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을 여름

by 묘일

우리, 이제는 변치 않는 사랑을 하기로 했잖아요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저 빛나는 달에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듯 우리도 그리하기로 약속했던 순간을 나는 기억해요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꽃이 피고 지는 억겁의 시간 속에서도 나는 당신만을 향한 마음으로 이 사랑을 장식하고 싶어요

나는 무더운 여름을 올곧이 견뎌내는 여느 꽃밭의 수련과도 같이 당신이 불러일으킬 살랑이는 바람을 기다리며 청순한 마음 하나로 이 기약 없는 기다림을 점점 키워 가요


이 맹목적인 사랑의 시작은 어디였을까요 어쩌면 나는 운명처럼 당신에게 빠져 버렸을지도 몰라요 당신이 보내는 눈짓 하나, 손짓 하나에 내 심장은 성난 파도처럼 요동치고 있어요 마치 금방 막 사랑의 맛을 알게 된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작은 일 하나에도 울고 웃고 울고 웃고


누군가 그랬어요 사랑은 레몬처럼 시큼하지만 자꾸 생각나는 알 수 없는 맛이라고


온몸으로 사랑임을 깨달은 순간 사랑이 아니게 되는 걸까요 금방이라도 녹을 듯한 뜨거운 열기에 나는 곧 터질 것만 같아요 새까만 열기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들은 당신이 얼마나 나에게 큰 존재인지 말해 주고 있어요


동이 채 트지 않은 새벽 싱그러운 잎에 몽글몽글 맺히는 이슬처럼 내 눈가에도 약간의 시람이 느껴져요 다 안다는 듯이 쿵쾅대는 나를 달래 줘요 괜한 기대감에 고개를 푹 숙이지만 당신의 무심하고도 다정한 손끝과 만나면 폭발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붉음을 감추지 못하고


당신의 이름 석 자를 부르려 마음을 먹으면 그 모양새 하나하나가 괜스레 나를 헤집고 온몸에 퍼지는 것만 같아요 나는 강한 정전기에 닿은 사람처럼 몸을 움찔거리며 내 마음의 크기를 실감하곤 해요

당신이 속삭이는 말들은 독과도 같아요 나를 자꾸만 옥죄어 와요 위험한 걸 알면서도 더 깊이 사랑하고 싶은 나는 얼마나 더 당신에게 얽매여야 할까요 나는 빠져나오지 못할 걸 알면서도 더 완벽히 당신을 알고 싶어요


작열하는 태양 아래 당신의 눈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정신이 아득해져요 누가 두 귀를 틀어막기라도 한 듯이, 비디오테이프를 느리게 되감은 듯이 온 세상이 조용히 그리고 느리게 움직여요 시끄러운 번화가의 소리마저 이제는 아득해지고 나와 당신만 남은 것처럼


당신이 나를 향해 입술을 달싹이는 순간 나는 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껴요 당신이 속삭인 말들을 담은 순간부터 꼭 거스를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영원은 없다지만 우리가 약속했던 보잘 것 없는 영원으로 나는 살아가요 당신의 숨결과 아름다운 몸짓에 서서히 녹아 들고 싶어요 나를 잊지 말아 줘요 서로가 얼마나 뼛속 깊숙이 박혀 있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지만 혹여나 내가 서서히 흐려져도 우리의 모습이 흐려져도 나는 당신의 가장 뜨거운 여름으로나마 남고 싶어요


우리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짙은 사랑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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