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내가 아이를 낳을 때쯤에 이미 알아보고 예약까지 한 조리원은 병원과 연계되어있는 곳도 아니었고 첫인상이 굉장히 좋지 않았다. 따닥따닥 붙어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왠지 짠했고 우리를 안내하는 직원분의 짙은 화장품 냄새가 아무래도 좋은 첫인상이 되지 못한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예약했던 조리원에서의 안 좋은 후기가 많이 올라왔고, 하필 그 시기에 조리원에 관련된 여러 사건사고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처음부터 병원과 연계된 조리원을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예약한 조리원을 취소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까..'
우리 친정엄마는 지방에 계시지만 젊은 시절 제대로 된 산후조리도 못하셨기 때문에 나의 조리만큼은 엄마가 제대로 해주겠다고 늘 말씀하셨다.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비워두셨다는데 남편, 엄마, 나.. 우 리셋이 며칠간 함께할 생각을 하니 조금 걱정이 됐다.
그리고 한 달은.. 너무 길다. 엄마랑 나는 붙어 있으면 편하다 보니 티격태격한다. 그 모습을 남편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것도 있지만 남편이 엄마와 나 사이에서 불편해할 것 같았다.(이게 무슨 쓸데없는 오지랖인지..) 장모님과 긴 시간을 같이 보내본 적도 물론 없기 때문에 나는 그 어색함을 중간에서 슬기롭게 헤져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사이 시어머니께서 가까이 있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도록 오가면서 봐주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나만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남편도 어머니도 문제없이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때의 나는 수시로 오는 전화에 바로 거절하기가 어려웠고 어머니랑은 평소에 시간을 많이 보냈으니까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때 나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스스로 넘었다.
막상 겪어보니 이건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툰데 온갖 관심이 집중되는 대략 그런 느낌이다. 아이를 케어하는 모든 순간을 지켜보시니 내 몸도 말이 아니지만 왠지 모를 부담감이 하루하루 커졌다. 나는 단지 아이를 위해, 남편을 위해 했던 선택이었지만 나 자신은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내 몸이 이렇게 까지 아플지도 몰랐고 남편이 눈치를 저세상에 두고 왔다는 건 생각하지 못한 변수였다.(우리 엄만 안 그런다고 떠들어 댔을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내가 집에 와서 밤새 아이를 케어하는 동안 남편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기도 했지만 본인 대신 어머니가 모두 해주셨다. 그저 이 집에 아내, 엄마, 아기가 있어 신이 났다.(웃어??.... 웃겨?..)
아이가 울면 밖에서 자고 있는 어머니와 남편이 깰까 몸을 후닥닥 움직여가며 젖을 물리고, 분유를 탈 때 거실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사실 침대가 좁기도 하고 둘이 자다가 이 작은 꼬물이가 위험할까 봐 내가 돌보겠다고 했다. 그때까진 그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잘 자는 남편 모습에 애는 나 혼자 키우는 느낌이 들면서 서운했던 것 같다.(호르몬의 노예가 시작된 것이다...) 어머니가 안 계셨더라면 붙잡고 쥐잡이라도 했을 텐데..
남편은 자신의 역할을 잘 모르고 있었고, 그 모든 걸 어머니께서 해주려고 하시는 게 걱정스러웠다. 집안일도 고생스럽게 해 주시고 정성스러운 음식도 감사했지만 내 몸이 회복될수록 쉬기는 어려웠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불편함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조리원도, 친정엄마도 함께 있어도 어느 정도 불편함이 있을 수 있기에 남들이 다 말리던 시어머니와의 조리를 패기 있게 택한 것이다. 다만, 내가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기껏 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기간은 어머니와 조금 달랐다.
우리는 애초에 조리 기간에 대해 상의하지 않았다. 적당한 기간이 나와 남편은 조리원을 예약했던 기간이었고 어머니는 그 이상이었다. 그 기간에 대한 대화 과정에서 조리원을 예약한 기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어머니께서는 단호함을 보이셨다. 쓸데없는 소리며, 아직 더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의 쌈 싸 먹는 눈치로 정말 나의 회복을 걱정하신 줄 알고 내가 얼마나 괜찮고 저희끼리 왜 해보고 싶은지 설명을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매우 불쾌해하셨고 까불지 말라고 하셨다. 더 얘기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어머니께서 우리를 얼마만큼 생각해서 오신지 알고 있다. 그 마음을 알아서 나도 거절하기 힘들었고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들을 챙겨주고 싶으셨던 어머님 마음도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마음이 입 밖으로 내뱉어지는 순간, 나에게 있어서 엄청난 변화가 시작됐다.
어머님은 나를 챙기러 온 것이 아니라 아들을 챙기려고 온 것이고, 내 아들을 챙기겠다고 하셨다. 정말 내가 너무 걱정돼서 하신 말씀일 수 있다. 그래서 곁에서 더 챙겨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애낳은지 얼마 되지 않은 며느리에게 꼭 그렇게 표현을 해야 하는지 너무 마음이 쓰렸다. 알고 있지만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어머니와 함께 조리를 하면 좋아하실 줄만 알았는데 기간 때문에 이렇게 서로 마음이 상할 줄은 몰랐다. 내가 아는 어머니는 모르면 몰랐지 힘든 부분을 솔직히 말씀드리면 들어 주실거라 생각해 왔다.
며칠 후, 이런저런 대화에 서먹해진 어머니와 나 사이에서 힘들었던 남편이 충분히 조리가 되었다고 얘기했고 다음날 어머님은 나를 보고도 모른척 하신다.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나는 어머니 팔짱을 끼고 이야기좀 하실수 있냐고 여쭤봤다. 어머님은 차갑게 팔을 뿌리치셨다. 내가 정말 감사하지만 힘든 얘기를 했을 때도 어머님은 듣지 않으셨다. 아들의 말 한마디에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어머니를 보니, 왠지 모르게 내가 이방인이 된 느낌이었다. 나는 딸이 아닌 며느리라는 걸 알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겪어보니 왠지 모를 공허함이 밀려왔다.
어머니도 불편해하는 나에게 많이 서운하셨을 것이다. 도와주려고 해도 자기들이 해보겠다는 것도 씁쓸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서로 잘 안다고 생각했고,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보이지 않는 각자의 선을 넘은 결과였다. 어쩌면 천천히 알아도 좋을 것들을 너무 빨리 알아 버린 것 같다.
산후조리 이후로 나와 어머니는 서로가 얼마나 다르고 맞지 않는지 알아가면서 우리의 거리는 한없이 멀어져만 가는 시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