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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트니스 큐레이터 Dec 22. 2016

분주함은 트레이닝을 망친다

THE ONE THING

퍼스널 트레이너로 일하면서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그때를 회상한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이다. 하지만 공포를 무릅쓰고 그날의 일들을 곰곰이 되짚어 보고자 한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프리랜서로서 근무하기에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외부에서 잠깐 개인 일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 당시(지금은 끊었다) 당구에 빠져서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거의 매일 당구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건이 일어난 날도 당구를 쳤다. 그런데 오후 6시에 수업이 있는데 5시 40분이 지나도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 당구는 최종 한명이 게임 비를 내게 되어있다. 시간은 5시 5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51분 만에 게임이 끝났다.

나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센터를 향해 뛰었다. 센터와 당구장의 거리는 걸어서 10분정도 이었기에 전력으로 뛰면 5분 안에는 다다를 수 있다. 탈의실에서 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고 수업을 하러 계단을 올라가는데 카톡 문자가 왔다. “저 30분정도 늦을 것 같아요”

나는 수업을 하려고 똥줄 타면서 뛰었던 행동이 생각나서 허무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수업이 없어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동료(함께 당구를 쳤던)에게 문자를 남긴다. “승희야! 30분 늦겠단다. 어이없다.”

앗! 그런데 사단이 나고 말았다. 카톡 문자는 내가 보내려고 했던 승희에게 전달되지 않고 회원의 카톡으로 보내진 것이다. 정신없어서 카톡 창을 둘 다 열어놓았던 것이다. 하늘이 노래졌다. 그리고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이런,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회원한테 곧바로 카톡을 보냈다. “죄송합니다! 문자를 잘못 보냈습니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회원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반사적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전화기 건너에서 쏟아지는 질책성 발언이 수십 개의 파편이 되어 귀를 통과하여 측두골에 꽂혀버렸다.


오금이 휘청거렸다. 엄연한 내 잘못이다. 회원은 프런트에 가서 내가 보낸 문자를 문제화하겠다고 했다. 반사적으로 나는 제발 프런트에 가지 마시고 나와 얘기를 하자고 사정사정 했다. 왜냐면 프런트로 직접 가게 되면 내가 범한 실수는 운영진 측의 귀에 들어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일하는 데에 있어서 치명타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회원과의 통화는 끊겼다.

프런트 앞에서 회원을 기다렸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스쳐갔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그런데 갑작스럽게 집에 있는 세 명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믿음직한 아빠로 살고자 노력했는데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당장 죽을  병도 아닌데 아이들의 얼굴이 떠 오른 건 정말 알 수 없었다.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으려면 위기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하던데,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면서 회원을 기다렸다. 닥쳐올 후폭풍에 겁이 다.

드디어 회원이 정문으로 들어왔다. 앞에 서 있는 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프런트로 향했다. 그런데 회원은 프런트를 그냥 지나치더니 수업 받는 곳인 3층으로 올라갔다. 따라오라는 무언의 말을 하는 듯 했다. 황급히 뒤따라갔다. 3층 사무실엔 권 마스터(퍼스널 트레이너 총괄)가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래도 그분은 트레이너 출신으로 내겐 유일한 비빌 언덕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회원은 눈 주변의 화장이 번진 채 잰 걸음으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황급히 뒤따라가서 죄송하다는 말을 건넸지만, 돌아온 반응은 냉냉 했다. 그런 가증스런 얼굴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였다. 사건이 엄청 커졌음을 짐작했다.

 곧이어 권 마스터의 호령이 떨어졌다. “김 트레이너, 사무실로 오세요!”

상기된 얼굴로 나는 권 마스터의 입을 쳐다봤다.

“너 정말 사람 복이 있다! 이 사건은 정말 트레이너로서 범하지 말아야 할 중대 사건이었다. 그런데 회원님께서 간곡히 부탁했다.”

“그냥 하소연을 하고 싶었어요. 제가 지금껏 살면서 이런 문자를 받을 만큼 잘못 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김 트레이너에게 추호도 불이익을 받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식이 세 명이고 저와 나이도 동갑이고 열심히 사시는데......”


그날 이후 나는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았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 일이 있고 난후 나는 당구를 끊었다. 그리고 트레이너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잡고 수업 준비를 위해 더욱 집중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날 하지 못했던 말들을 회원에게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확인만 하고 답글은 보내지 않았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고 미안했다.


위의 내용은 누구나 한 번쯤은 크거나 작게 겪었을 일이라 여겨진다. 직장 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친구에게 푼다고 문자를 보낸 것이 그 직장 상사에게 잘못 보낸 다거나, 혹은 양다리를 걸친 상태에서 여자 친구에게 바꿔 문자를 보낸다거나 하는 경우 등이 있을 것이다.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는 과정을 멀티태스킹 이라고 한다. 그러나 THE ONE THING의 저자인 게리 켈러와 제이 파파산은 멀티태스킹은 능력이 아니라 비효율의 산물이라고 단호히 반박했다. 그러면서 내세운 주장이 THE ONE THING 이다. 즉 하나의 공을 옆으로 정확히 밀어 내야만 그 다음공의 동작이 연결되어 멋진 곡예를 할 수 있는 저글링처럼 말이다.

퍼스널 트레이닝도 오직 한 사람에게 집중하여 수업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수업 전에도 분주함을 가라앉히고, 앞으로의 수업에 대한 대략적인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구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수업에 들어가서 허둥지둥 대지 않고 차분하게 수업을 리드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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