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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쟌 Oct 01. 2020

다이어트는 내일 해야 제맛!

하지만 내일은 오지 않지.

십 대부터 이십 대까지 나의 관심사는 다이어트였다. 유일한 즐거움이 맛있는 걸 먹고 드러누울 때라 살이 아주 보기 좋게(?) 올라 있었다. 다행인 건 운동도 좋아해서 그나마 겨우 유지 정도는 했다. 그래도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시기라 예쁜 것도 아니요, 늘씬한 것도 아니요.. 전자는 이미 망했고 그나마 후자는 도전해볼 만하다.



실패과정은 대략 이렇다.

다이어트는 대부분 배부를 때 결심이 선다. 눈치없이 부른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가만 보자. 다이어트를 하려면 운동이 필수지. 요즘 날씨에는 필라테스와 수영이 좋다는데 어디가 좋으려나.. 퇴근시간과 맞아야 하고, 끝나고 집에 갈 수 있는 적당한 거리..로 알아보면서 며칠이 흐른다.

자! 이제 운동을 하기로 했으니 요가복, 수영복, 운동화.. 또또 뭐가 있지? 이왕 시작하는 거 제대로 해야 하니까.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어. 불끈

다이어트는 식단이 90%라는데 먹는 것도 중요하니까 달걀과 닭가슴살, 변비 비켜~ 사과도 겟겟.

이제 모든 게 완벽해. 내일부터 운동하는 날이니까 내일부터 난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그렇다면 오늘이 최후의 만찬이겠다. 이제 어쩌면 영원히 못 먹을지도 모르는 나의 최애 음식을 차근차근 먹어보자. 냠냠 냠냠. 아 배부르고 행복하다.


내일부터 정말 다이어트하는 거야. 다음날부터 꽤 열심히 한다. 식단 조절도 하고, 운동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음악에 심취하며 걷고 걷는다. 한번 하면 난 제대로 한다. 모든 게 완벽하다. 벌써 가녀린 여으인녜가 된 기분이다.

음악에만 심취하면 되는데 코끝에 음식 냄새에도 심취한다. 어느새 나의 손에는 치킨 봉지가 쥐어져 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전 모르는 일입니다.)


이렇게 된 거.. 어차피 오늘은 망했다. 내일부터 운동 끝나고 집에 올 때만 조심하면 완벽할 거다.

오늘까지만 먹고 내일부터 다시 시작한다!! 말리지 마라!! 놓아라!



그 내일은 여전히 몇 년이 흘러도 오지 않았다....

도대체 그 완벽함은 누구의 기준이고 누가 시킨 걸까? 사실 나는 완벽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아닌데 완벽을 쫓다가 망해본 적이 너무나 많다.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너무나 초라했고, 그냥 적당히 큰 기대 없이 한 일에는 결과가 좋을 때가 꽤 많았다. 그냥 라면 하나 먹었다고 완벽한 나의 다이어트 계획이 더럽혀졌다는 뚱 논리였다. 이왕 먹은 거 더 먹겠다는 마음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핑계로 덮어버린 것일 뿐이다.



사실 이런 일이 어디 다이어트뿐이겠는가..

영어공부가 그랬고, 봉사활동이 그랬고... 효도가 그랬다. 결혼하고 나서 시댁에 신경 쓰느라 나의 부모님을 챙기지 못했다. 시부모님 생신은 집에서 한 상 차려 장금이 코스프레도 해봤지만 나의 부모님께는 전화 한 통과 용돈 정도 보내드리고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시큰한 일이 있었다. 시어머니와 엄마 생신이 일주일 차인데 어머님과는 생신날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단 둘이 식사도 하고 백화점에서 선물도 사드렸다. 어머님이 참 행복해하셨는데 왜 우리 엄마한테는 그러지 못했을까.... 엄마도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나 같은 딸은 키워야 소용없다) 무뚝뚝한 딸이 그래도 시댁에 잘하려고 노력이라도 해서 다행이라고 하시는데 그 말이 나를 더 괘씸하게 만들었다. 편찮으신 아버지를 보니 당장 더 연락드리고 얼굴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잘되면, 준비되면, 여유가 되면.... 그때 뭔가를 하려고 하지만 그날은 언제 올지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씩 적당히만 해도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을 지금에야 알아서 다행이다.


그래도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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