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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호현 Feb 01. 2019

최고의 인재들이 모였다, 어떻게 일해야 좋을까?

이 글은 HR 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hrinsight.co.kr/view/view.asp?in_cate=114&bi_pidx=28804


최고의 인재들이 모였다, 어떻게 일해야 좋을까?


리니지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또는 디아블로 같은 롤플레잉 게임을 하기 위해 친구들이 모였다. 처음에 그들은 레벨업을 해야 한다. 만렙을 향한 길은 멀고도 험하다. 많은 퀘스트를 협동하며 해 나가야 한다. 더 효율적으로 몹을 잡고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렇지만 아무리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도 절대적인 시간을 이길 수는 없다. 가장 효율적으로 오래 플레이를 하는 친구들이 레벨업을 가장 빨리 한다. 며칠에 한 번씩 접속하는 친구들은 매일매일 접속하는 친구들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엄청나게 긴 시간 동안 플레이를 한 끝에 몇몇 친구들이 만렙을 찍었다. 만랩을 찍으면 게임이 끝날 줄 알았지만 끝나기는커녕 이제부터가 제대로 시작이다. 이제는 끊임없는 반복 작업으로 레벨업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몹을 잡아도 레벨이 오르지 않는다. 아이템과 자신의 캐릭터를 이용해 지금까지 갈고닦은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때다. 더 이상 절대적인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이템과 어떻게 캐릭터를 성장시켰느냐이다. 이제 며칠간 게임에 접속하지 않아도 매일매일 접속한 친구와의 차이는 크지 않다. 중요한 순간에 어떻게 스킬을 활용해 어떤 아이템을 쓸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떤 창의적인 플레이를 할지가 더 중요해졌다.



정신 차리자.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대한민국은 온 국민이 합심해 열심히 일하고 제조업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90년대 우리는 대한민국이 이미 선진국이 됐다고 믿기 시작했다. OECD에 가입했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갖게 됐다. 그리고는 IMF. IMF 이후 우리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우리는 선진국이 아니었다고 우리는 더 달려야 한다고 자조했다. 그렇게 한 번 더 전력질주를 시작한 우리나라는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다시 세계 경제의 중심에 우뚝 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더 이상 아무리 달려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선진국을 향해, 세계 1위를 향해 달려왔는데 선진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경제 성장이 크게 둔화됐고 중국은 턱밑까지 쫓아왔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 시간 단축으로 비용은 계속 치솟았고, 중국의 약진으로 가격 경쟁력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더 이상 제조업이 버틸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왔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최저임금을 인상하지 않고 노동 시간을 다시 늘리면, 다시 노력하고 열심히 하면 상황이 나아질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만랩을 찍어버린 것이다. 더 이상 무슨 수를 써도 레벨이 오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됐고 개발도상국일 때 누릴 수 있었던 낮은 임금으로 인한 수출 호조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선진국이 되었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꿈꾸었던 이상적 선진국과는 너무도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의 개발 도상국일 때의 방식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축적의 길≫에서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우리나라가 1차 로켓이 그 역할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1차 로켓을 분리하지 못하고 2차 로켓을 제대로 시동하지 못하는 상황에 있다고 진단했다. 우주로 날아가는 로켓이 1차 로켓으로 눈부신 출발과 대기권 돌파를 했다고 해서 그 시간을 그리워하고 1차 로켓을 못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린 지금 1차 로켓을 끌어안고 2차 로켓을 발사하려는 사람들을 위험한 짓을 하지 말라며 만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축적의 길≫에서 제시한 우리나라가 갖춰야 할 역량은 '개념 설계'이다. 지금까지 성장을 위해 선진국을 벤치마킹하고 선진국에서 설계한 것을 빠르고 정확하게 구현하는 실행 능력에서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보여줬다. 그렇지만 실행하는 사람과 개념 설계하는 사람은 너무 다르다. 실행하는 사람은 질문을 안 할수록 좋고, 개념 설계하는 사람은 질문을 많이 할수록 좋다. 실행하는 사람은 시키는 것을 잘 해내는 좁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만 개념 설계를 하는 사람은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고수여야 한다. 실행하는 사람들은 회의를 최소한으로 해야 하지만 개념 설계를 하는 사람들은 회의가 설계의 과정이고 가장 중요한 혁신의 과정이다. 실행하는 사람들은 실수를 줄이고 안전한 방식으로 해야 하지만 개념 설계를 하는 사람들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솔루션을 내야 한다. 실패의 확률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각 분야의 고수들이 모여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윗사람 눈치 같은 것 보지 않고 깊이 있는 토론을 하며 스스로 결정을 해 나가는 조직. 그래서 혁신을 만들어 나가는 조직. 그것이 앞으로 대한민국에 필요한 조직이다. 이 비현실적일 것만 같은 조직구조를 실리콘밸리는 수십 년간 운영하며 전 세계의 돈을 끌어 모으는, 최고 선진국 미국이 아직도 경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신성장 동력을 만들었다. 미국은 자동차 제조업으로 대표되던 1차 로켓을 버리고 서부 실리콘밸리의 2차 로켓으로 갈아탔다. 제조업의 하락은 디트로이트를 폐허로 만들고 중부의 경제를 뿌리 채 흔들었다. 이는 결국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 이어지기도 했다. 1차 로켓에 대한 추억을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1차 로켓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위계 조직과 역할 조직의 일하는 방식 차이


위계가 제일 높은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조직을 위계 조직, 각 사람이 자신의 전문성에 맞게 결정하고 각자가 책임을 지는 조직을 역할 조직이라고 하자. 위계 조직은 군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위에서 오는 명령에 토 달지 않고 수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작동 원리이다. 역할 조직은 프로 축구팀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은 감독의 명령을 잘 듣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전문성을 살려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자신의 퍼포먼스가 안 좋으면 자신이 책임을 지고 팀에서 사임하거나 다음 기회를 노린다. 감독의 역할은 각 포지션에서 최고의 역할을 하는 전문가들을 하나의 팀으로 묶어내기 위해 팀 전략을 짜고 그 전략을 팀원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위계 조직 기업에서는 디자인 전문가가 아무리 멋지고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을 해도 사장의 마음에 안 들면 그 디자인이 시장에 나갈 수 없다. 모든 결정권이 사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반면 역할 조직 기업에서는 사장의 의견은 비전문가의 개인적 의견일 뿐 결정은 디자인 전문가가 내린다. 역할 조직의 경우 디자이너가 스스로 책임을 지기 때문에 제품의 성공은 디자이너의 성공이 된다. 반대로 위계 조직의 경우 제품은 성공하면 사장의 공, 실패하면 사장의 탓이 된다.


위계 조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회사에서 윗사람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하는 것이고 가장 좋지 않은 일은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위계 조직의 사람들은 가장 안전한 선택을 하고 윗사람이 좋아하는 일만을 하려고 한다. 혁신적이고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도 부담되는 일이고 개인 입장에서는 할 필요가 없는 일이 된다. 그래서 혁신도 안전한 혁신을 추구한다. 안전한 혁신은 무엇일까? 대세를 따르는 혁신이다. 남들이 다 블록체인 한다고 하면 블록체인 하고 AI 한다고 하면 AI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역할 조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혁신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해 경험을 쌓고 커리어를 발전시켜서 업계에 좋은 평판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기저기서 모셔가려고 각 회사들이 노력하게 될 것이다. 프로축구 선수를 생각하면 쉽다. 아인트호벤의 박지성에게 생길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아인트호벤에서 인정받아 승진하는 것이 아니고 유럽 축구계에 이름을 알려 아인트호벤을 떠나는 것이다. 박지성은 아인트호벤에서 최선을 다해 골을 넣지만 그는 아인트호벤을 위해 골을 넣지 않는다. 그의 커리어를 위해 넣는다. 역할 조직의 사람들에게 가장 안 좋은 일은 발전이 없고 배우는 것이 없는 것이다. 발전이 없으면 업계에서 도태되어 버린다. 지금 있는 회사에서 익숙해진 일이 있어서 쉬운 일만 계속한다면 몇 년 후 그 사람을 찾는 회사는 없어질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회사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역할 조직에서는 해고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다. 평소에 업계에서 먹힐만한 무언가를 계속 쌓아왔기 때문이다. 다만 위계 조직의 방식으로 윗사람 눈치를 보며 자신의 커리어 관리를 게을리한 사람에게는 실리콘밸리는 너무나도 힘든 세상이 된다. 2부 리그에서 보통 스트라이커로 적당히 골을 넣으며 있는 선수에게는 1부 리그의 기회가 찾아올 리 없다. 자신의 팀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 그것은 감독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팀에 충성을 해서 하는 일도 아니다.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그러한 동기를 가진 선수는 철저한 관리가 필요 없다. 그냥 두면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실리콘밸리 역할 조직에서는 직원들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제공한다. 직원들은 자유를 준다고 해서 놀고만 있지는 않는다. 일을 안 하면 회사에서 잘려서가 아니다. 일을 안 하고 자기 계발을 안 하면 회사를 떠난 후 갈 곳이 없어서이다. 그들은 회사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회사에서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고 싶어 한다. 그들은 세상에 알릴만한 혁신적인 도전을 하는 것이 스스로의 커리어에 가장 유리함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 다음 도전을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중요한 순간에 그 에너지를 쏟아내기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위계 조직에서 보기에는 말도 안 돼 보이는 자유를 역할 조직에서는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위계 조직에서는 그것을 '복지'라고 부른다. 힘들게 일하는 직원들에게 휴가, 멋진 사무실, 회사 버스를 제공하는 것은 복지이다. 역할 조직에서는 그것이 시혜적인 복지가 아니라 이 회사만의 장점인 특전[Perk]이다. 특전은 여러 회사 중에서 내 전문성을 더 편하게 발휘할 만한 회사를 선택할 때 중요한 요인이 된다. 내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나는 일에 집중하고 싶으므로 버스로 출퇴근을 지원하고 내 운동도 지원해 주고 휴식을 위한 여행도 지원해 주는 회사가 매력적이다. 실리콘밸리는 복지가 좋은 것이 아니다. 전문가를 위한 특전이 좋은 것이다.


성과주의를 넘어 기여 주의로


위계 조직은 맨 위에서 모든 결정을 내리고 각 팀이 그 결정을 얼마나 잘 수행했나를 가지고 평가를 내린다. 때로는 여러 팀에 같은 일을 맡기고 경쟁을 시키기도 한다. 실무진은 위에서 내려온 일을 최대한 정확하고 빠르게 문제없이 수행해야 한다. 그렇지만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나에게 직접적으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공은 팀별로 평가를 받고 실무진은 팀의 성과를 공정하게 나누어 가진다. 이러한 체제는 공산주의에 가깝다. 팀이 공동으로 생산하고 똑같이 나누어 갖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모든 계획이 내려오기 때문에 실무진이 때로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이러한 위계주의적이고 공산주의적인 체제에서는 최고 결정권자를 신격화하고 실무진에 정보를 제한할 필요가 생긴다. 실무진에서 모르는 이해할 수 없는 최고 결정권자의 혜안이 있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산주의에서는 실무자들이 일을 열심히 할 이유도 없고 최대한 일을 적게 하면서 돈을 많이 받는 것이 목표가 된다. 이러한 불공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도입한 것이 바로 성과주의이다. 성과주의를 도입하면 위계 조직의 상명 하복적 명령체계는 유지하면서 실무진에게 좀 더 동기부여를 할 수 있게 된다. 한 달 동안 프로젝트를 3개 수행한 사람은 1개 수행한 사람에 비해 3배의 월급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위계 조직에서의 성과주의는 여러 부작용이 따른다. 서로 보여주기 식 경쟁을 하게 되고 성과로 평가받지 못하는 일은 서로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혁신적인 일은 절대 금물이다. 현재의 룰 안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연구 개발에 노력하느라 생산성이 줄어들면 보상이 줄어든다. 그러므로 연구 개발을 통한 혁신은 일어나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혁신을 위한 역할 조직은 성과주의를 넘어 기여 주의로 작동한다. 위에서 명령이 내려오지 않는 역할 조직에서는 획일화된 기준으로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렵다. 위계 조직에서 평가를 위한 질문이 "시킨 거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라면 역할 조직에서의 평가를 위한 질문은 "당신은 우리의 미션을 위해 어떻게 기여했습니까?"가 된다. 각 전문가가 전문성을 살려서 무엇을 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로 축구선수들을 평가하는 데 골의 수로만 평가하면 수비수는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고 공격수들은 이타적인 플레이보다는 골을 넣기 위한 이기적인 플레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각 선수가 승리를 위해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하면 각 선수는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스트라이커도 골만 넣기 위해 골문 앞을 어슬렁거리기보다는 승리를 위해 동료에게 패스도 하고 수비에도 가담할 것이다. 수비수도 골을 넣으려고 앞으로 나가기보다는 철벽 수비진을 구축하는 데 더 집중할 것이다. 골키퍼도 골 넣는 골키퍼가 되기 위해 나가서 팀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기보다는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기여 주의에서는 '우리 회사의 미션은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이 미션에 기여하셨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각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나는 에너지 문제를 위해 전기 자동차의 전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습니다', 디자이너는 '나는 유체 역학적인 자동차를 디자인했습니다', 마케터는 '나는 우리의 미션을 세상에 알리는데 집중했습니다' 등 각자의 전문성에 맞는 대답을 할 것이다.


우리가 전문가에게 원하는 것은 그들만의 전문성이다. 밤을 새워가며 일하고 회사를 위해 충성을 바치고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축적의 길을 가야 하는 우리나라에 최고의 인재들은 넘쳐난다. 그들이 회사와 윗사람을 바라보게 하지 말자. 그들이 바라봐야 할 곳은 시장이고 혁신이고 그들의 커리어이다.


[HR insight 2019년 2월호 vol.765]


http://www.hrinsight.co.kr/view/view.asp?in_cate=114&bi_pidx=28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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