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외모와 멋진 스타일
결코 빠지지 않은 학벌, 정확하고 깔끔한 일처리
약간의 경상도 사투리는 매력 포인트
이 부장은 스스로를 의심 없이 이렇게 평가한다.
여자는 이십 년 넘게 살면서 이렇게 자존감이 높은 유형을 처음 봤다.
저 자존감의 근원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여자가 보기에 이 부장은
레고를 연상시키는 각진 턱의 소유자
'므~어(뭐)? 므~어(뭐)?'를 반복하여
여자에게 경상도 사투리가 뭔지 알게 한 장본인.
정확하고 깔끔한 일처리를 위해 직원을 닦달하는 조바심 많은 아저씨
딱, 그런 사람이다.
어느덧 오월드 디자인에서 일한 지 6개월이 넘었지만,
좀처럼 이 부장의 허세는 적응되지 않는다.
그나마 일이라도 늘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여자는 여전히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번 다급한 사람들은 크게 미안한 기색 없이 금요일 오후에 업무를 요청했고,
월요일 오전까지 처리를 부탁했다. 여자는 싫은 내색 없이 일을 처리해야 했으며
연휴는 물론 명절까지도 반납하고 일해야 했다.
몸은 여전히 지치고 힘들었지만, 기술이 느는 것이 느껴졌고, 가끔은 칭찬도 받았기에
여자는 고된 일상이 어느 정도 만족스럽다.
'이제.. 조금만 더 배우면, 신입 딱지는 뗄 수 있겠지?'
여자는 일에 흥미까지 생겼다.
그렇게 모든 것이 차근차근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어느 날 아침,
민주임이 보이지 않는다.
'지각 인가?'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민주임은 끝내 출근하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어도,
그다음 날이 되어도 민주임의 모습은커녕
연락조차 닿지 않았다.
'....!!'
민주임은 사라졌다.
여자의 머릿속이 하얘진다.
'아니.. 오월드 디자인을 6년씩이나 다녔다면서'
'이래도 되는 거야??'
'나랑 친한 거 아니었어?'
'와하... 나는.. 나는 어떡하라고..!! '
여자는 자신이 겪고 있는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배신과 실망, 걱정과 두려움 같은 온갖 어두컴컴한 감정들이 여자를 휘감았다.
적잖은 충격에 여자는 도무지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없었다.
며칠 후,
이 부장이 여자를 따로 부른다.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너~를 민주임처럼 키워야겠다!"
"내 출중한 노하우를 너에게 알려줄게!!"
"하아...."
차마 참아내지 못한 여자의 한숨 새어 나왔다.
아니, 이 사람은 대체 뭐지?
이 부장의 머릿속은 대체 어떤 구조란 말인가!
뻔뻔한 건지, 자존감이 높은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여자는 도무지 이 부장이 이해되지 않는다.
여자는 이 부장의 말에 대꾸 하진 않지만
여자는 이 부장과 꼭 같은 시니컬한 말투로 그에게 대답하고 싶었다.
"제발... 정신 좀 차려 이 아저씨야!"
얼떨결에 여자는 일의 중심에 있다.
셀계팀에 민주임과 여자 단둘밖에 없었으니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여자가 민주임의 몫을 포함한 모든 일을 해야 했다.
난리통에 부모를 잃은 심정이 이런 것일까..
내내 씩씩한 모습으로 강철 멘털을 자랑하던 여자였지만
민주임이 사라지자,
여자의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키움 따위가 이런 것인 줄 알았더라며 여자는 진작에 민주임의 뒤를 따라 도망쳤을 것이다.
업체는 업체대로
이 부장은 이 부장대로
본사는 본사대로
현장은 현장대로
모두가 여자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여자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바빠 죽겠는데
"내 사전에 못해요는 읎다.!"
라는 말을 해대며 일을 넙죽넙죽 받아오는 이 부장.
'귀신은 뭐하지? 저 사람 안 잡아가고..!'
민주임이 사라지자
여자의 에너지는 금세 바닥났다.
한 번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빈 페인트 통을 뻥~ 차고 나갔고(10분 만에 다시 들어왔다.)
한 번은 지하철 손잡이를 독식한 욕심쟁이로 낙인 되었으며(손잡이 하나로는 졸음을 지탱할 수 없었다.)
한 번은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3일 밤낮을 모니터에 앞에 앉아 도면 그렸다.(아무도 안 믿지만 사실)
여자는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손이 여자를 자꾸만 모니터 앞으로 여자를 끌어들이는 것만 같다.
"아휴.. 지겨워.." 하면서 해내고,
"아휴.. 힘들어.." 하면서 끝냈다.
끈기인지 오기인지 책임감인지 모를 것들이
여자를 자꾸만 책상으로 이끈다.
정말이지 여자는 이렇게 힘든 일을 해내는 자신이 징글징글하다.
안되는걸 굳이 해내는 의지
굳이 해내고 마는 오월드 디자인 사람들
대체 우리는 왜 이러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