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시처럼 심장에 새기는 편이다.
그래서 한국 노래를 주로 듣는다.
어쩌다 팝송에 꽂히면
가사를 해석하느라 진땀을 빼고,
외울 때까지 한 곡만 집요하게 듣는다.
취향은 소나무에 가깝다.
처절하게 불러주는 목소리를 오래 좋아했다.
무너지기 직전의 사람처럼,
자기 안의 무언가를 끝까지 밀어 올리는 목소리.
나는 그런 목소리에 자주 붙잡혔다.
가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곳에서
나만 모르고 있던 명곡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기분이 좀 단순해진다.
심봤다.
딱 그 정도의 마음.
어제도 비슷했다.
알고리즘의 노예처럼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가
영혼을 갈아서 노래하는 사람들 영상 위에 올라탔다.
훌륭한 가수들,
심지어 이름 모를 일반인들의 노래까지 듣는데
가슴 한쪽이 묵직해졌다.
사연이 있는 노래들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요절한 싱어의 목소리,
죽은 누군가를 향해 부르는 노래,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붙드는 무대.
가벼운 마음으로 넘기기 어려운 장면들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보게 됐다.
오자키 유타카였다.
땀인지 눈물인지 분간되지 않는 얼굴로
온몸을 던지듯 노래하고 있었다.
멜로디는 익숙했다.
한국 가수들이 번안해서 불러
너무 잘 알려진 그 노래,
I Love You였다.
그런데도 전혀 다른 노래처럼 들렸다.
잘 부른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감정이 깊다는 말도 어딘가 약했다.
그 순간 든 생각은 하나였다.
진짜다.
온몸으로 절규하듯,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사람처럼 노래하는 모습.
노래를 부른다기보다
자기 안에서 무너지는 것을 그대로 토해내는 사람 같았다.
오자키 유타카는 이미 늙지 않을 사람의 얼굴로 남아 있고,
그의 절규는 지금도 누군가의 심장을 늦게 때린다.
나는 그 영상을 보다가
숨이 턱 막혔다.
세상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좋은 노래를 발견한 정도의 일이 아니었다.
결국 늦은 밤,
잠들기 직전까지
뜻도 알지 못하는 일본 노래를 들으며
한참을 잠들지 못했다.
어떤 목소리는
이해보다 먼저 몸에 닿는다.
나는 그 절규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