특히 강현무가 전반 39분 김지현의 위협적인 왼발 슈팅을 발로 막아내고, 곧바로 일어나 공을 쳐내 김승대의 침투를 무력화한 건 명장면이었다. 뒤이어 후반 9분 결정적인 이영재의 프리킥까지 가까스로 막아내며 최상의 컨디션을 증명했다.
공격 시도는 강원이 많았지만, 날카로운 한방은 포항이 훨씬 강력했다. 후반 15분 팔로세비치가 투입 2분 만에 3번째 쐐기골을 터뜨렸다. 역습 상황에서 일류첸코의 센스 있는 힐패스를 송민규가 따내 드리블로 빠르게 전방으로 치고 올라갔다. 이후 빈 공간으로 달려드는 팔로세비치를 향해 정확한 패스를 연결했고, 팔로세비치는 강원 수비수의 경합을 이겨내고 깔끔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이후에도 이승모의 헤더가 골대를 맞는 등 포항의 공격은 매섭게 이어졌다. 강원 역시 높은 볼 점유율을 바탕으로 계속 골문을 두드렸지만, 강현무의 선방에 번번이 막혀 결국 완패했다. 골 결정력 난조에 허덕이는 강원은 6위에서 9위로 추락했고, 다시 잔류 압박에 시달릴 전망이다. 한편 포항은 8골 3도움으로 영 플레이어상을 코앞에 둔 송민규의 맹활약과 7도움으로 도움 단독 선두에 오른 강상우의 시너지가 흡족하다. 3연승으로 상승세에 올라탄 만큼 포항의 남은 일정은 매우 긍정적이다.
부산이 역사적인 구덕 운동장에서 추억의 방패 문양 레트로 유니폼을 특별히 입었다. 유니폼 카라에는 예전 부산의 영문 표기법 'PUSAN'이 찍혀있고, '마이부산(마! 이게 무산이다)' 슬로건도 박혀있다. 2004년 개성 있는 방패 문양 유니폼을 입고 FA컵 우승을 차지했던 추억이 생각나는 유니폼으로 100벌 한정 판매가 예정됐다. 특색 있는 유니폼에 걸맞은 성적을 위해 부산은 선발로 김병오, 이동준, 김문환 등 발 빠른 선수를 측면에 배치했다. 지난 경기 교체 투입되어 소중한 동점골을 뽑아낸 김정현 역시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다. 반면 시즌 막바지에 접어들자 기적처럼 살아난 인천의 기세는 무섭다. 1승도 없던 팀이 조성환 감독 부임 이후 벌써 3승을 거뒀고, 지난 강원 원정에서는 다득점에도 성공했다. 강등 탈출이 시급한 인천은 해트트릭을 기록한 에이스 무고사, 공격 전개의 질을 한층 끌어올린 아길라르를 선발로 내세웠다. 이와 함께 지언학, 김도혁, 김준범 등 활발한 압박을 기대하며 중원을 꾸렸다.
중요한 승부인만큼 초반부터 강한 몸싸움과 볼 쟁탈전이 펼쳐졌다. 그리고 전반 6분 만에 호물로의 크로스를 넘겨받아 이동준이 침착하게 골망을 흔들었지만 핸들링 판정을 받으며 골은 취소됐다. 이후에도 이동준은 수비수를 스피드로 이겨내 크로스를 올렸고, 김현이 논스톱 슈팅했지만 골키퍼가 선방했다. 측면 돌파와 크로스로 공략하는 부산을 상대로 인천은 역습 위주의 공격을 이어갔다. 아길라르가 기점이 되어 무고사를 향한 킬패스, 직접 프리킥 슈팅을 시도하며 상대를 압박했다. 양 팀 모두 거친 태클과 경합이 이어지며 파울과 경고가 속출했다. 전반에만 부산은 김문환과 김정현이, 후반 들어서는 인천 김연수와 아길라르가 연이어 경고를 받았다. 그리고 경기의 흐름을 바꿀 퇴장까지 나왔다. 후반 25분 정동윤이 깊은 태클을 시도했지만 공이 아닌 발목을 차 버렸고 다이렉트 퇴장을 받았다.
하지만 부산 역시 4분 뒤 김정현이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하며 수적 우위를 전혀 누리지 못했다. 조덕제 감독은 스트라이커 이정협을 투입하며 승리에 대한 열망을 내비쳤고, 인천 역시 정동윤 퇴장 이후 강윤구, 최범경을 투입하며 승점 3점을 노렸다. 가벼운 몸놀림의 이동준은 여러 차례 골문 앞에서 기회를 잡았지만 마무리가 아쉬웠고, 인천 역시 세트피스 이외에는 인상적인 공격이 없었다. 반칙이 속출하고(부산 12개, 인천 19개), 퇴장 선수가 2명이나 나오는 등 거친 경기였지만, 절박함에 비해 세밀함이 부족했다. 골문 앞 찬스에서 슈팅이 골키퍼 정면으로 향하거나, 골대 밖으로 넘어가는 일이 더 많았다. 답답한 경기는 그대로 마무리되었고 양 팀 모두 순위 변화는 없었다. 그나마 경쟁자 11위 수원(승점 17점)이 패배하며 인천(승점 15점)은 승점차를 2점으로 줄였다. 물론 3경기째 승리가 없는 부산 역시 10위(승점 21점)로 강등이 남 이야기가 아니라 긴장을 늦출 수 없다.
FW 세징야 구스타보 팔라시오스
MF 송민규 한승규 엄원상 임민혁
DF 도스톤벡 연제운 강상우
GK 강현무
프로 10년차는 되는듯한 여유로운 송민규는 놀랍게도 U22 카드다. 송민규는 강원을 상대로 3골 모두 관여하며 경기를 지배했고, 전역 후 풀백으로 나서는 강상우와도 찰떡 궁합을 뽐내고 있다. 후반 17분 팔로세비치가 마무리한 쐐기골의 전개는 일품이었다. 강상우가 수비 진영에서 공을 빼앗아 빠르게 롱패스를 연결했고, 역습 상황에서 일류첸코가 감각적인 힐킥으로 전방으로 공을 보냈다. 공을 따낸 송민규는 침착하게 수비수를 앞에 두고도 전진했고, 빈 공간의 선수를 확인하고 절묘한 킬패스를 넘겼다. 팔로세비치는 수비수의 견제를 이겨내고 주발이 아닌 오른발로 정확하게 골문으로 슈팅을 연결했다. 포항이 자랑하는 스틸타카의 모든 게 담겨있는 아름다운 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