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맛, 집밥의 추억
나는 취향이 없는 사람이다. 적어도 식사에서만큼은. 일단 내가 직접 요리를 하지 않기에 이래라저래라 요구하는 메뉴가 없고, '스트레스받으면 매운 떡볶이', '비가 오면 파전' 따위의 필수 공식도 없다. 다양한 메뉴가 기다리는 북적거리는 구내식당에서 '짧은 줄'이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다.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 후식을 고를 때면 '아무거나'가 나의 답이었다. 점심시간 1분 1초가 아까워 빠르게 한 끼를 때우고, 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펼쳤다. 서울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읽는데 임종 노트 이야기가 나왔다. 삶의 후회를 줄이고, 나아가 남은 이들에게 막연한 슬픔보다 행복한 추억을 남겨주기 위해서 필요한 절차라는 설명에 매우 공감하며 잠시 상상해봤다. 내가 죽기 직전에 뭘 먹으면 좋을까? 내 삶의 마지막 식사인데 빨리 나오는 메뉴를 고를 수는 없었다. 곰곰이 떠올려보니 단연코 떠오르는 건 '진미채 볶음'이었다.
진미채에 그냥 따뜻한 흰밥을 먹고 싶어요.
약간 타야 제맛인 누룽지도 딱이고요.
델몬트 병에 담긴 시원한 보리차도 좋아요.
- 내가 쓴 임종노트 中
tvN <스페인 하숙>은 유해진, 차승원, 배정남이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자극적인 불화나 반전, 슬픈 사연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낯선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소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피식 웃고 마는 게 전부다. 모니터 속 엑셀 표와 씨름하는 게 일상인 사무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지옥이 다름없는 답답한 퇴근길. 고된 하루를 버텨낸 직장인에게는 그저 <스페인 하숙> 같은 담백하고 소소한 예능이 적합했다. 이들은 서로 도와가며 뚝딱뚝딱 빠른 손놀림으로 여행자들에게 푸짐한 한식을 차려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 걷는 이들에게 한식은 단순히 한 끼가 아니라, 진한 감동을 선사하는 고향의 맛이다. 김칫국, 불고기, 된장찌개, 제육볶음, 미역국. 예쁜 그릇에 정갈하게, 하지만 푸짐하게 나오는 한식에 TV 앞에서 덩달아 군침을 삼켰다. 그중에서도 차승원이 배정남이 좋아하는 반찬인 '진미채 볶음'을 뚝딱 만들어주는 걸 보고 참지 못하고 곧장 네이버로 '진미채'를 검색했다. 백종원 레시피도 있겠다, 만들어 볼만한 만만한 메뉴라 생각했다. 그런데 1kg에 19,900원? 홍진미? 백진미? 어린 시절 매번 나오던 제일 평범한 메뉴가 이렇게 비싸고 종류가 다양했다니. 놀라서 휴대폰을 들었다.
엄마, 진미채가 원래 이렇게 비싸요?
어머니는 나의 물음에 원래 진미채는 비싼 재료라고 하셨다. 나는 너무나 당연히 매번 밥상에 올라오는 메뉴였고, 고기나 생선도 아닌 평범한 오징어라 무시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진미채는 비싸거나, 아니면 보관이 쉬운 반찬이 아니라 그저 자식들이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계란말이, 오이소박이, 동그랑땡. 그중에서도 나와 여동생에게 친근한 반찬은 '진미채 볶음'이었다. 어린 시절 냉장고를 열면 언제나 델몬트 유리병에 담긴 보리차, 푸짐하게 담긴 발그스레한 진미채 볶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감이 최고조인 두 번의 수능 시험 때도 점심 도시락 한편을 차지한 일등 반찬이었다. 적당히 달콤하고 질겅질겅 씹는 재미도 쏠쏠하고 찌개, 덮밥 등 모든 음식에 어울리는 만능이다. 오징어채, 오징어포라고도 하는 진미채는 홍진미와 백진미로 나뉜다. 오징어 껍질을 벗겼는지에 따라 구분하는데, 껍질이 붙어 붉은빛을 띠는 홍진미가 약간 더 쫄깃한 편이다. 유통기한이 길고 씹는 맛이 있어 밥반찬,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취향에 따라 버터, 고추장, 통깨 등을 첨가해 볶으면 더욱 훌륭한 맛을 완성한다.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정확한 계량도 필요 없는 간단한 반찬이었다. 수십 년의 감각이 빚어낸 엄마표 진미채 볶음은 마늘 한 스푼, 고추장, 고춧가루, 올리고당을 '눈대중으로 적당히' 넣으면 완성되는 메뉴였다.
적당히 볶으면 되는 거야.
어머니는 주관적인 내 입맛을 떠나서 객관적으로도 음식 솜씨가 있으셨다. 수백 명의 점심을 준비하는 고등학교 조리사로 근무하시면서 말 그대로 '밥'으로 '밥벌이'를 하셨다. 게다가 여전히 무더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려가시며 찌고, 볶고, 튀기고 일을 하신다. 사춘기 시절 같은 고등학교로 함께 등교할 때는 솔직히 불편할 때도 있었다. 엄마가 부끄럽다기보다는 약간 껄끄러웠다. 내 사정을 아는 친구들은 꼬박꼬박 밝게 웃으며 조리사 아주머니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지만 모든 아이들이 착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돈가스가 조금이라느니, 국이 너무 짜다느니 철없는 고등학생의 반찬 투정에 괜히 내가 화가 나고, 종종 다투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무사히 졸업을 했고, 어머니는 내색 않고 묵묵히 요리를 하셨다. 돌이켜보면 하루 종일 불을 곁에 두고, 음식 냄새에 질렸을 게 분명한데도 어머니는 부지런히 진미채 볶음을 하셨다. 요리 고수에게 진미채 볶음은 눈 감고도 하는 쉬운 반찬일 수도 있지만, 그저 취향이 없는 아들이 좋아하는 거의 유일한 메뉴라서 그랬을 것 같다. 어쨌든 어머니는 나를 위한 한상을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3년 내내 음식을 만드셨던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나와 살면서 부모님과 식사를 하는 경우는 대부분 기념일이다. 부모님 생신, 어버이날, 설날. 특별히 기분 좋은 날이면 이제 집밥보다 외식을 자주 한다.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드리는 게 첫째요, 근사한 분위기에서 색다른 음식을 먹어보는 게 둘째 이유였다. 최근에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이색적인 파스타와 피자를 먹고, 시끌벅적한 유명 고깃집에서 땀을 흘려가며 고기를 구워 먹었다. 묵묵히 출퇴근의 굴레를 이겨내고 어느덧 정년을 맞이한 남편, 마냥 어린 줄 알았는데 독일에 직장을 구해 홀로 훌쩍 떠난 딸. 어색함 없이 수다를 떨고 건강을 챙겨주는 귀여운 며느리. 식사 메뉴가 바뀌고, 가족의 구성원이 늘었지만 언제나 구수한 한식, 따뜻한 집밥은 그대로다. 다가오는 추석에는 오랜만에 집에서 옹기종기 모여 간단하지만, 푸짐한 한상을 먹어야겠다. 그저 헐레벌떡 때우는 식사가 아니다. 비싸고 싸고는 절대 문제가 아니다. '잘 먹었습니다'에는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노력하고 헌신한 가족이 서로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사랑한다는 말이 꾹꾹 눌러 담겨있다. 다음번에는 빈 통을 가져가 반찬만 얻어오지 말고, 직접 진미채를 만들어 가봐야겠다. 요리 고수 엄마에게는 너무 달거나, 너무 질길 수 있지만 그래도 웃으실 게 분명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밥상이니깐.
그나저나, 내가 진미채를 물어보자마자 어머니는 또 진미채를 볶으셨다. 늘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처럼 잘 먹었습니다란 말과 함께, 이제는 나도 한번 따라서 진미채를 볶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