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긍정도 억지로 계속하면 병이다

#꼰대와 #멘토는 한 끗 차이

by 샘바리


모든 일에 너무 긍정적인 '척'은 하지 마.


최근에 들은 조언 중에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이상하게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고, 낯설지 않았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제야 기억났다. 고3 시절 생물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나는 나한테 뭐라고 하는 말에 겉으로는 그냥 허허 웃어넘겨도 마음속에 꾹꾹 담아놓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나를 보고 걱정이 없어서 좋겠다고 부러워하지만 그렇지 않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긁어모으는 미련한 성격이다. 걱정은 나누면 약점이 되고, 행복은 나누면 시기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숨기고 감췄다. 그런데 저런 말은 들어본 게 정말 오랜만이라 반갑기까지 했다.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하는 게 아니라 고마웠다.


학창 시절 과학 과목 교무실은 나의 아지트였다. 마음이 맞는 몇몇 친구들과 야자 1교시면 몰래 과학 교무실에 놀러 갔다. 어차피 저녁 내내 공을 차고 땀을 빼고 나면 야자 1교시는 버리니깐 수다라도 떨면서 스트레스를 풀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수능을 앞두고 너무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에 그랬던 것 같다. 혹시 수능을 망해도 재수하면 된다고(말이 씨가 되었다!) 웃었지만, 혼자 있을 때는 항상 조급했다. 겉으로 내 감정을 절대 티 내지 않는 성격인데도, 생물 선생님은 신기하게도 내 마음을 다 아셨다. 따뜻한 보리차를 한잔 주시면서 차근차근 잔소리를 하셨고, 사회탐구 영역 기출문제를 말없이 뽑아주셨다.


사실 생물 선생님은 그리 인기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자는 애들은 어떻게든 깨우려고 하셨고, 문과라 다들 '생물'은 관심도 없었는데 꿋꿋이 진도를 나가셨다. 30살이 넘은 초임 교사, 생글생글 웃으시고 애교가 많은 지구과학 선생님과 다르게 차갑고 별로 웃지 않는 인상. 그렇다고 애들을 때리지도 않고, 신경질을 내지도 않았다. 악질로 기억하지도 않을 정말 그저 그런, 보통의 선생님이었다. 나는 적어도 자지 않았지만, 수업을 듣지 않고 소설책을 읽었다. 엎드려있지 않은 학생 찾기가 쉬운 교실에서 사실 걸릴 게 뻔했다. 언젠가 한번 선생님이 갑자기 다가오길래 뒤늦게 생물 문제집으로 가려 보았지만 이미 늦었었다. 본능적으로 선한 웃음을 지으며 죄송하다고 했는데 담담하게 괜찮다고 하셨다. 오히려 장영희 수필을 추천하시곤 가셨다. 아마 그때부터 생물 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너는 왜 다 괜찮다고 하니?"
"뭐, 괜찮으니까요. 제가 원래 긍정왕이잖아요!"
"힘든 일 있는데 끝까지 혼자 삭히다가는 병 된다."
"진짜 괜찮은데요? 저 건강해요. 맨날 운동하는데?"


애써 웃으면서 말 돌리곤 했지만, 아마 선생님은 다 아셨나 보다. 담담하고 차근차근 천천히 말씀해주셨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하긴 돌이켜보면 두발 단속 때문에 머리를 빡빡 민 고3이 '긍정킹'이 될 순 없다. 적을 만들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네 편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하셨다. 진지한 분위기가 낯간지러워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상황을 넘겼지만, 참 소중한 말이었다. 적당히 내 마음 숨기고, 좋은 게 좋은 거다 넘기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나를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친구든, 부인이든, 가족이든. 적어도 100%까진 아니더라도 70~80%는 솔직하게 털어놓을 사람이 있어야 행복한 거야."
"저 친구 많아요. 결혼하면 엄청 잘 살걸요? 6시에 퇴근하고 아기랑 축구하러 다니고 그럴 거예요."
"그래. 그러려무나. 그런데 그렇다고 너무 털어놓고 다니지는 마. 너무 그러면 약점 잡힌다. 어차피 네가 그럴 성격도 아니지만. 네 마음 아는 사람은 어딘가에는 있을 거야. 없으면 할 수 없고."


그땐 몰랐는데, 사려 깊은 어른의 대답에는 내 문제를 다 이해하는 따뜻함이 담겨있었다. 물어본 걸 대답하면 조언이고, 물어보지 않은 걸 이야기하면 오지랖이라 했던가? 아마 선생님은 내가 물어보고 싶은데, 차마 물어보지 못한 일에 조심스레 힘을 불어넣어주신 것 같다. 마냥 나이가 많은 꼰대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먼저 겪은 멘토의 한마디라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 법이다.


도서관 좌석 번호로 기억되는 재수 시절이 절대 후회되거나 슬프게 남아있진 않다. 하지만 유일하게 슬픈 사실은 그 시절을 지나며 생물 선생님과 연락이 끊겼다는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뷔페 엄청 먹고 돈 안 낼 거라고 깐죽거리곤 했는데. 잘 살고 계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잘 살고 계실 거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손꼽히는 사려 깊고 정이 많은 사람이니깐.


어느덧 나도 마냥 어른 같았던 생물 선생님 나이가 되었다. 나는 그때에 비해 얼마나 자랐을까? 몸은 자랐는데(아. 키는 그대로구나.) 아직 마음은 그대로다. 사려 깊고 정이 많은 어른으로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건방지고 고압적으로 충고하고 지적질하는 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긍정이나 맹목적인 낙관주의보다는 가끔은 솔직한 게 좋다. 소중한 사람들한테는 기대도 괜찮다. 그래도 이해해줄 것이다. 나도 똑같이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현대전자 슈퍼 컴보이, 삼성전자 갤럭시 S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