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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샤인 Aug 20. 2024

나의 결에 대해

망망대해. 인생의 파도가 출렁인다. 술렁인다. 나는 어떤 파도 위에 올라탈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파도 위에 올라타야 할까.


나는 파도가 두려운 서퍼다. 몇 달 전 서핑을 다녀왔다.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파도는 무섭다. 입문자 교육을 받으면서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선생님을 중심으로 나란히 서서 파도를 기다린다. 파도를 타기 위해서다. 파도가 온다. 높은 파도, 낮은 파도... 흘려보내기도 하고, 보드에 올랐다가 결국 파도를 타지 못하고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같은 결의 파도는 단 한번도 없다. 각자가 처한 인생의 흐름처럼. 멀지 않은 곳에서는 상급자들이 자신보다 높은 키의 파도에 올라타기도 한다. 각자가 느끼는 파도의 높이와 속도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우주의 흐름, 시대의 흐름, 국가의 운명, 서울의 분위기. 한강의 바람, 아이의 미소, 그와의 대화, 너의 눈빛과 입술 속에서. 나는 이 모든 것들의 흐름 속에 부유한다.



오는 파도를 바라보다 드디어 보드 중심으로 몸을 옮겨 뉘었다. 출렁출렁... 파도가 출렁인다. 중심을 잃는 순간 바로 빠지는 상황이다. 출렁이는 파도에서 무게 중심을 잡고 일어나야만 한다. 내 몸이 내 마음과 다르게 움직이는 순간을 경험한다. 보드 위에 손을 짚었다가 재빠르게 발을 움직여 팔을 이용해 중심을 잡는다. 나는 파도 위, 물 위에 서 있다. 물속에서 보았던 풍경과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나는 중심을 잡고야 말았다.


거센 파도 앞에서 보드의 방향을 어쩌지 못하고 급류의 방향에 따라 상급자들이 연습하는 파도에 휩쓸리기도 한다. 여기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아닐 거라는 공포감이 온몸을 전율시킨다. 이런 나의 상황을 눈치챈 사람이 가드에게 도움을 청한다. 바로 물속에 뛰어들기에 그는 너무 멀리 있다.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멀리서 지도해 주는 대로 패들링을 해본다. 방향을 몇 번 바꿔가면서.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흐름의 파도 속에 와 있다.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결의 출렁임 안에 있다. 일상과 인생을 변화시킬 역대급의 사건과 사고가 일어난다. 때론 두렵고 무섭다. 때론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끌어 올려주고, 생경한 풍경의 짜릿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나는 파도 안에 있다. 바다에 온 이상 벗어날 수 없다. 여긴 나의 집, 나의 우주다.


파도 위에서 중심을 잡으며 나는 한층 더 자유로워졌다. 거친 파도에 휩쓸려 보고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자신의 키보다 높은 파도 위에서 파도 위의 사람들이 부럽다. 공포를 이겨냈고, 두려움을 이겨내고 파도위에서 미소짓는 사람들.


파도는 타는 것이다. 때문에 나의 결은 없다. 그 결은 항상 변화하고 있고, 변화해야 한다.

더 민감하게, 더 예민하게 오는 파도를 보고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방법을 생각할 뿐이다.


여긴 나의 집, 나의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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