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헤어질 리 없는 가족이나 나를 한량없이 받아줄 것 같은 오랜 인연 몇 명은 제쳐둔 채 그 나머지 사람들과 그저 그렇게 이별하면 어쩔 수 없지 정도의 마음과 태도로 일관하며 타격감도 가격감도 위기감도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건가. 이렇게 써놓고 보니 진짜 미칠 것 같이 나 자신이 싫어진다.
그럼 누군가와 만나고 이별할 때마다 일상과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면 잘 사는 걸까. 며칠 전에 책바(망원동 핫플레이스: 서고가 있는 술집)에 갔다가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라는 노희경 님의 에세이를 읽었다. 20대에 읽었던 그 책을 다시 휘리릭 보니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라 했거늘. 사랑보다 사랑 후 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에 대한 의심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꼴이라니. 경계 없이 죽을 것처럼 사랑하고 나서도 더 큰 에너지가 채워지고 새롭게 태어난다던 에세이 속 인물은 여전히 부럽다.
노희경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발췌
노희경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발췌
글을 잘 쓰고 싶은데 글쓰기 방법만 읽고 정작 자신의 글을 한편도 완성하지 못하는 글쓰기 지망생이 있다. 이 생의 목적이 재능을 기르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을 하고 싶은 어떤 여성이 있다. 온갖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면서 정작 자신의 사랑 앞에서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벌벌 벌 떨다가 그 마음이 폭발할 때즈음 사랑 후 오는 것들을 가늠하며 사랑을 밀어내기 바쁜, 머리로 사랑하는 그런 사랑 지망생도 있다.
100권의 글쓰기 방법론을 읽는 것보다 필체도, 비문일까 하는 의심도, 글씨체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냥 쓰면 되면 될 일인데. 쓰고 나면 소중하지 않은 글이 없다는 걸 알게 될 텐데. 쓰고 난 후 또박또박 읽어보면 어디를 수정하면 좋을지 알 수 있는데. 그리고 얼마든지 수정해도 된다는 것도. 이렇게 또 쓰고 나니 알겠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 들키지 않고 수정할 수 있어서였다. 힘을 주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행위. 유명작가가 아닌 덕분에 막 쓰고 조금씩 힘주어 수정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나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수정도 가능하고 멈춤도 가능해서 그랬네. 그랬던 거였네.
완벽주의 성향에 최상화를 꿈꾸는 - 스스로 괴롭히기 전문가가 드디어 찾은 탈출구 하나가 글쓰기였네. 사랑은, 사람의 탈출구가 이별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이렇게 또 괴로웠던 거였네. 남한테 아쉬운 소리 못하는 성향, '아님 말고'가 수 없이 반복되는 경험들 사이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먹고사는 일과 사회인으로서 견고한 성을 쌓고 지속적으로 갈고닦는 일이었던 것이었다. 인생에서 어려운 일이 닥쳐올 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숨죽여 우는 일이 더 쉬었다. 기대고 의지 하는 게 힘든 사람. 한때는 신을 구하기도 했다. 사람에겐 보여주기 힘든 마음을 신에게 들키고 싶었다. 신이니까. 고요와 침묵 속에 침잠해 있지만 진짜 나를 알아보고 게다가 혹시 위로까지 건넬지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랑과 사랑 후에 오는 이별까지도 신의 뜻이길 바라면서.
글쓰기처럼 관계를 할 수 없던 이유는 아마 상처 때문이었겠지. 글은 지우고 다시 쓰고 고쳐 쓴 흔적까지 지울 수 있지만 관계는 그렇지 않기에. 지워도 지워도 상처가 남고, 혼자만 상처받아서 끌날일도 아닌 걸 알기에. 어쩌면 일평생 가져가야 할 주홍글씨를 마음에 새긴 채 살아가야 할 일이 될 수 있기에.
어떤 존재가 온다.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존재를 품는다.
어떤 관계가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존경과 존중이라는 마음으로. 어떤 관계가 생기고야 말았다. 존재와 관계. 그 끝을, 마무리를, 완성을 생각한다. 아니. 이제 생각을 그만해야 한다. 생각하는 걸 그만 생각하자.
거짓말을 했다.
20대의 노희경 작가님의 책을 읽었던 나는 여기 없다. 여전하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으며 남들이 볼 때는 바보처럼 사랑에 목숨 건다던 등장인물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으니까. 그런 사랑을 찾는 일이 생의 의미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렇다. 사랑이 뭐라고. 사랑이 뭐라고. 사람도 변하고 사랑했던 마음이 변하는 건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 그러나 사랑하는 태도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20대와는 달라야 한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는 자는 유죄다. 사랑하기 앞서 이별이라는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철저히 대비하는 마음은 유죄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관계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온전한 마음을 주는 일도 유죄다. 누군가를 보내고 충분히 아파하지 않는 건 유죄다. 아프면서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건 죄가 크다. 사랑은 게임이 아니다. 승산 있는 사랑과 사람에 집중하는 건 반칙이다.
커서를 왔다 갔다 하며 지웠다 써 내려갔다가를 반복하며 글을 쓰듯 갈팡질팡, 오락가락하는 마음도 사랑이다. 고민과 벗민, 고통 없이 아름답고 숭고한 것들은 본 적이 없다. 마음에 취해 아니면 무뎌져서 느끼지 못할 뿐. 아니다. 이 마음마저 버리자. 힘들면 놓아버리자. 즐겁고 밝은 마음만 있다고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니까. 사계절이 다르듯 모두 사랑이다.
사랑과 이별 앞에서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자. 마음 그대로품고 두자. 따지지도 분석하지도 말자. 흐르도록 내버려 두자.
어쭙잖게 상대방을 생각하지 말자.조금만 더 힘을 내어 스스로에게 진실하자. 원하는 게 뭔지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상대가 원하는 것도 생각하지 말자. 그냥 풀어헤치자. 내 마음과 운명을. 이번 생은 그걸 연습하기 위해 주어졌는지도 모른다. 역시나 힘을 주는 것보다 빼는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