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문체

authenticity/readability

by 피트니스 큐레이터

한 시간째 모니터 앞에서 무엇을 쓸 것인가 생각하며 앉아 있다.

글을 쓰는 작가들이 겪는 현상이 나에게도 찾아오다니…. 글감을 찾는 일은 쉽고도 어려운 일인 듯하다. 사물을 들여다보는 힘은 시인뿐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필수 항목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사물을 보고 무슨 말을 써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던 찰나에 떠오른 책이 생각났다. 바로 김소연 시인의 ‘마음 사전’. 시집이 아닌 산문집이다. 책을 접해보지는 않았다.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이라는 팟캐스트에서 소개하여 알았다.

마음에 관련된 낱말을 수첩에 적고 그 낱말을 하나하나씩 시인의 감수성으로 풀어 놓았다. 들여다보는 힘이 정말 대단한 시인이다. 책날개에 있는 저자 소개의 글부터 범상치 않다. 쏙 빠져 읽었다. 저자 소개의 글을 옮겨 적어 보았다.


시인.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7년 경주에서 목장집 큰딸로 태어났다. 천칭좌. B형. 인적을 찾아보기 힘든 동네에서 사람보다 소 등에 업혀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눈이 소를 닮아 고장 난 조리개처럼 느리게, 열고 닫힌다. 그 후 무덤의 도시를 떠나 서울로 이주했다. 줄곧 망원동에서 살았는데 우기 때마다 입은 비 피해가 어린 정신에 우울의 물때를 남겼다. 매일 지각하였다. 시에 밑줄을 치게 되었다. 선생과 불화하며 청소년기를 보내게 되었다. 마음과 몸이 분리되지 않고, 따라서 이 일 하며 동시에 저 일을 하는 건 불가능한 모노 스타일 라이프를 갖게 되었다. 하기 싫은 일은 하기도 전에 몸이 거부하는 이다. 실제로 그럴 땐 고열을 동반한 몸살에 시달릴 정도로, 몸과 마음의 완벽한 일원론적 합체를 이룬 변종이다. 그래서인지 마음에 관해서는 초능력에 가까운 신기를 보인다. 고양이처럼 마음의 결을 쓰다듬느라 보내는 하루가 아깝지 않고, 도무지 아무데도 관심 없는 개처럼 멍하니 하루를 보내는 데 천재적이다. 밥은 그렇다 치고 잠조차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몇 밤을 그냥 잊기도 한다. 몸에 좋은 음식에는 관심이 없고 아이스크림, 초콜릿, 커피를 주식처럼 복용한다. 게으르기 짝이 없고, 동시에 꼼꼼하기 이루 말 할 수 없다..... 중략. 마음의 경영이 이 생의 목표이므로 생활의 경영은 다음 생으로 미뤄놓고 있다.


마지막 문장인 마음의 경영과 생활의 경영이라는 표현이 참 좋다.

망원동에서 살다가 비 피해로 어린 정신에 우울의 물때를 남겼다는 표현도 정감이 간다. 특히 망원동은 20여 년간 살아온 내 고향이기도 하다. 정말 두 번의 물난리는 생각조차 하기도 싫다.

아무튼, 김소연 시인의 필체는 정말 독특하면서도 끌린다. 그러나 따라 하기는 너무도 독특해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책을 추천한 사람이 있다. 정여울 작가. 정여울 작가의 글도 참 좋다. 글 잘 쓰는 사람에게는 통하는 무언가가 있나 보다.

주변 사람이 평가하는 내 글의 특징은 진정성과 가독성이다. 비비 꼬는 문장은 필력이 얕아서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글과 문장을 한평생 연구하셨던 이오덕 선생께서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


‘글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할머니나 어린이나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쉽게 읽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가장 잘 쓴 글은 쉽게 자신이 말하고자 한 내용을 요약하여 잘 담아낸 글이다.’



이오덕 선생 또한 진정성과 가독성을 잘 쓴 글의 표본으로 삼으셨다.

나만의 독특한 문체를 만드는 것이 작가로서 중요한 과업이긴 하지만, 먼저 천박하리만치 쉽고, 진정성 있게 쓰도록 노력해야겠다. 먼 훗날 내 글이 제2의 김소연, 정여울과 같은 문체로 각인될지 누가 알겠는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안개 속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