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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전자 슈퍼 컴보이, 삼성전자 갤럭시 S10.

아빠 스마트폰을 바꿔드렸다.

by 샘바리

# 현대전자 슈퍼 컴보이. 아빠가 사준 최신 게임기였다.


아빠가 내게 사준 게임기. 현대전자 슈퍼 컴보이


초등학교, 아니 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건 꽤나 재밌는 일이었다. 유치원 때처럼 흙바닥에서 헤진 낫쏘 축구공을 차고 노는 건 그대로였으나, 달라진 건 하나였다. 바로 '게임기'라는 신문물. '무려 2,048가지 화려한 색상의 실감 나는 입체화면, 박진감 넘치는 슈퍼 스테레오 사운드, 놀라운 스피드, 슈퍼파워.' 현대전자의 슈퍼 컴보이는 90년대 '인싸'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요리조리 상대를 피하고 버섯을 먹고 쑥쑥 자라는 <슈퍼 마리오>, 불을 내뿜으며 팔을 길게 뻗는 달심이 등장하는 <스트리트 파이터>. 초창기 게임계의 양대 산맥 중 앞동에 사는 친구는 슈퍼 마리오 팩만 갖고 있었다. 2인 플레이가 가능한 대전 격투 게임과 달리 슈퍼마리오의 치명적인 단점은 1인용이란 것이었다. TV 속 마리오는 쿠퍼 대마왕의 불구덩이에 떨어져 죽었지만, 집주인은 죽지 않았다. 한판만 더 한다는 공허한 약속은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었고, 어린 나는 서러운 마음에 펑펑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을 재구성해보면, 집으로 돌아온 나를 맞이한 건 자고 계신 아빠였다. 아마도 전날 지독한 회식의 여파로 월차를 쓰고, 해장용 얼큰 김치 콩나물국을 먹고 쉬고 계셨던 모양이다. 엄마는 갓난아기인 동생을 데리고 병원인가, 마트인가 어디론가 나가 계셨다. 엄마가 없었던 게 확실한 이유는 당시 돈으로 나름 거금인 게임기를 턱 하니 사줄 때 아무도 말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엉엉 억울하게 우는 나의 자초지종을 듣고 아빠는 곧장 전자상가로 가서 슈퍼마리오와 스트리트파이터, 그리고 7개인가의 게임이 하나에 모여있는 종합 게임 팩까지 떡하니 사주셨다. 이런 걸로 울고 싸우지 말고, 다음에 그 친구를 불러서 같이 2인용 게임을 하라고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차근차근 TV에 연결하는 방법을 알려주고는, 요즘 게임이 신기하긴 신기하다며 조금 쳐다보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셨다. 하도 게임기를 붙잡고 있어서 혼난 기억도 많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아빠가 사준 최첨단 기계의 달콤한 추억이 훨씬 강하게 남아있다.


# 삼성전자 갤럭시 S10. 아빠에게 사드린 최신 스마트폰이었다.


아빠가 고른 최신 스마트폰 삼성전자 갤럭시S10


59년생 아빠는 올해 정년퇴직을 앞두고 계신다. 100세 시대 재취업 비결을 다루는 현실적인 강연부터 고생한 나를 돌이켜보는 의미 있는 교육까지 회사에서 시키는 게 제법 많다고 하셨다. 그래도 지루한 시간을 버티는 건 내년 겨울에 떠날 여행 덕분이었다. 아빠는 엄마와 함께 따뜻한 나라 방콕에서 환갑과 정년퇴직을 기념하실 생각이었다. 내가 도와드릴 거라곤 마사지, 맛집, 유심 같은 소소한 정보를 모아 최고의 여행을 돕는 것이었다. 같이 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느덧 게임기 때문에 울던 아들도 회사 눈치를 보며 연월차 개수를 세는 신세가 되었으니. 저가항공으로 끊은 비행기 티켓의 자리를 대신 지정하려고 아버지 스마트폰을 꺼냈다. 제주항공 애플리케이션이 느린 건지, 3년이 넘은 삼성폰이 문제인지 계속 버벅거리고 인내심을 시험했다. 빠른 입국 수속과 편한 비행을 위해 추가 금액을 지불하고 최대한 앞자리를 겨우 선점했다. 그리고 옆에서 친절하게 숫자+영문 대소문자를 조합해 비밀번호를 바꿔준 아내가 이야기했다. 아버님 휴대폰 바꾸실 때가 됐다고.


빠르게 최신 폰들의 스펙과 가격을 검색한 아내는 삼성 갤럭시S/노트 시리즈, LG V50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한 번도 써보지 않으신 고가의 아이폰, 크게 가격 메리트가 없는 보급형 안드로이드 모델은 과감히 리스트에서 뺐다. 기기변경/번호이동, 공시 지원금, 선택 약정 등 (나도 헷갈리는) 용어들을 써가며 결국 오래 편하게 쓰실 수 있는 갤럭시 S10을 추천했다. 아빠는 늘 돈 아깝게 고장만 안 나면(=켜지기만 하면) 스마트폰을 뭐하러 새로 사냐는 주의셨지...만... 야무진 며느리의 추천에 웃으며 스마트폰 교체를 선언하셨다. '2.73+1.95Ghz 옥타코어, 1,000만 화소 전면 카메라, 내장 메모리 512GB'. 온 가족이 총출동해 스마트폰 성지란 곳에 찾아가 무사히 스마트폰을 바꿨다. 아버지는 합리적인 가격에 최신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유튜브와 카카오톡 말고 최신 게임이라도 깔아봐야겠다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마지못해 바꾼 신문물 스마트폰으로 싱글벙글 고맙다고 하시는 아버지를 보니 정말 뿌듯했다.


짐을 싣기 위해 큰 SUV를 타는 아빠도 젊은 시절 파란색 스포츠카 드라이버였다.


아빠의 단골 멘트는 '아무거나'였다. 오붓한 가족 식사 메뉴도, 교체 예정인 스마트폰도, 심지어 환갑 기념 여행지도. '아무거나'는 '너희 원하는 대로'와 같은 말이었다. 아빠는 항상 내가 원하는 걸 모두 해주려고 노력하셨다. 내 이야기면 무조건 지지해주셨고, 가끔은 억지 같은 응석도 일단 최대한 들어주고 웃으셨다. 과묵한 '갱상도' 사나이라 여전히 미운 말은커녕 좋아하는 것도 쉽게 내뱉지 못하는 아빠. 이제는 편하게 당신의 인생을 살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여전히 아들이 먹고 싶은 음식, 며느리가 보고 싶은 TV, 아내가 하고 싶은 운동, 딸이 가고 싶은 여행지가 먼저일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더 다양하고 색다른 경험들을 먼저 권하고 함께해야겠다. 매주 로또를 사고, 매일 퇴사를 꿈꾸는 나에게 아버지의 정년퇴직, 수천수만 번의 반복된 출퇴근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아빠도 파란색 스포츠카를 몰았고,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잘 불렀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던 사람인데. 어느덧 아빠의 꿈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언제나 행복한 가족’이 된 것이다. 나도 그 꿈을 이어받아, 그리 익숙하지 않은 헌신, 사랑, 배려를 배워나가고 있다. 하루하루 쉽진 않지만,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스마트폰에 서툰 아빠를 위해 연락처, 공인인증서, 사진 등을 옮겨드려야겠다.

사진첩을 가득 채운 가족사진을 널찍하고 시원한 최신 스크린으로

오랫동안, 선명하게 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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