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내려놓기 연습
나의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아주 먼 훗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간이라는 게 안 가는 것 같아도 특별히 한 것도 없이 쏜살 같이 가고, 나의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아주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시어머니, 장모님이 될 날이 올 수도 있겠구나..(자식들이 결혼을 해준다면...)
지금의 모든 시어머니들도 며느리 시절이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때의 며느리 시절을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라떼 is가 될 수밖에 없다.(요즘 것들은 안부 연락을 시켜야 하더라..ㅉㅉ) 며느리 시절 때는 힘들었던 부분은 조심하고 감사했던 일들은 기억했다가 꼭 나의 며느리에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와 시대가 다르고 생각도 너무 다르기 때문에 나의 감정과 그들의 감정이 같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서 갈등도 생기고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기도 힘들어진다.
내가 가까이에서 지켜본 나의 시어머니는 아들 사랑이 남다르셨고 엄마를 잘 따르는 아들을 언제나 자랑스러워하셨다. 남편과 아직 탯줄이 연결된 것 같다는 어머니는 아들이 아직 품 안에 자식 같아, 보면 마음 아프고 미안한 게 많다고 하신다. 나는 일찍이 부모님의 품을 떠나 완전한 독립을 한 상태라 왠지 모르게 그 마음이 버거울 것만 같았다.
시부모님을 처음 뵙는 자리에서 시아버지는 결혼하면 집에도 자주 오지 말고 니들끼리 알아서 살라고 하셨다. 세상 이런 시아버지가 어디 있담???
우리가 자식을 낳으면 절대 키워줄 수 없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자식 다 키워놓고 쉬어야 하는데 또 자식의 자식을 키우다가는 골병이 든다는 아주 지당하신 말씀이셨다.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버님은 사랑이 넘치는 시어머니를 옆에서 부담스럽지 않도록 늘 컨트롤해주셨다.
그랬던 시아버지도 손주가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변하셨다. 브레이크 없는 두 분의 관심과 사랑을 나의 소박한 그릇에 담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이전에 아버님의 말씀과 다르게 어머니는 아이를 맡기길 바라셨다. 아이도 너무 어리기도 했거니와 내가 힘들어서 맡기기엔 나보다 어머니께서 더 쇠약하셨다. 게다가 나는 아이를 맡기고 돌아가야 할 직장도 없었다....(이거 뭐지? 뭔가 다행이면서 슬픈데?..)
어머니는 고기를 잡으면 직접 구워서 가시까지 발라 입에 넣어 주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남편을 많이 걱정하셨고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셨다. 힘들지만 손주도 맡아주고 싶으셨던 마음은 알지만 나는 내 아이에게 물고기의 가시까지 발라주고 싶지는 않았다. 고기는 잡는 방법만 알려줘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더 많은 경험을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애들은 흙도 퍼먹고, 잔디에도 딩굴딩굴하면.. 위험해요....) 수없이 넘어져야 걸을 수 있는데 마음이 아파 견디지 못하면 다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스스로 뛰어노는 기쁨은 맛보기 힘들지 않을까...
이전에 브런치에서 시댁에서 보내는 반찬에 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내용은 시댁에서 자식들을 생각해서 보내는 반찬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댓글을 보니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부모님 입장에서는 아주 배가 불렀다는 댓글도 있었다. 그중에 기억 남았던 글이 자식 키워서 똑같이 당해 보라는 댓글이었다. 자식들을 생각하는 마음에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불편해한다는 것이 부모의 입장에서는 서글픈 일이기 때문에 '당한다'는 표현이 쓰인 것 같다.
나도 시댁뿐만 아니라 친정에서도 해주시는 반찬을 몇 번 받아봤다. 힘들게 자식들 먹일 생각으로 정성스럽게 해 주신 것을 알기에 그 마음을 아는 자식들은 어떻게든 버리지 않고 끝까지 먹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맛있게 먹었으면 서로에게 해피엔딩이지만 친정과 시댁의 반찬이 겹칠 때나, 먹어도 줄지 않는 개미지옥 반찬은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먹어도 버리는 일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친정, 시댁 할 것 없이 죄책감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그런 이유들로 나는 친정에서 반찬을 일절 받지 않고 가끔 집에 오시면 먹을 만큼만 해달라고 한다. 시댁 반찬도 남편이 적당히 먹을 만큼만 가져오고 있다. 만드는 김에 조금 더 넉넉히 해서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힘들게 시간 내서 고생해가며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은 조금 내려놓으셔도 된다. 적당히 조금만 표현해주셔도 정성을 모르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단지 감사한 마음과 부담스러운 마음들 중 어떤 마음을 더 많이 표현하느냐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요즘 며느리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은 부담스럽거나 불편한 표현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감사하고 좋은 부분만 드러내면 더 자주, 더 많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우리 할머니 댁처럼 배불러도 계속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시어머니도 시할머니께서 산후조리를 해주셨는데 불편한 마음보다 감사함 마음이 컸다고 한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보다 불편한 마음이 컸던 나에게 버릇없고 예의가 없다고 하신 적이 있다. 어른이 보살펴주면 감사해야지 그걸 왜 부담스럽고 불편해하냐는 이야기다. 나는 어머님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지만 어머님은 내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적당히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요즘 며느리들'의 문제인지 나의 문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 그때그때 드는 모든 감정들을 다 내뱉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힘들고 꼭 아셔야 하는 부분만 말씀드려도 아직은 이해받기가 힘들다. 내가 아직 부모가 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부모님의 그 마음이 어느 정도로 애틋하고 놓기가 힘든지는 감히 가늠해 볼 수가 없다. 다만 내가 놓지 못할수록 내가 힘들고 나의 자식은 더욱 힘들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를 낳을 때쯤에는 더욱 시대가 많이 변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때의 며느리들에게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쌓이고 나도 모르게 그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꼰대 시어머니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하는 시대만큼 나도 많이 변해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 부모님처럼 그렇게 헌신적인 부모가 될 자신이 없다. 내가 만든 반찬에 자식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도 해줘야 당하는 것인데 나는 당해볼 기회가 만들어질 것 같지가 않다. 자식들이 어느 정도 자립을 하게 되면 얼씨구나 하고 못다 한 공부와 여행을 맘껏 하기 위해 잠시 나를 잊고 엄마로 살고 있는 중이다.
내가 당연히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선택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는 결혼도, 아이를 낳는 것도 인생의 필수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위치가 아니어도 언젠가내 곁을 떠날 이들을 위해 내려놓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아이는 엄마가 필요한 시간이 실제로 길지가 않다. 안겨있을 것만 같던 아이도 어느새 자기 스스로 걷고 밥도 혼자 잘 먹는다. 엄마랑 놀지 않아도 세상에 즐거운 건 너무 많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긴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건데 그런 순간들마다 서운해하기에는 남은 내 인생에게 어쩐지 미안하다.
빈 둥지 증후군 : 자녀가 대학교에 진학하거나 취직, 결혼과 같은 이유로 독립하게 되었을 때 부모가 느끼는 상실감과 외로움
(자료출처:네이버)
학교에서 배운 수많은 심리학 내용 중에서 졸업하고도 잊히지 않는 것이 바로 빈 둥지 증후군이다. 그때 부모가 되면 수많은 노력과 희생이 어느 정도인지 알면서 비우고 내려놓는 연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제 자식들은 그들의 인생이 펼쳐졌다. 더 이상 물고기의 가시를 발라서 입에 넣어주지 않아도 된다.
마음이야 나의 자식도, 손주도 내가 보살피고 곁에서 챙겨주어야 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내 자식들은 내가 챙겨주지 않아도 알아서 즐겁게 산다. (슬프지만 나도 그런 자식 중 하나다) 그들의 시대에 맞는 그들의 생활 방식에 맞게 잘 적응해 가며 살 것이다.
사실 이 글은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다. 누구에게도 조언할 수 있는 주제가 되지 못하기에 타인에게 조언하듯이 나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식의 대한 이해와 그들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존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미래의 나에게 지금의 바람을 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