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누구에게나 대나무 숲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대나무 숲이 필요하다.
재고 따지고 싶지 않고, 만져 저도 스쳐가도 상관없을 ... 그러나 안전하게 느껴지는 대나무 숲!
나의 행동반경, 사람들과 적당히 분리되어 있고
아무 말 대잔치를 해도 메아리가 없는 그런 숲 말이다.
행여 메아리가 있다고 해도 전혀 마음이 상하지 않는 푸르른 숲!
지난 몇 달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원했던 건 엄청나게 넓디넓어서 아무런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지만,
철퍼덕 자빠져도 누울 수 있고, 천천히 일어나도 눈치 보이지 않는 그런 포근한 대나무 숲이었던 것 같다.
프리랜서에서 개인사업자로, 개인사업자에서 법인 대표로, 직원 1명에서 10명 남짓한 조직으로 변화무쌍한 시절을 보내며 - 이별, 이별의 아픔들 - 알게 모르게 나를 가둬두던 책임감과 감정들을 폭발시킬 차례였다.
몇 년 동안 응축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올 찰나... 나는 그 에너지를 어디에 써야 하나 고심했다.
또 한 번의 제대로 된 비즈니스 도약, 좀 더 가까운 인연을 만드는 노력, 가족들의 안위...
모두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이었다.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 이야기해 주고,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까지 그냥 스스로를 좀 내버려 두는 일....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만나자는 사람들을 다 만나줄 필요도 없고, 마음도 먼저 써주지 않겠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격정의 스토리와 애씀이 필요하지 않은 일상이다.
나의 대나무 숲이 이야기했다.
"왜 자꾸 슬픈 일을 자처해서 기승전결을 만들어 내는 거죠? 당신의 인생이 작품 일 필요는 없잖아요..."
"기-기-승- 승만 있어도 된다고요!"
"슬픔이 필요한 사람 같잖아요!"
"간접시로 보세요"
근래에 평소 같으면 절대 하지 않을 가슴앓이를 하면서, 전에 없던 대나무 숲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무 말 대잔치와 내 감정을 나보다 더 잘 관조해 주는 대나무 숲!
쓰디쓴 메아리를 돌려주고 대답하지 않아도 기다려주는 담백하고 선생님 같은 대나무 숲!
대나무 숲에 온갖 것을 털어놓고 내려놓겠다.
힘들 때마다 토로하겠다. 욕하고 싶을 땐 욕도 하겠다. 진상 짓도 할 것이다. 변명도 하고, 따지기도 할 거다.
위로도 넙죽 받고, 쓴소리도 꾸역꾸역 삼켜보겠다.
나에겐 아무때나 징징 될 수 있는 대나무 숲이 필요했다.
나의 징징이 부담이 아니라 혼내줘야 할 대상으로 느끼는 존재!
혼난 다는 게 이토록 위로가 될 줄이야 -
대나무 숲에서만큼은 어른인 척하지 않겠다.
Chopin: Nocturne No. 2 in E flat, Op. 9 No.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