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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생 화두

Burn? Out?

by 션샤인

토할 때까지 일한 적이 있다. 회계법인에서 PM(Project Manager)으로 일할 때였다. 일잘러들이 즐비한 업무 환경, 업계 탑인 조직에서 출산 휴가 3개월 후 육아휴직 2개월을 사용하고 일터로 돌아왔다. '5개월이라는 공백기를 잘 이겨낼 수 있겠지? 컨설팅 업에서 5개월은 짧지 않은 기간인데... 출산 후 컨디션이 돌아오겠지?' 마음엔 온갖 걱정이 가득했다.


복귀 후 며칠이 되지 않아 전년에도 PM을 맡았던 기업의 전략기획팀 부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는 말에 덜컹 겁이 났다. 온갖 두려움을 종식시키고 싶어서 정말 가열차게 일했다. 이전에 만들었던 템플릿들을 몇 번이나 뒤집어가며 다시 만들었다. 온종일 동네 아파트 어린이 도서관에서 주말을 보내기도 했다. 문서를 수정하다 헛구역질이 하고 싶기도 했다. '이런 게 토할 때까지 일한다는 것이구나' 정말이지 나를 하얗게 태웠다.


사람은 꿈에 의해서 움직이기도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행동한다. 번아웃(burnout)은 어떤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피로를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신기하게도 나는 토할 때까지 나를 하얗게 태운 그 프로젝트를 하면서 내가 하는 일이 더욱 좋아졌다. 그 업무로 삽질을 너무나 한 나머지 자신감도 장착하게 되었다. 업무 마디마디마다 이야깃거리가 생기기도 했다.


자의든 타의든 나를 태울만한 일이 생겼다면 직진하라고 말하고 싶다. 불태워 본 사람만이 스스로 어느 지점까지 태울 수 있는지, 탈 수 있는지, 재가 될 수 있는지 인식하고 있기에 조절도 할 수 있을 것이리라.


인생에서 스스로를 하얗게 태울만한 일이나 사랑, 사람을 만나고 이후 오랜 기간 탈진해 있더라도... 버닝 후 아웃은 분명 가치가 있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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