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역할조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호현 Feb 28. 2023

워라밸 딜레마 삼각형

출산율 0.78 대한민국과 1.9 실리콘밸리

실리콘밸리는 미국에서 가장 바쁘고 일에 몰입되어 사는 곳 중 하나이다. 그런데 참 아이도 많이 낳는다. 실리콘밸리의 여성 1인당 합계 출산율은 1.9이다. 우리나라 0.78에 비교하면 세배에 가까운 높은 숫자이지만 미국에서는 가장 낮다고 걱정이 많다.


https://jointventure.org/news-and-media/news-releases/1657-institute-report-silicon-valley-birthrate-lowest-in-30-years-women-having-fewer-children-and-waiting-longer


실리콘밸리 아이들 데이케어 비용은 월 2000달러를 훌쩍 넘는다. 한 달 300~400만 원이 어린이집 비용으로 들어간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깨끗하고 친절하지도 않다. 한국보다 애 키우기는 비용적인 측면에서 훨씬 더 힘들다. 어린이집 운영시간도 9시~5시가 일반적이고 8:30~6시를 넘어가는 곳은 거의 없다.


그런데 실리콘밸리는 어떻게 아이를 한국보다 훨씬 더 많이 낳을 수 있을까?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돈도 필요하지만 사랑과 시간과 정신적 여유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일과 육아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당연히 워라밸이 좋아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삶은 워라밸이 좋은가?


한국적 시각에서 이 질문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같은 질문이다. 대답하는 사람마다 대답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한국보다 더 힘들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무한한 자유가 주어지고 진짜 워라밸이 좋다고도 한다. 도대체 실리콘밸리의 워라밸은 좋다는 건가 안 좋다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실리콘밸리의 워라밸은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워라밸은 회사와 나와의 협상의 결과이다. 너무 당연하게 회사는 내가 일을 많이 해 주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일을 많이 하면 돈을 많이 준다. 나는 돈을 많이 벌면서 아이도 키우고 싶고, 여행도 다니고 싶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고 싶다.


이 갈등관계는 미국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다. 다만 그 해결 방법에는 큰 차이가 있다. 워라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딜레마 삼각형이 적용된다.



가운데 점을 돈과 커리어 쪽으로, 상단 방향로 움직이면 가족과 나와는 무게중심이 점점 멀어지게 된다.



반면 가족 쪽으로 옮기면 회사에서의 성장은 느려지겠지만 가족과의 시간에 더 투자할 수 있다.



물론 그 시간을 "나" 쪽으로 옮겨 나만의 스타트업을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 노는데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면 가족과의 거리도, 현재 직장에서의 커리어 성공도 멀어지게 된다.



일과 나와 가족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 이것이 워라밸이다. 그리고 저 무게중심을 잘 옮기는 것이 삶의 지혜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삼각형이 작동하는 방식이 좀 다르다. 한국에서는 워라밸을 회사와 사회가 결정한다.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는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어떤 나라가, 어떤 회사가 워라밸이 좋으냐고 묻는다. 실리콘밸리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당신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사시나요?"이다. 각 개인의 딜레마 삼각형에서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더 일을 많이 시키는 회사도, 더 많은 노동시간을 요구하는 회사도 있다. 그렇지만 그 회사를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는 것도 한국에서보다는 훨씬 더 자유롭다.


한국의 워라밸 딜레마 삼각형은 다음과 같다. 52시간 근로제 등 사회적 합의를 하여 단일한 규칙을 만든다. 그래서 빨간 점은 일정 범위 이상 일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근무 시간도 정해져 있고 야근도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는 팀장의 선택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빨간 점을 옮길 수 있는 범위는 나에게 주어진 작은 시간을 가족을 위해 "희생"할 것인가 나를 위해 쓸 것인가 밖에 남지 않게 된다. 그래서 가족과 내 자유와의 갈등만이 남게 된다.


일로의 무게중심은 고정된 것이고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정치적 갈등의 대상은 될 수 있지만 개인에게는 고민이나 갈등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정치적으로는 52시간 제한을 해야 한다, 40시간 근로시간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개인에게는 회사와 국가에서 정한 가이드라인이 적용될 뿐이다.


그런 상태에서 가족에 무게중심을 두든, 나에게 두든 둘 다 충분하지 않은 상태가 된다. 이 상황이 계속되면 가족 간의 갈등이 오는 것과 나 자신과의 갈등, 즉 우울증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제약은 연공서열제와 획일적 공정에서 비롯된다. 대부분이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경쟁하며 능력보다 시간에 따라 승진하고, 연봉이 회사에 기여한 일의 가치가 아닌 얼마나 오래 회사에 성실하게 다녔는지를 가지고 결정되면 중간에 "한눈을 팔고" 사업을 하거나 아이를 갖는 것은 인생에서 매우 불리한 일이 되어버린다.


한국의 출산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을 주거나 일률적으로 근로 시간을 줄이는 것보다 개인에게 자유를 더 많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도 안 한 상태라면 일에 올인하고 커리어를 바짝 쌓아 큰 부의 근간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태라면 일을 적게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데 시간을 많이 쓸 수도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회사와 사회의 제약은 계속해서 느슨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티핑포인트가 지나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과 회사를 다니는 것이 실리콘밸리에서처럼 너무 긴 육아휴직 없이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너무 고령화 사회가 되기 전에 그 변화가 빨리 찾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회사에서 당신의 가치를 산정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