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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역사 공부

작가는 역사에 능해야 한다

by 피트니스 큐레이터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하여 시작하게 되었다. 세종대왕도 역사에 심취하여 사마천이 쓴 ‘자치통감’을 수시로 읽고 국정을 운영하는데 다양하게 적용했다고 들었다.


아내에게 요즘 한국사 공부한다고 말했다가 “그걸 왜 해?”라고 물었다. 돈도 안 되는 일에 자꾸 시간 들인다고 핀잔을 주는 뉘앙스였다.

“돈 안 되는 일이지만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위해서 알아야 하기에 공부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싸우기 싫어서 쭈뼛쭈뼛 그저 아무 말 안 하고 서 있기만 했다.


나는 전공에 관한 공부보다는 당장 필요하지 않은 일들에 시간과 열정을 더 쏟고 있다. 가령 인문학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행위, 그리고 프로야구 시청하는 것 등이다.

현재 나를 이끄는 것은 글쓰기이다. 이것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모든 생각이 글쓰기로 꽉 차 있다. 하지만 글을 쓸수록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 일인가’라고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남들은 전공 공부를 위해 실력을 쌓아가고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데, 난 ‘왜 이러고 있나’라고 실의에 빠지기도 한다.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이 글을 써서 결과물인 책을 출간하는 사람들을 종종 매스컴을 통해 접하게 된다. 그럴 때면 희망 보다는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난 왜 못 하는가?’ 하고 말이다.

한때는 탈고하여 출판사로 원고를 송부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외면했다. 그들이 외면한 이유는 뻔하다. 원고가 형편없거나, 그들이 원하는 성향과 다른 것이다.

글쓰기는 사실상 언어를 전공한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소설가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의 전공을 보면 각양각색이다. 분명 이들도 처음엔 나와 같은 실의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쓰고, 또 쓰고, 또 씀으로써 임계점을 넘겨 오늘날 훌륭한 글을 쓰게 되었으리라.




하여 글쓰기는 ‘인생의 동반자요, 반려자’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동반자이기에 ‘희로애락’을 함께 겪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현재는 기쁨보다는 아픔이 더 많지만 언젠간 기쁨이 역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글쓰기의 원료를 모으기 위해서 역사를 공부 했다.

모든 작가는 준 역사가라고 생각한다. 유명한 소설가는 역사 인식에 능하다.

역사를 통해서 현재를 조명하고, 역사를 통해서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되는 것이다.

앞으로 나는 글을 쓰기위한 토대를 쌓고자 역사에 대한 지식을 섭렵하고자 한다.

그래서 역사에 대한 팩트 위에 나만의 사관을 덧입혀 한편의 글을 완성하고 싶은 바람을 해본다.




참고 : 공부한 근현대사를 정리해 봤습니다.

망치부인 야매 근현대사 https://www.youtube.com/watch?v=R7_ydk1rZKs


한국 근현대사 총정리(흥선대원군 ~ 박정희 독재정권)


1800년 정조 대왕께서 갑자기 승하하셨다. 정순왕후가 보낸 간식을 먹고...

그 이후로 척족 세력인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세도정치 60년 시작되었다.

이씨 왕족을 다 제거하기 위해 그들은 철저히 전략을 세웠다. 또한 권력을 그들의 손에 움켜잡으려고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이빨 빠진 호랑이와 같은 왕족의 후손인 철종을 왕위에 올렸다.

그러던 중 ‘와신상담’을 꿈꾸며 조용히 엎드려 있던 이하응은 때를 기다렸다. 산속에 숨어서 두 명의 자식들에게 과외 공부를 시켰다. 그리고 때가 왔다. 조대비와 합작하여 그의 둘 째 아들인 고종을 왕위에 올렸다. 그가 바로 19세기 민족주의를 연 흥선대원군이다. 흥선대원군은 고종이 즉위한 이후 나이 어린 임금을 대신해 섭정을 하기 시작했다. 정치를 하고자 첫 째 아들 대신에 둘 째 아들을 왕위에 등극 시키고자 했던 숨겨진 깨알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1863년 - 1873년

10년간 세도정치

고종즉위 - 흥선대원군 섭정(삼정(세금)개혁, 경복궁 중건, 외세(프랑스: 병인양요, 1866. 미국: 신미양요, 1871)격파.

삼정개혁 - 양반의 반발, 경복궁 중건 - 백성불만, 쇄국정책에 대한 통상수교거부 비판.


1876년

고종친정(명성왕후가 정권을 잡음)

강화도 조약 - 일본에 의해 최초의 불평등조약

개화정책 - 일본식 문화 받아들여, 신식군대, 신식교육 - 구식군대 반발


1882년

임오군란(1882) - 청나라 개입, 흥선대원군 압송, 조선 내정 간섭

청,일 양국 조선을 두고 경쟁 - 청: 정치적 간섭, 일본 : 경제수탈이 1882 - 1894까지 지속됨.


1884년

갑신정변(1884) - 친일 개화파가 친청 세력을 공격한 정변 - 입헌군주제

일본의 군사정변세력(갑신정변 식 입헌군주제, 메이지유신) 모방 - 일본, 미국으로 망명.

톈진조약(청-일) : 조선 공동 출병 약속.

일본의 수탈이 심해지자 농촌 경제 파탄 - 소작농들의 불만


1894년

동학농민운동(갑오농민전쟁, 동학혁명)

청일전쟁 - 일본이 승리

갑오개혁(일본주도) - 노비제 폐지 - 친일정권수립 - 러시아와 외교 시작(명성왕후가 욕먹는 가장 큰 이유)


1895년

을미사변 - 명성왕후 제거

아관파천 - 친러 세력 형성, 일본의 조선 강점이 십년 연기.

을미개혁(일본 놈들이) - 단발령 - 선비 주도하고 농민들(동학군 출신) 동참 의병.

을미의병 - 왕의 명령(고종)에 따라 해산 (농민군 분노 -> 농민 출신 의병장)

대한제국 - 광무개혁 - 독립협회 - 만민공동회 - 민족주의독립운동세력

유생, 지주, 지식인 중심 애국계몽운동(학교, 신문)

동학운동, 을미의병에 활동 농민군중심 독립운동세력


1895 - 1904 : 러-일이 조선의 이권 차지하기 위한 경쟁

1902년 영일동맹, 1904년 카쓰라-테프트 밀약(미-일) : 조선침략 동의

1904 러일전쟁 - 일본 승리(러시아제국 패망해 가는 시기-1917년 레닌의 볼세비키 혁명)


1905년

을사늑약 - 고종의 동의를 얻지 못한 조약의 기능상실, 무효 의미.

= 조선의 외교권 박탈, 그 뒤에 있었던 모든 국제협약 조약은 무효.

= 1909년에 간도 땅을 중국에 넘긴 조약도 무효라는 의미.

을사의병 - 평민출신 의병장 출현 : 을미의병의 실패로 만들어짐.


1907년

국채보상운동

헤이그 특사(이휘종, 이상설, 이준) - 을사조약 무효라고 세계에 주장.

고종 퇴위, 순종 즉위 - 군인 반발 - 대한제국 군대해산

정미의병 = 의병전쟁, 해외독립운동 기지 건설운동


1900년 - 1910년

민족주의자(보수) : 애국계몽운동

무장항쟁파(진보) : 의병전쟁, 독립군 기지건설

신민회: 민족주의운동과 항일무장투쟁의 결합 요구 => 신흥무관학교(경희대전신)


1910년

수탈의 시작 : 무단통치, 태형(볼기짝 맞는 것: 삼일한)

1919년 3.1운동 - 1년 동안 전국적 규모, 비폭력 해방운동, 5.4운동, 인도의 민족운동(간디)에 영향, =>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920년대

문화통치 - 친일파 양성, 조선, 동아일보 발행을 허가.

경제수탈 강화

보수 진보

민족주의 독립운동 <=> 사회주의 독립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노동조합, 농민회 조직

==> 신간회 활동(하나로 묶어냄), 좌우합작운동, 유일당 운동 => 광주학생항일의거 조사단.


1930년대 : 병참기지화 정책

독립운동 탄압이 심화, 해외독립운동 더욱 기열 차게 진행됨.


1940년대 : 민족말살정책 - 국어, 국사, 지리교육 금지, 신사참배 강요.

독일, 이탈리아, 일본 - 후진 공업국(1800년도후기), 전체주의 동맹

1942년 일본이 진주만 공격 태평양전쟁 도발 2차 세계대전 발발, 독일이 프랑스 침공.

박정희 - 만주 군에 혈서 일본군에 견마지로 충성 맹세, 만주군 입대 = 독립운동 토벌부대, 훈장 받음.

김구 - 대한독립군 연합군에 합류, 여운형 - 건국준비위원회 구성.


1945년 : 일제 패망 - 조선광복 - 패망한 일본의 식민지 점령군 주둔.

북: 소련 주둔, 남 : 미군 주둔.

박정희 - 남조선 노동당(공산당) 입당.

미소공동위원회

소련 - 3년 유기한 신탁통치, 미국 - 무기한 신탁통치 주장

조선일보, 동아일보 오보발행 - 미국은 반탁, 소련은 찬탁 허위사실 유포

=> 민족주의자는 반탁, 사회주의자는 찬탁 이념갈등 시작.

이승만 단독정부 수립운동 전개 - 민족주의 사회주의 모두 반대.

김구 - 북한 방문 분단정부 수립 반대 활동

이승만 1948. 5.10 단독선거 공표

전국적 단독선거 반대운동 - 제주 4.3항쟁


1948년 : 제헌의회 구성, 이승만 대통령 간접선거 당선.

- 5.10선거 무효운동 발발 - 여순 사건 - 남로당 당원 박정희 체포, 사형선고

친일파들이 박정희 구명운동(백선엽 주동) 박정희 생존.


1949년 : 반민특위 - 친일청산 노력 -> 이승만 국회난입, 진보당의원 간첩체포

국회프락치사건 반민특위해체 친일청산 좌절


1950년 : 2월 국회의원 선거 - 이승만 반대파 대거 당선 = 대통령재선불가능

맥아더에게 편지 보내서 ‘에치슨라인’ 후퇴시켜 미국의 동북아 방어선에서 남한 제외 요청 맥아더 승인(브르스 커밍스 교수 - 한국전쟁의 기원)

1950년 6월 북한의 남침

한강다리 끊고 부산으로 피난 부산에서 대통령 직선제 헌법개정

이승만 대통령 재선


1953년 : 북한 - 연합군 (주한미군 사령관) 휴전협정, 지금까지 전쟁위기.

이승만 집권 시기 비판세력 빨갱이이라고 지칭 즉결심판(1948-1953).

양민학살 - 보도연맹사건(1948년 이전에 사회주의 가담한 사람 신고하면 면해주겠다 사회주의 활동 경험 신고 종용 = 전쟁이 난 이후 모두 사살)


1960년

3.15 부정선거 - 부정선거 무효운동, 김주열학생 희생

4.19 혁명(피지배 국민들이 지배권력 정권을 무너뜨린 사건)

민주정부 수립 - 과거사청산문제 논쟁 - 조선, 동아 사회혼란이라고 보도


1961년 : 5월 박정희 김일성에 사전 통보하고 쿠데타 도발


1965년 : 굴욕적인 한일 수교 - 정신대 위안부 강제 징용 징병에 대해서 개인적인 배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각서제출 => 일본이 지금까지 뻔뻔하게 사과 안 함.

독도밀약 : 한일 양국 공동으로 자기 영토라 주장/독도는 한국이 실효지배하나 군인은 주둔할 수 없다/독도인근 경제수역을 결정할 때는 공동 수역으로 한다.

전국적으로 한일수교 반대운동 대학생 중고생들 중심.


1966년 : 개야도 간첩단 사건 등등 죄 없는 어부 농민을 고문을 통해 간첩으로 자백시켜 처형.


1972년 : 김일성과 내통하여 7.4 남북공동성명 발표(북한의 존재 국제적 인정(북괴 -> 북한).

-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원칙에 따라 공공의 통일노력을 한다.


1974년 : 울릉도 간첩사건, 인혁당사건 : 비판적인 지식인들을 간첩 누명 씌워 처형

유신헌법을 발효 : 긴급조치(유사시 헌법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

반 헌법적인 독재 법으로 비판받음.

유신반대운동 전국적 전개

노동운동 발달(1970년 전태일 분신 - 지식인들 노동현장 잠입, 노조건설)

YH 사건(미국이 박정희를 비판함) -> 김영삼 당사 점거 농성 -> 공권력 야당당사 침탈 -> 노동자추락사 -> 김영삼이 박정희 비판 -> 김영삼 국회의원 제명 -> 부산마산 지역노동자 폭발 -> 부마항쟁 -> 박정희가 강제 진압지시 -> 김재규가 박정희 사살(10.26)

대학교 휴교령


1979. 12.12 전두환 노태우 쿠데타 재발

제 5공화국 : 삼청교육대 공안사건 조작 민주주의자 탄압 독재정권


1987년 6월 10일 항쟁 - 대통령 직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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