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의 근력
일을 마치고 집에 왔다. 아내는 소파에 누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피곤에 절여 있었다. 방학이라 온 종일 아이들 뒤치다거리와 집안일을 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하루 동안 아내가 처리하는 일의 양은 과잉 상태를 넘어선다. 아이들 공부와 청소, 교회 일, 그리고 과외 수업까지 스케쥴이 꽉 차 있다. 내가 들어오기 10분 전에 소파에 처음 누웠다고 한다. 그렇게 잠시 쉬고서 아이들 저녁을 차려 주고 슈퍼에 갔다가 다시금 과외 수업하러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내는 아내대로 힘들고 나는 나대로 지치고, 하루하루가 빡빡하게 돌아간다. 더 힘들고 맥 빠지는 건, 쌔빠지게 살아도 세간이 좋아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버는 족족이 아이들 교육비에, 생활비로 들어가 버려 늘 저축은 제로의 상태로 머문다. 시지푸스의 형벌처럼 끝이 없는 도돌이 인생이다.
가끔씩 드는 생각이 있다. 이러려고 태어났는가? 웅덩이에 빠지고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고 덫에 걸리면서까지 기어이 가야만하는 길이 인생인 것인가?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남자에겐(여자도 포함) 뼈 빠지게 일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절대자가 우리에게 베푼 배신에 대한 은덕이라지만 너무 과혹하다.
하지만 시궁창 같은 삶 속에서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회복탄력성이 상당히 높은 사람들이다. 회복탄력성은 심리학 용어다. 그 뜻은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과 실패를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튀어 오르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고 한다.
마음의 근력과 같이 육체의 근력도 이런 회복 탄력성의 원리가 적용된다. 근육이 운동이라는 스트레스(자극)를 극복해야 배와 가슴에 원하는 근육을 박아 넣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인생은 몸과 마음의 근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인생이라는 천로역정을 걸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골절된 뼈는 처음보다 더 단단해진다. 고통의 시간을 겪고 난 결과물인 것이다.
전문용어로 ‘초과회복’이라고 한다.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시지푸스의 형벌은 신화와는 달리 끝이 있음을 확신한다.
몸과 마음의 경련이 아닌 몸과 마음의 근육이 자라게 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