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쟌 Oct 06. 2020

관심이 간섭으로 느껴지는 순간

적당한 관심만 받을게요

적당한 관심이 과할 때는 간섭으로 변질이 된다.

좋은 마음으로 할지라도 받는 사람이 준비가 안됐다면 간섭이 된다. 뭐든지 적당한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상대와의 속도를 적절히 맞추면서 관계를 유지해야 프로 간섭러가 되지 않는다.



아이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아이는 왜 낳지 않냐는 것은 간섭이고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는 사람에게 구체적인 가족계획을 묻는 것도 간섭이다.

내가 아이를 낳기 전에 나이가 있다 보니 주변에서 결혼을 하자마자 아이 계획을 묻곤 했다. 그때는 정말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관심 정도라고 느꼈다. 그런데 생각처럼 아이는 바로 생기지 않았고 그사이에 같은 질문은 간섭으로 느껴지게 됐다. 반갑지 않은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한 지 꽤 된 사람들에게 건 누구에게 건 그들의 가족계획은 묻지 않는다. 그건 아이가 생겨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갖고 정말 조용히 소리소문없이 낳았다. 나의 기쁨이 누군가에게는 더 큰 슬픔이 되기도 하니까.



남편과 나는 관심과 간섭에 대한 생각 차이가 컸다.

나의 부모님의 관심이 지나치다고 느낄 때는 바로 말씀을 드리는 편이다. 예를 들어 나에게 물어봐도 될 일을 남편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딸에게는 관심으로 느껴져도 사위에겐 간섭 일수 있다. 부모님이 남편에게 연락하는 것도 되도록 자제를 부탁드린다. 그런 남편은 나의 기준에서는 조금 과하다고 느낄 때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전화가 올 때마다 항상 모유수유에 관해 물으셨는데 내가 열심히 수유할 때는 그저 아이에 대한 관심처럼 느껴졌지만 유축 양이 줄고 단유를 하는 시기에는 간섭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매번 물어보시는 것도 , 아이가 어느 정도의 양을 먹는지도 궁금해하셨다. 아이에게 단유로 인한 죄책감 때문인지 더욱 위축이 되곤 했지만 남편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궁금할 수도 있지 않냐는 것이다. 남편은 우리 부모님께 이런 비슷한 전화도 받아본 적이 없고 받아도 나처럼 예민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예민함은 성향도 한몫 했다. 나는 시험이나 뭔가 중대한 결정을 하기 전은 물론이고 하고 나서도 바로 공개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못 믿어서 인지 결정하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얘기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준비하고 있는 시험을 친구들에게 들킨 적이 있었는데 떨어진 친구들은 이렇게 하면 떨어지는 노하우를 전수해주었고, 붙은 친구들은 붙으려면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당장 집으로 사라지길 권했다. 다들 나의 시험 준비에 신이 났더랬다.....




상대의 상황에 맞게 질문을 골라야 하고 관심인지 간섭인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궁금하지만 물어볼까, 말까 하는것은 대부분 상대가 간섭으로 느낀다는 것을.



가까운 친척동생이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취직을 못하고 알바를 하고 있었다. 모든 가족들이 나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라고 했지만 난 묻지 않았다. 그들 모두 간섭이라는 것을 알지만 모르는 척 내가 물어봐 주길 바란 것이다. 내가 아무리 편안한 상황을 만들어서 묻는다 한들 간섭이 관심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답답하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다. 누군가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는데 익지 않은 밤을 가시에 찔려가며 딸 이유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잘 익은 밤처럼 자연스럽게 활짝 열린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면 되는 것이다.


 


내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가까운 친구 자윤이 생각이 문득 날 때가 많았다. 시부모님이 종교를 강요해서 많이 힘들어했을 때 어느 정도 힘든지 그땐 알 수 없었다. 무교에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관심도 없는 자윤에게 교회를 다니는 게 무척이나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종교가 내 안에 믿음이 있어야 믿게 되는 건데 교회만 다닌다고 없던 믿음이 생길 리 없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는 손주들을 데리고 교회를 가셨기 때문에 자윤이는 참지 못했다. 그간 유별난 손주 사랑에 적잖이 힘들어서 병원까지 다녔으니 마음고생은 내가 아는 것보다 더 컸을 것이다. 내 기억에도 아이들 돌잔치 때 목사님께서 진행을 하셨는데 그렇게 차분하고 경건한 잔치는 처음이었다. 단지 그 분위기가 문제가 아니라 자윤은 원치 않는 관심이 힘들었던 것이다.



육아는 주양육자에게 맡기고 적당한 관심만 주셔도 아이들은 무탈 없이 자란다. 보통 내 자식의 사랑과 관심이 손주한테 까지 이어지기도 하는데 딸이든, 아들이든 성년이 되기 전까지는 부모님의 사랑이 관심이고 무엇보다도 필요하지만 그 이후는 간섭이다. 게다가 자식이 결혼까지 했다면 더더욱 적당한 관심으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살면서 뭔가를 이뤘을 때 끝인 줄 알았지만 그 뒤에는 누가 정해놓은지 모를 숙제들이 놓여있다. 고3 때는 대학만 가면 꽃길을 걷는 줄 알았다. 대학을 가니 진정한 승리자는 졸업 전 취업한 자들이었고 취업으로 끝이 아니었다.. 진급에.. 결혼에.. 출산에...



•너 어느 대학 갔니? (좋은 대학이요)

•어디에 취업했니?

(말해도 몰라요. 이 세상에 없거든요)

•여자(남자) 친구는 있니? (아직 안태어난것같아요)

•결혼은 왜 안 하고 그러고 있니?

(왜 결혼하고 그러고 계세요?)

•차는 있지?(있지, 유모차)

•아이는 왜 안 낳는지(왜... 낳아야 되는지)

•둘째, 셋째 안 낳는지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왜 묻는지..)



이제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게로 도돌이표가 된다.

나도 수없이 들어왔던 관심들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말 못 할 사정이라는 것이 있다. 나의 관심이 누군가에게는 그 말 못 할 걱정과 고민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저마다 가는 방향이 다르고 속도가 다를 뿐이지 스스로 선택한 방향으로 자신만의 속도로 가고 있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통념, 사회가 규정한 답과 맞지 않다고 틀린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취직도, 결혼도, 아이도, 내 집 마련도.. 적당한 때라는 것은 자신만이 결정할 일이고, 하든 안 하든 그 누구도 그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남들의 지나친 간섭에 쫓기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인지 그들이 원하는 것인지 길을 잃을 때가 많다. 어떤 길로 가든 곁에서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지켜봐 주는것이 가장 적당한 관심이다.


작가의 이전글 다이어트는 내일 해야 제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