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휴식
며칠 전 세탁기가 고장 났다.
수리를 위해 세탁기 기사가 오기 전에 며칠은 손빨래를 했다. 세탁기의 고마움을 새삼 느꼈다. 손수 세탁과 탈수 그리고 건조대에 널기 까지 하려니 무지 힘이 들었다.
드디어 세탁기 기사가 왔다. 몇 시간이 지나고 기사는 원인을 밝혀냈다.
옆의 보일러 배관이 새는 바람에 물이 세탁기 메인 보드로 스며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인다. 보일러 수리 후 세탁기 메인 보드를 말려야 작동 유무를 알 수 있단다. 그래서 며칠 더 세탁기 대신 다른 방법으로 빨래를 처리해야만 했다. 이 사실을 아내는 동네 이웃과 대화거리로 내 놓다가 해결책을 알아냈다.
부천으로 이사 온 지 5년도 넘었는데 주변에 빨래방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내는 내가 퇴근 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함께 산더미 같은 빨래를 포대기에 담은 채 빨래방으로 향했다.
신기했다. 나는 머리털 나고 실제로 빨래방을 처음 보았다.
영화에서나 빨래방을 보았다. 빨래가 다 끝나기까지 옆 의자에 쪼그려 앉아서 책에 탐독하고 있던 배우가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떠올랐다.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빨래방 문화는 생소했다. 빨래방 안은 코인 용 세탁기 세 대와 건조기 세 대가 있었고 뒤로는 긴 탁자와 의자 그리고 커피 자판기가 놓여 있었다. 또한 오백 원짜리 동전을 바꿀 수 있는 기계와 오백 원을 넣으면 30분 동안 난방기가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온풍기도 있었다.
이용시간은 24시간이었다. 새벽에도 빨래를 하러 오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신기했다.
3000원을 넣으면 30분간 세탁과 탈수가 시작된다. 건조까지 하려면 옆의 건조기로 옮겨 또 3000원을 넣고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세탁기 한 대 사려면 적어도 백만 원은 족히 주어야 쓸 만한 것을 살 수 있다. 게다가 세제와 섬유 유연제까지 매번 사려면 돈이 수월찮게 들어간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나 고시생들에게는 고마운 존재일 듯하다.
이참에 세탁기 수리비가 많이 나오면 고치지 말고 이곳을 이용해 볼까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세탁기 수리비가 아깝거나 혹은 세탁기를 새로 사야 한다는 경제적 부담감 때문이 아니다. 더 큰 이유가 있다.
해방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퇴근 후 세 명의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빡빡한 일정 가운데 빨래를 위한 한 시간을 오롯이 나만의 시간으로 활용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한 시간 동안 보고 싶었던 책을 읽을 수 있고,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기를 할 수도 있다.
빨래는 아주 만족스럽게 잘 되었다. 냄새도 좋고 색깔도 베이지 않았다.
아내가 내게 한 마디 건넨다. 그 말에 소름이 돋았다.
오오, 펀한데 자주 이용해야겠다. 다음에 올 때 혼자 와야지...
아내는 분명 독심술을 할 줄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