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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바리 Oct 03. 2019

인간은 과연 인간적인가? 오만한 이성의 침몰

[영화]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2011)


○ 이모션 캡처로 빚어낸 환상적인 피조물!


가장 성공적인 리부트 혹성탈출 3부작. 그 중에서도 충격적인 서막을 알린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이 단연 돋보인다. 수백억을 퍼부으며 '저품격 도시 철거 무비'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트랜스포머> 후속작에 비하면 <혹성탈출>의 프리퀄 격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SF 걸작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게다가 단순한 블록버스터를 넘어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CG 계에 새로운 진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킹콩>, <반지의 제왕>에서 숨은 주역이었던 앤디 서키스가 이번 영화에서도 주인공 시저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더욱 자연스럽고 섬뜩한 그의 표정 연기에는 과학기술이라는 훌륭한 조력자가 숨어 있다. 블루스크린 앞에서 특수 의상을 입고 촬영을 한 후 덧붙이는 식으로 진행되었던 번거로운 시스템에서 실제 배우와 촬영 현장에서 호흡할 수 있는 이모션 캡처 시대의 막을 열었다. 초소형 카메라로 얼굴 근육, 눈동자 등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고 적외선 LED 시스템으로 구현해낸 침팬지는 실물 이상의 현실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1968년 원작 <혹성탈출>에서 선보인 캐릭터들은 지금 봐도 어색함이 묻어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지만, 이번 2011년 버전은 더욱 완벽하더라. 기술의 발달이 영화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충분조건일 수는 없지만, 필요조건이라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탄탄한 서사구조 없이 CG 범벅인 영화는 기술시연회일 뿐이다.) 실제 원숭이가 한 마리도 등장하지 않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박진감 넘치는 추격전, 대규모 격투 장면은 전혀 지루하지 않고 빠르게 진행된다. 3D 특수효과의 정수인 <아바타>는 환상의 섬에서 싸움이 벌어졌지만 <혹성탈출>은 실제 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므로 훨씬 현실적이어야 하는 까다로운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WETA 디지털은 이러한 핸디캡을 깔끔하게 극복해냈다. 부담스러운 조건을 이겨내면 두 배로 알차고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는 게 진리다.



○ 원숭이 판 모세, 스파르타쿠스를 응원하는 이유


영화의 주인공은 철저하게 시저다. 시저가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윌 로드맨(제임스 프랑코), 그의 연인 캐롤라인(프리다 핀토), 유인원 수용소에서 (말포이처럼!) 악랄하게 시저를 공격하며 분노를 극대화해준 도지(톰 펠톤)도 모두 주변 인물일 뿐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원숭이 판 모세, 스파르타쿠스는 바로 시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시저가 골똘히 깊은 고뇌에 빠져 있던 모습이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윌은 임상실험 중 침팬지를 몰래 집으로 데리고 돌아온다. 그리고 어린 시저는 월의 실험 대상이자 친구로 자란다. 그러던 중 놀라운 천재성과 날카로운 공격성을 드러내며 인간에 버금가는, 나아가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을 가진 슈퍼 영장류로 거듭난 시저는 동료를 모으며 새로운 혁명을 준비한다.


원작 <혹성탈출>을 추억하는 몇몇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아예 다른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원숭이가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충격적인 결말을 기억하는 관객은 흥미로운 재료로 색다른 영화로 재탄생한 원숭이 판 출애굽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억울하게 억압받고 쓸쓸하게 고독에 몸부림치는 시저를 보고 있으면 애잔한 동정심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다. 극 중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공격받는 모습에 흥분하여 야성을 뽐내며 복수를 하고 나서 시저는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커다란 스크린에 드러낸다. 당당하거나 승리에 도취하여 우월감을 느끼기는커녕 자기가 저지른 상황에 당황하고 불안해하며 가족 품에 안겨 두려워한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한 것이다. 게다가 친구 사이에서도 그는 낯선 타자로 취급되며 혼란을 겪는다. 원숭이 사회에서까지 튀는 모습 때문에 철저하게 배제되어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절로 시저의 탈출과 새로운 도약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를 도와주는 특색 있고 개성 넘치는 동료를 보고 있으면 원숭이 군단에게 당하는 인간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되네요.



○ 인간은 과연 인간적인가? 오만한 이성의 침몰


모든 혁명의 시작은 단순한 실수에서 시작됐다. 소름 끼칠 정도로 진화한 지능으로 'JACOB'이라 글을 적는 침팬지를 바라보며 누군가는 공포를 느꼈겠지만, 누군가는 어마어마한 돈이 굴러들어 오는 핑크빛 환상을 꿈꿨다. 인류의 번영이라는 거창한 목적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의 윤리의식마저 가지지 못한 탐욕적인 회사 측의 방침 때문에 인류의 미래는 뒤바뀌게 된 것이다. 과학이 선물한 오만함에 빠진 채 무조건 '돈'만은 추구하며 인류와 가장 비슷하다는 침팬지를 무자비하게 도구적으로 악용하는 그들을 보면 <혹성탈출>의 잔혹한 결말이 권선징악이란 생각마저 들더라. 흔히들 인간은 이성적이기에 다른 동물과 차별화된다고 말한다.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과 공감하며, 타인을 향한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 '인간적'인 공동체를 유지하는 인간. 하지만 21세기 진보한 과학과는 달리 뒷걸음질 치는 자연을 바라보면 과연 우리 인간은 '인간적'이라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무자비하고 무의미한 살인을 멈추라며 동료에게 고함을 지르는 시저가 우리가 정의한 '인간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 안 돼.


캐롤라인은 점점 변화하며 성장하는 시저를 숨기는 윌을 향해 걱정스럽게 말한다. 전지전능한 힘을 지녔다고 착각하는 우리 인간은 쉽게 자연을 판단하고 예측하며 바꾸려 든다. 무비판적인 이성의 종착역이 돌이킬 수 없는 파괴라는 걸 잊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눈이 멀고 오차가 없으리라고 자료를 맹신하기 때문이다. 실수는 누구나 범할 수 있지만, 그것을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 반성하며 먼 미래를 내다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자 의무이며 권리다. 후손을 배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개발, 윤리의식이 실종된 실험, 종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이해타산적으로 거둬들이는 농사. 모든 것을 잠시 멈추고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우리가 아름다운 자연을 잃어버린 채 하루하루 의미 없이 살아간다면, 아니 버텨나간다면 차라리 깨끗한 자연을 벗 삼아 원숭이 지배 아래 안전하게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는 법이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예고편




+ 3편은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아름답게 마무리됐다. 역시나 시저가 처음으로 말을 하는 1편의 소름이 제일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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