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야구는 도대체 나에게 무엇인가?
책과 글쓰기는 생산적인 일을 만들어 내는데, 야구는 과연 내게 생산적인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3시간이 아깝지 않고 지면 허무함이 엄습한다.
또한, 초등학생만도 못한 감정 기복이 찾아온다.
몰입 적 측면에서 보면 야구만 한 것은 없는 듯하다. 피드백이 바로바로 온다.
이기면 엔도르핀 상승, 지면 노르아드레날린 분비가 명확하다.
야구의 가치는 감동이라는 말이 있다. 선수는 팬들에게 야구를 통해 감동을 준다.
최선을 다한 플레이를 보는 팬들은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감동은 감동이고 144경기가 끝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은 7개월 남짓 된다.
한 경기당 걸리는 시간은 세 시간 반 정도다. 세 시간 반이면 250페이지 자기계발서 한 권 읽을 수 있다.
그렇게 따지면 야구가 일주일에 6일 하니깐 한 달에 24권, 7개월이면 168권 정도 된다. 거기서 반 만 읽어도 84권이다.
그렇다면 84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야구 보는 것과 맞바꿔도 후회 없는가?
순간의 감동을 얻고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인가?
2018년 4월 25일 수요일에 벌어진 두산과 SK의 경기에서 야구가 주는 최고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략적인 상황을 요약해 보겠다.
두 팀의 투수는 린드블럼과 산체스였다. 팀을 대표하는 에이스간의 대결이라 흥미로웠다.
역시 경기는 7회까지 선발 투수의 호투로 타자가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바뀐 투수를 상대로 두 팀의 타자들은 불방망이를 휘둘러댔다.
엎치락뒤치락 끝에 10회 말에 SK의 끝내기 안타가 나와 경기는 끝이 났다.
두산을 응원하는 내겐 다소 아쉬움이 남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투혼을 발휘한 SK 선수들에게 손뼉을 쳐 주고 싶다.
그 이유는 10회 말에 두 점 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집중력을 발휘하여 역전승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9회 말에 이재원의 동점 홈런이 나와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놨다가 10회에 두 점을 내주어서 패색이 짙은 경기였다.
정말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을 새삼 느꼈다.
두산도 정말 최고의 경기를 보였다.
150KM의 강속구를 던지는 산체스를 상대로 꽁꽁 묶여 있다가 8회에 3점을 내어 역전을 거두고 다시 10회에 두 점을 내어 재역전을 했다. 그러나 전 경기에 불펜 투수를 너무 많이 기용하여 끝까지 틀어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144부작 각본 없는 드라마와 같은 프로야구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내게 신선한 감동을 준다.
프로 무대에 처음 출전한 투수는 역전하기에 어려운 경기에 나와서 온 힘을 발휘한다.
또한, 억대 연봉의 몸값을 받는 선수는 자신의 능력을 백분 발휘하기 위해서 전력투구를 한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있는 펜들은 가슴이 벅차오른다.
144권의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선수 한 명 한 명의 스토리가 144경기에 녹아 있다.