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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쟌 Jan 24. 2021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간 걸까?

영원할 것만 같던 관계에 대하여


지금 휴대폰을 들고 아무렇지 않게 "뭐하냐"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발신번호에 내 이름이 떴을 때 반갑게 전화를 받아줄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문득 궁금했다. 나는 연애 때도 연락 문제로 수없이 죄인이 된 적이 많았고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귀찮음이 커서 인 줄 알고 원래 나는 그렇게 태어나서 고치기 힘든 부분이란 걸 주장해왔지만 세상에 원래라는 게 어디 있을까. 특히나 이런 욕먹는 성향은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인데 나는 그렇게 합리화하며 고쳐볼 생각조차 없었다.(원래 그래..)



다행히도 내 주변 사람들은 언제나 나보다 텐션이 높았고 먼저 다가옴에 있어서 주저 없었다. 그래서 연락이 뜸한 나에게 서운함보다는 시원한 욕 바가지를 쏟아붓고 그러려니 넘어갈 때가 많았다. 조금 안 좋게 풀렸다면 아싸 중에 아싸였을 텐데 운 좋게 십 대도, 이십 대에도 사람들 사이에서 뒤섞여 지냈었다. 언제든 만나고 연락을 하면서 인간관계가 나에게 주는 이로움이 너무나 컸다. 그리고 그때는 사람들과 만나서 보내는 시간이 참으로 즐거웠고 신이 났었다. 언제나 나를 찾는 그들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그렇게 이십 대 후반까지 나의 핸드폰은 읽지 않은 메시지가 쌓여갔고, 약속도 달력을 보면서 비어있는 몇 안 되는 날로 정해야 했다. 나는 핵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인싸 쪽에 가까운 줄 알았다. 그런데 서른에 접어선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도 귀찮고 꺼려지는 관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 가기 싫은데 안 가면 서운해할 것 같고, 오늘은 집에 쉬고 싶은데 안 만나면 마음이 상할 것 같고.. 이런 이유로 거절하지 못하는 약속 횟수가 늘었다. 그렇다 보니 내키지 않는 만남 뒤에 따라오는 공허함이 커졌고 매번 즐겁지만은 않았다.



서른이 훌쩍 넘어가니 결혼 한 친구들과 출산을 한 친구들이 늘어났다. 나는 언제나 그들의 새롭게 시작되는 삶에 축복을 했지만 그들에게는 결혼을 하지 않은, 할마음도 없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함께 있어도 따로 인 느낌과 뒤섞이지 못하는 물과 기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많았다. 아마도 이런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게 귀찮고 집에서 나가가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았어도 미혼 친구들과 만날 땐 남편이나, 아이 얘긴 꺼내지 않는다.(아기 사진 보여주고 싶지만.. 참겠어..)



귀찮아도 꾸역꾸역 나가야만 유지되는  관계였는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을 처음 알게 해 준 친구는 꽤 친한 사이였다. 우리는 전 직장에서 만나 거의 십 년 가까이 함께 했던 사이다. 내가 퇴사를 해도 줄곧 친했고, 연애, 결혼 준비까지 함께 했던 친구다. 내가 결혼을 하고 몇 달 있다가 그 친구는 지방에서 결혼을 했다. 내 결혼식에서 그 친구는 생각보다 많은 축의금 내서 나는 받은 만큼을 내는 것도 미리 모아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작은 손편지와 함께 지방까지 남편과 함께 가서 누구보다도 축하를 해주고 돌아왔었다. 그날 이후 그 친구는 와줘서 고맙다든가, 신혼여행지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없었다. 사실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남편이 수시로 그들의 이야기를 했다.


"소연이 신혼여행 오늘 가는 건가? 잘 도착했대?"


남편들과도 다 함께 자주 봤기 때문에 가볍게 물어본 그 이야기에 나는 왠지 모를 서운함이 밀려왔다. 첫날에는 정신이 없어서 아마 연락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둘째 날에도.. 그다음 날도 연락은 없었지만 SNS는 수시로 사진이 올라왔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나 마음이 쓰이는지 나는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결혼식 당일이 내가 준비한 자격증 시험 마무리 특강이 있었는데 일 년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는 강의라서 고민을 했었다.


'혹시 못 갈까 봐 이 내용을 이야기했는데 그게 서운했나??...'


가지 못한 특강 때문에 일주일 동안 그 자료를 필기하느라 괜히 결혼식 간 게 후회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가도 모른척할 결혼식은 뭣하러 남편까지 끌고 가서 하루를 버렸는지 나의 서운함이 쌓이는 동안에도 친구는 연락이 없었다. 나에게는 그날이 정말 중요한 하루였고 무언가를 포기하고 갔다는 생각에 유치하게도 와줘서 고맙다는 말이 기어코 듣고 싶었나 보다. 그래야만 그 하루에 따른 시간들이 보상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도 가볍게 잘 도착했냐는 연락조차 하지 않고 그 친구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렇게 한동안 서로 연락이 없다가 반년이 흘러서 같이 보던 친구들과 만났는데 그때 집으로 돌아오면서 앞으로 다시 보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늘 헤어질 때 또 언제 만날지 정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는데 그날은 그 만남이 불편하면서도 지루했다. 서로가 묵힌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어서였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십 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다퉈본 적이 없다. 그래서 풀고 화해의 과정을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속상한 일이 있었도, 기쁜 일이 있어도 나에게 가장 먼저 알리던 사이였는데 우리는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되어버렸다. 한동안 이유가 뭘까 궁금하기도 하고, 내 탓을 했지만 서로가 그 정도만큼의 사이였다는 걸 인정하고 잊어버렸다.



물론  친구의 입장에서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들어 볼 수 있는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다시 예전처럼 돈독하다고 생각됐던 사이가 되긴 아마 어려울 것이다. 나름 가까운 지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모르는 사이가 되고 보니 그 많던 사람들과 멀어진 이유들이 너무나 하찮아서 입에 담기도 조금 부끄럽다. 내가 돌잔치나 결혼식에 못 갔을 때 서서히 연락이 뜸해진적도 있다. 결혼식은 아마 사정이 있었을 거고, 돌잔치는... 솔직히 둘째까지는 아마 사정이 없어도 안 갔을 거다. 아이를 낳고 보니 우리 애 생일에 잔치까지 하는 게 나는 살짝 낯간지러웠다. 내 생일조차도 조용히 지나가고 싶어 안달인데 아이 생일은 요란하더라도 가족끼리 요란하고 싶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보니 지인들의 첫아이 돌잔치만 가게 됐다. 나의 그 기준에 많이 서운했는지 조금씩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을 탓할게 아니라 내가 그냥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고 생각되니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이 씁쓸하기도 하고 허무했다.



한동안 원하든 원치 않든 사소한 이유로 멀어진 관계에 쏟아부었던 시간들을 곱씹어 보았다. 그때 읽었던 책 한 권에서 나는 인간관계라는 것이 나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가벼울 수 있음에 작은 위로를 받았다.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김영하 작가의 <말하다> 중에서


영원할 것 같고 늙어서 꽃놀이도 다니면서 남편 욕도 할 것 같던 친구들과도 멀어지지 않기 위서 내 감정보다 상대의 감정을 더 신경 썼지만 결국에는 별일 아닌 일들로 멀어지게 된다. 이미 멀어진 친구들과 보낸 그 시간들이 후회가 되거나 부질없다는 생각은 아니다. 다만 지금에야 와서 알게 된 게 하나 있다면 친구들에 대한,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기대는 거품같은 희망 중 하나라는 것이다. 항상 다를 거라는 작은 기대는 언제나 나에게 큰 돌멩이로 날아들곤 한다. 그 답이 없는 기대가 늘 문제다.



친했던 친구들 중에서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어느 적당한 거리에서 어떠한 기대 없이 늘 곁을 지켜주었던 것 같다. 그들이 나에게, 나도 그들에게 어떠한 것도 바라는 게 없었다. 평생 함께할 것처럼 매일 같이 연락을 주고받고 수다를 떨던 이들에게 우리는 서로 왜 그리 많은 기대를 하고 바랬는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멀어져 갔고 오히려 멀어진 거리가 한편으로는 편해지기도 했다. 그때서야 알았다. 우리는 참 맞지 않았었구나.. 서로가 바라는 것을 맞춰 주느라 정작 자신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은 친구들이 정말 많다. 나는 초, 중, 고, 대학교, 직장에서 친한 사람들이 한둘 정도만 있다 보니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지만 남편은 발가락과 내 손가락까지 빌려야 꼽을 수 있다. 처음에는 남편이 정말 핵 인싸 중에 초핵인싸인 줄 알았는데 남편은 알고 보면 주변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고 그에 따른 실망도 당연히 없다. 남편이 친구를 험담하는 것을 나는 들어 본 적이 없고, 내가 주변 사람에 대한 속상한 이야기를 하면 대수롭지 않게 깊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게 서운하고 공감능력이 똥이라는 생각도 했는데 어쩌면 지금 내가 남편에게 가장 부러운 능력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 남편은 인간관계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어렵게 생각하지도 않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 하지만 그것을 이해 못하는 친구들이 없다. 친구들과 만남이 좋으면 만나는 거고, 아니면 그만이다. 나처럼 귀찮은데 안 가면 상대가 느끼는 감정까지 생각하면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지도 않는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 자신이 사라졌다가 내 시간이 생긴 적이 있었다. 친구와 함께 수다를 떨고 차 한잔을 마시고 싶었는데 조금 망설여졌다. 전화번호를 뒤적이면서 '지금 일하겠지?' '너무 멀리 살아서 안 되겠지..' 고민을 하다가 그냥 전화를 걸었다.


" 오늘 휴가가 생겼다. 함께 할 수 있겠는가??"


친구는 한 시간 거리의 먼 거리에서 바로 달려와 주었고 우리는 잠시나마 중학교 때로 돌아갔다. 내가 아이를 키우느라, 여러 사정으로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못 봤던 친구를 보니 잔잔하면서 편안했다. 내 감정이 무엇을 바라는지 왜 그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던 걸까?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을 헤아린다는 건 착각이었고 오히려 그 기분이나 상황을 맞춰준다는 피해의식에 따른 기대가 그 관계들을 망친 게 아닐까 싶다. 나도 곧 마흔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남은  소중한 사람들이 많진 않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잘 유지되고 있는 관계가 있음에 감사하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욕심보다는 끈끈하게 이어온 인연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올해는 먼저 그들의 안부를 물을 생각이다.


"뭐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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