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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생 화두

강해지고 싶다

by 션샤인

"욱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예요"


노래 동아리였던 우리 둘. 180센티 정도의 키, 훤칠한 외모에 진중하고 기름진 말투의 공대생과 ㅡ맨투맨티, 헐렁한 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공대 여자. 우리는 버스로 몇 정거장 거리를 걸으며 대화하고, 함께 자전거를 타고 캠퍼스를 오가는 그런 사이였다. 그 애와 난 공대 노래 동아리였다. 그 앤 기타, 드럼 등 악기를 잘 다뤘고, 노래도 곧잘 불렀다. 나는 악기를 전혀 다루지 못하는 보컬이었다. 방학에는 의대, 자연대, 사회대, 법대, 공대, 인문대, 경영대 등 10개 정도 노래 동아리들이 모여 연합 캠프를 가곤 했다. 저녁이 되면 작사, 작곡한 곡을 발표하는 이벤트가 열렸다. 그 앤 인기가 있었다. 인문대와 사범대 여학생들이 호시탐탐 말을 걸어왔다. 뜻밖에도 인기쟁이 공대남이 무대에 등장했다. 나를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제목은 "꼬마에게"?


'아 진짜 꼬마가 뭐냐고'

'가사는 또 왜 이리 느끼해'


공대 여자의 감성과 나름의 순수성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이 모든 이벤트와 가사들은 결국 내가 아닌 인문대 여성들의 마음을 샀던 것 같다. 캠프 마지막날, 그 앤 여성 여성하고 아리따운 영문과 여학우와 썸을 시작했다. 나는 ㅡ 그 애와 사귀는 것은 아니었으나, 고백 비슷하게 받은 것 같은 상황에서, 스스로의 마음도 잘 모르겠는, 그렇다 할 연애 경험이 전무한 - 곰탱이 공대여자 ㅡ 나는 - 이상한 기류를 느끼지만 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은 채 그 애와 소원해졌다. 그 애의 자전거 뒷좌석은 내가 아닌 긴치마를 펄럭거리며 화장품 향기가 제법 나는 여성의 자리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눈앞에서 제법 괜찮은 남자를 뺏긴 거였다.


나는 강해지고 싶었다. 꼬마에서 여성으로, 뺐는 사람은 아니어도 지킬 줄 아는 사람으로 ㅡ

강해지겠다...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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