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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쟌 Sep 29. 2020

남편의 중재능력 수치

명절,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곧 다가오는 추석.  명절과 제사에 왜 이혼율이 증가하는지는 엄마와 며느리는 아마 이해를 할 지도

모르겠다.

이유를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명절 전까지 곪아있던 것들이 명절의 시작과 동시에 터졌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도 시골 다녀오는 길에 차 안에서 박 터지게 싸우셨다. 그럴 때마다 우리 남매는 눈치 없이  휴게소에 가자고 졸랐는데 이것저것 먹고 나면 또 별일 없던 것처럼 고요했다.



나도 결혼을 해서 명절에 친정이 아닌 시댁을  가게 되었다. 시댁이 어렵고 불편한 이유야 사람마다 느끼는 상황과 감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남편 때문이었다. 나의 남편은 시댁만 가면 나의 속을 불편하게 했다. 도대체 나를 위한 것인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지만 나의 긴장을 풀어주려던 게 나에게는 안 하느니만 못했다.



나의 남편은 정말 착하고 순수한데 눈치마저 순수했던 시절이었다.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명절에 조금 긴장이 됐다. 시부모님 뿐만 아니라 친척 어른들도 뵙는 자리이고, 나는 아직까지 조신한 며느리이고 싶었다. 남편은 시댁에 가기 전부터 신이 났는지 시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 이제 곧 출발할 거야. 음식 다해놨지?? 청희 부려먹지 말고 엄마가 음식 미리 해놔 쿄쿆"


'아........... 뭐라는 거니? 왜 저래.... 왜 저래 진짜...'

(입단속을 단단히 시켜야겠다. 그 마음 잘 알겠으니까 제발 나대지 말아요)

 

그 정도 얘기했으니 알아먹은 줄 알았다. 시댁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온 가족이 모여 전을 부치는 중이었다. 남편도 옆에서 거들었는데 양이 많긴 했다.


"아~엄마 미리 해놓으라니까 ~~"

(눈빛으로 그에게 전달했다 -> 님아 그 입을 닫아주오)




(아오케오케->눈빛 접수)


"괜히 내가 이런 말 했다고 또 청희한테 뭐라 하지 말고 크크 시집살이시키지 마~"


남편은 아내를 위한 미션을 완수한 듯 의기양양했다. 그때 나를 뺀 모두가 즐겁게 웃었다.

아 정말 너무 고마워서 남편을 조용히 불렀다.


"지금부터 입조심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어.."

 

지금은 웃고 지나갈 일이었지만 그때는 정말 그런 거 하나하나가 나를 더욱더 난처하게 했다.


'이젠 진짜 정신 차렸겠지..'


명절 때는 대부분 1박 2일이었는데 차례를 지내고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남편은 낮잠을 자곤 했다. 난 친척들 사이에서 일손을 돕고 적당히 수다에 참여했는데 아무래도 점점 할 말이 없어질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아무리 기다려도 깨지 않았다. 딱히 할 것도 없는 그 시간에 다들 뿔뿔이 흩어지는데 왜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지?.. 나도 집에서 자고 싶다. 언제 갈 거냐고 물어보면 진지하게 언제 가야 하는지 고민을 한다..


' 하... 또 이럴 땐 입이 무거우신 양반일세...'



시댁에서 처음 밥을 먹을 때도 남편은 나에게 잊지 못할 폭탄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매운걸 잘 못 먹어서 안 먹는 것도 많지만 그렇다고 모든 빨간 음식을 못 먹는 건 아니다. 그냥 적당히 상황 봐서 먹는다. 그때 어머니께서 나에게 양념게장을 권하셨는데 솔직히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맛을 보고는 적당히 리액션을 치던 차에


"엄마 청희 매운 거 못 먹어~ 알아서 먹게 내버려둬~"

여기까진 그래 굳이 너의 도움이 필요하진 않았는데 고맙다. 그런데 남편이 이어 말한다.


"청희야 억지로 먹지 마 , 너 이거 싫어하잖아 찡긋"


'와오 씨.. 깜짝이야... 왜 저러는 거냐..'


어머니께서 억지로 먹지 말라는데 먹던 게장은 먹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정성껏 차려주신 음식 맛도 못 보게 만드는 통에 나의 젓가락이 갈길을 잃었다. 순간 매워서였는지 당황해서였는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도 적당히 넘어갈 스킬이 없어서 그땐 그냥 마취총만 있었다면... 훅훅



5년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 남편은 적당한 눈치를 장착하고 끼고 빠질 타이밍을 잘 안다. 사실 그냥 빠져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다. 웬만하면 남편이 다 빠져주길 바라지만 명절 때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은 말리지 않는다. 신혼 때는 남편이 도와줄 때마다 시아버지께서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옆에 다가오면 저리 가라고 속삭이곤 했다.(사실 꺼지라고 했던 거 같다)

 


지금은 아버님이 안 좋아하셔도 남편을 말리지 않는다. 차례를 지내는 남편의 조상님을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그분들과 함께한 손자가 거드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평소 집안일도 내가 도맡아 하기 때문에 그날만큼은 실컷 시킨다. 나의 친정은

남자들이 아침부터 분주해서인지 같이 하는 것이 아닌 돕는다는 표현도 나는 익숙지 않다.



신혼때 시댁과의 사이에서 적당한 거절을 하기 힘들때 남편의 중간역할이 절실했던적이 있다. 하지만 남편이 내가 하기 어려운 역할을 해주어도 결국에는 우리가 혹은 내가 한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큰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명절만큼은 눈치껏 아내에게 적당한 관심을 준다면 명절 전날 양을 천마리나 세면서 불면증에 시달리지는 않을 것 같다.


"밥먹고 우리도 슬슬 집에가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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